“백신 주사만 잘 맞아도 든든하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4.2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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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철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명예교수 / “최선의 치료는 체력 강화…손 잘 씻는 습관 길러야”

▲ ⓒ시사저널 박은숙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의하면 병에 걸려 죽는 사람 가운데 4명 중 1명은 감염질환자이다. 또 감염질환자의 80%를 죽음으로 내모는 폐렴, 에이즈, 설사질환, 결핵, 말라리아 등 5대 질환은 항생제 내성으로 점차 치료가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의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슈퍼박테리아(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에 감염되어 화제가 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박승철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명예교수는 앞으로 슈퍼박테리아와 신종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감염질환의 창궐을 막는 데 핵심 과제라고 강조한다. 그는 평생 전염병만 연구해온 전문의로, 요즘 대유행병(pandemic)의 예방책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다. 몇 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인 사스(SARS)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박교수는 인류가 감염질환의 확산을 힘겹게 막고 있을 뿐이지 결코 없애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로부터 감염질환에 대한 최신 치료 방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감염질환을 해결하는 최선의 치료는 무엇인가?

우선 건강한 체력이라고 생각한다. 체력이 강하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도 이겨낼 수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콜레라 발생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넓게 퍼지지 않고, 환자가 사망하지 않아 이슈가 되지 않을 뿐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보균한 상태로 입국하는 사람도 있지만 발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체력이 좋아졌다는 이야기이다.

그 다음으로 백신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간염, 간경화, 간암 등 간질환의 왕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간질환이 한국인의 유전병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1983년 간염 백신이 개발되면서 간염 환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음 세대에는 우리나라에서 간염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예방주사의 위력은 대단하다. 따라서 가능하면 모든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여러 번 강조하지만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 중요하다. 손만 씻어도 웬만한 감염질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체력이 약한 노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나이가 들면 생리적으로 저항력이 약해진다. 이때 꼭 맞아야 할 예방주사가 하나 있다. 바로 폐렴 백신이다.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갖가지 성인병이 있는 노인이 독감에 걸린 뒤 폐렴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예방주사를 맞아도 병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 백신에만 의존할 수 없다면 2차 예방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감염질환에서 2차 예방책은 아주 중요하다. 사실 수많은 백신 중에서 100% 신뢰할 수 있는 것은 2~3가지에 불과하다. 가장 일반적인 인플루엔자(influenza) 백신은 젊은 사람에게 70~80%, 노인에게는 60% 정도만 효능을 보인다. 나머지는 예방주사를 맞고도 병에 걸리는 셈인데, 이런 사람에 대한 2차적 대책은 사실상 없다. 결국, 조기 발견해서 대처하는 소극적인 방법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감염질환의 증세는 감기와 비슷한데, 조기 발견을 위해 그때마다 병원을 찾아야 하는가?

발열이나 기력 감퇴 등 감기 증세가 생길 때마다 병원을 찾는다는 것도 문제이다. 그렇다고 방치해서 치료 시기를 놓치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주치의를 두라고 권하고 싶다. 동네 의원이라도 좋다. 기회가 되는 대로 의사를 만나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려서 작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건강 상태를 항상 추적해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의사도 명심할 점이 있다. 환자의 건강 상태에 이상이 생겼는데, 자신이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없다면 바로 다른 의사에게 환자를 보내야 한다. 치료도 못하면서 4~7일 이상 환자를 붙잡고 있다 보면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세균성과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의 치료 방법은 각각 다른가?

그렇다. 세균성 감염질환은 항생제로 치료한다. 그러나 내성이 잘 생기기 때문에 항생제 개발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에는 항생제 대신 백신을 많이 쓴다. 홍역, 소아마비, 간염, 광견병 등 대다수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은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다행히 바이러스의 99%는 우리 몸에 들어와도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플루엔자도 10명 중 2~3명에게서만 병을 일으킨다.

후천적 면역결핍증(AIDS)에 탁월한 백신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AIDS 바이러스(HIV)가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도 슈퍼인플루엔자로 변화하지 않는가. AIDS도 바이러스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백신이 무용지물이다.

AIDS는 진단도 쉽지 않은 것 같다.

HIV에 감염되어도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감염된 지 한 달 후 심한 감기, 몸살 같은 증세가 생기지만 대개 1~2주 만에 낫는다. AIDS에 걸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10년 후쯤 증세를 보인다. 열과 설사가 생기고 살이 빠지거나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감염된 후 첫 증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실 진단이 쉽지 않다. 보통 혈청검사로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감염된 지 한 달 이내에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한 달 동안은 항체가 생기기에 이른 시기여서 일부 감염자에게서는 음성 반응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검사는 감염된 지 한 달 이후에 해야 한다. 항체 검사 후 12주까지 음성 결과가 나오면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12주, 6개월, 12개월 단위로 꾸준히 검사해야 더욱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AIDS 하면 죽음이 연상되고 도덕성과 관계된 질환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에 검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나 광우병 등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은 동물을 통제해야 예방할 수 있는데,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은가?

AI 등을 비롯해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전염되는 인수 공통 전염병이 전체 감염질환에서 80%를 차지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인수 공통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AI에는 H라는 항원이 1번부터 16번까지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조류와 사람에게 공통으로 발병해서 재앙을 일으켰던 항원이 1, 2, 3번이다. 그런데 H5번을 비롯한 7번과 9번과 같이 조류에게만 있던 항원이 사람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7년 홍콩에서 18명이 걸려 6명이 사망한 이후 이것이 새로운 AI 재앙이 되리라는 소리가 나와 세계 의학계가 긴장하고 있다.

사람에게만 감염을 일으키는 천연두나 홍역 등은 백신으로 감소시킬 수 있지만, 인수 공통 전염병은 바이러스를 보유한 야생동물을 관리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 완전한 근절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의학과 수의학이 협력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곰팡이균에 의한 감염질활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요즘 발진티푸스(epidemic typhus)나 쯔쯔가무시증(scrub typhus)처럼 곰팡이균에 의한 감염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이 증가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는 활발했지만 곰팡이균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또, 곰팡이균에 의한 감염질환에 사용하는 항진균제는 부작용이 매우 심하다. 곰팡이균, 신종 바이러스, 슈퍼박테리아 이 세 가지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가 감염질환 예방의 숙제이다.

앞으로 이런 질환들의 치료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답답한 이야기이지만 항생제를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세균이 내성으로 더 강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항생제를 쓰는 의사가 많다. 5일 만에 완쾌될 환자에게 항생제를 투여해서 3일 만에 낫게 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약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그 약에 대한 내성을 키웠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처럼 항생제를 사용하는 의사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도록 해서라도 항생제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감염질환은 장기적인 치료 방향을 잡아야 한다. 현재는 감염질환이 퍼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결코 감염질환을 정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중국과 독일 등지에서 도착한 승객들이 인천공항검역소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적외선열감지카메라를 통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단이 늦어 치료 시기를 놓친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에는 진단이 늦어 그런 비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박테리아를 배양하는 데만 72시간이 필요했다. 말이 3일이지 연구자에게 세균을 보내고 받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5일 이상 걸린다. 이 정도면 패혈증 환 자는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사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세균 배양 시간이 24시간 이내로 크게 줄었다. 또, 진단 키트(kit)가 있어서 10분 이내에 진단할 수 있다. 물론 이상 증세가 보이는 환자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지만, 진단이 늦어져 과거처럼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는 많이 없어졌다.

그러나 암 환자에게서 열이 나는 등 감염질환 증세가 보이면 항생제를 강하게 사용한다. 신장염이 있거나 편도선이 부은 환자도 이런 증세가 나타나면 적절한 응급 치료를 해야 한다.

검역을 강화하기 위해 공항과 항만에 설치한 열 감지기는 도움이 되는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국에서 감염된 사람이 입국하더라도 실제 발병하려면 일정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아무런 증세도 없지만, 이 사람이 KTX를 타고 대구로 이동한 후에나 발병할 수 있다. 만일 대구에서 감염질환이 발생했다면 서울이나 다른 지역은 안전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감염질환이 전세계로 퍼지는 데는 3일도 걸리지 않는다. 장소와 시간은 감염질환과 무관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감염질환 진단ㆍ치료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기초 이론과 진단ㆍ치료 연구는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 다소 뒤진다. 그러나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수준은 세계적이다. 예를 들어 폐렴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세계 정상급이다.

사스나 AI가 우리나라에 창궐했을 때 수백만 명이 희생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어느 정도 희생은 있겠지만 빈민국처럼 대량 희생자는 생기지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예방 시스템이나 대비책을 종합해볼 때 우리나라는 전염질환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준은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사스를 막아낸 방역 모범 국가이고, AI 치료 수준은 세계 5% 이내에 든다.

감염질환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1940~50년대 디프테리아, 홍역, 볼거리, 늑막염, 폐디스토마 등 남들이 다 걸리는 전염병을 모두 경험했다. 그래서 이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국 5대 강 유역에서 기생충을 조사했던 자료는 아직도 후배들에게 유용한 지침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감염질환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많지는 않다. 전염병은 예방이 가능하고 약으로 치료할 수 있어 굳이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리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병원에 감염내과가 많이 생겼다. 감염질환이 없어지지 않고 빈번히 그 모습을 바꾼 변종이 생겨나면서 모두 심각하게 대처할 필요성을 공감한 결과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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