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화력’ EPL 철옹성 부술까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9.04.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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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 ‘빅3’와 4강 격돌 골키퍼 활약이 승부의 변수…맨유 2연패 할지도 관심

▲ FC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오른쪽)가 골을 넣은 후 팀 동료 사무엘 에투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AP연합

클럽 축구의 정상을 가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가 마침내 4개 클럽으로 압축되었다. 현지 시각 4월28일 바르셀로나와 첼시, 29일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이 준결승 1차전을 치른다.

준결승은 다시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잔치’가 되었다. EPL은 무려 세 시즌 연속으로 4강의 세 자리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2005년 리버풀(우승)을 시작으로 2006년 아스널(준우승), 2007년 리버풀(준우승), 200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우승)와 첼시(준우승), 그리고 이번 시즌에 ‘확보’된 결승전 티켓까지 5시즌 연속 결승전에 한 팀 이상을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 다섯 시즌 동안의 4강 진출 팀 수에서도 EPL의 강세는 두드러진다. 이 기간 동안 EPL은 가능한 20개의 자리 중 무려 12자리(첼시 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 리버풀 3, 아스널 2)를 차지했으며, 이는 같은 기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4(바르셀로나 3, 비야레알 1), 이탈리아 세리에A 3(AC밀란 3), 나머지 리그 1(에인트호벤 1)의 4강 횟수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EPL은 이른바 3대 리그 간 맞대결에서도 확연한 우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EPL 클럽들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클럽들을 상대로 29승23무15패의 성적을 올린 반면, 스페인은 18승21무24패, 이탈리아는 16승12무24패로 저조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EPL ‘빅4’가 위력을 발휘한 결과이다.

따라서 작금의 시대를 ‘EPL의 시대’라고 일컫는 것에는 하자가 없다. EPL 클럽들의 강세는 ‘어떤 리그의 시대’라는 명칭을 위한 필수 조건들인 ‘시간적 지속성과 압도적인 기록’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탈리아 클럽들은 1989년부터 1998년까지의 10년 동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무려 아홉 차례나 진출한 바 있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잉글랜드는 1977년부터 1984년까지 7개 클럽을 결승전에 진출시켰고, 스페인은 1956년부터 1962년까지 7시즌 연속으로 결승전 진출 클럽을 배출했다. 옛 시절에 비해 경쟁이 한층 치열해져 있는 현재의 축구판에서, 바야흐로 EPL은 자신의 시대 한복판에 와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주공격수 메시, 컨디션 최상

하지만 ‘지금은 EPL 시대’임을 100%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작 우승 트로피는 4강에 오른 유일한 ‘비(非)EPL’ 클럽 바르셀로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 우승이 시대의 명칭을 바꿀 수 있는 근거까지는 되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어쩌면 바르셀로나는 지금의 EPL 강세-특히 ‘빅4’의 위용-에 맞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유일한 세력인 듯하다. 올 시즌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잉글랜드 밖의 모든 클럽들은 실질적 역량 면에서 EPL ‘빅4’를 넘어서기가 사실상 힘들었다. 인터 밀란이든 바이에른 뮌헨이든 레알 마드리드이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올 시즌의 전력과 여러 문제점들을 감안하면 틀림없이 그러했다. 물론 EPL의 ‘빅4’ 또한 올 시즌 각각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으나, 전반적인 선수단의 두께, 밸런스, 전술 수행 능력, 평균적 운동 능력의 견지에서 다른 리그 클럽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화력’은 이러한 EPL의 틈바구니를 돌파할 최후의 보루로서 평가받는다. 우선 바르셀로나에는 메시가 있다. 예년과 달리 ‘부상 없는 시즌’을 보내면서 연말의 모든 상을 휩쓸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메시는 가히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챔피언스리그 득점 선두(8골)일 뿐 아니라 올 시즌 모든 대회에서 총 33골을 터뜨리며 지난 시즌 호날두의 42골에도 도전해볼 수 있을 전망이다. 단순한 골수를 넘어 주변 동료들을 더 위력적이게끔 하는 메시의 영향력은 ‘제2의 마라도나’라는 별칭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수준이다. 이러한 메시와 더불어 지난 시즌보다 한결 좋아져 있는 에토(31골)와 앙리(22골)까지, 바르셀로나는 주 공격수 세 사람이 엮어낸 골 수만 해도 모든 대회를 통틀어 무려 86골에 이른다. 여기에 공격력을 배가시키는 오른쪽 측면의 알베스, 중원의 재간둥이들인 이니에스타, 샤비의 위력까지 감안한다면 현재 지구상 모든 클럽 가운데 단순 화력 면에서 바르셀로나를 능가할 팀은 없어 보인다. ‘초보 감독’ 과르디올라의 클럽을 이끄는 능력 또한 당초의 예상보다 훨씬 노련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히딩크의 마법’의 결말은?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당장 만나게 될 상대 첼시에는 거스 히딩크가 있다. 상대에 따라 맞춤형 전술을 적절히 구사해 ‘토너먼트의 거장’으로 칭송받아온 히딩크 감독의 솜씨는 난적 리버풀과의 8강 대결에서도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그리고 첼시는 강적 바르셀로나를 맞아 히딩크 감독의 전술적 치밀함 및 선수들의 동기를 고취시키는 능력에 또다시 의존해야 할 전망이다.

우선 첼시는 1차전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게 될 애슐리 콜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특히 콜의 위치가 ‘메시+알베스’와의 맞대결을 펼쳐야만 하는 곳임을 감안하면, 첼시가 이 공백을 여하히 해결할 수 있는가야말로 준결승 최대의 승부처라 할 만하다. 물론 첼시에게는 벨레티, 맨시엔, 카르발료, 이바노비치, 말루다, 에시앙 등 이 위치에서 뛸 수 있는 자원들이 존재하지만, 그 어떠한 선택지도 콜이 뛰는 것만큼 만족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바로 이 대목에서도 히딩크 감독의 역량이 발휘되어야만 한다. 또한, 공격적인 측면에서 히딩크 감독이 바르셀로나의 몇 안 되는 약점들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도 관심을 끈다. 바르셀로나의 약점은 역시 알베스의 공격 가담으로 인해 초래되는 뒷공간 및 세트플레이시 아무래도 첼시보다 약세일 공산이 크다는 사실이다.

반면, 과르디올라 감독으로서는 선수들의 컨디션 유지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경기 일정의 측면에서 바르셀로나가 준결승 네 팀 가운데 가장 큰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는 4월22일부터 세비야, 발렌시아, 첼시(홈), 레알 마드리드, 첼시(원정), 비야레알, 어슬레틱(코파델레이 결승전)과의 경기를 3, 4일 간격으로 계속 치르는 죽음의 일정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큰 경기들을 연이어 치르게 되면 긴장감과 집중력을 높이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상과 피로 누적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의 대결은 서로를 잘 아는 ‘해묵은 적수’ 간의 조우로서 ‘알렉스 퍼거슨 대 아르센 벵거’의 설전이 벌써부터 예상되는 매치업이다. 게다가 지금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가장 좋았던 시기에 비해 다소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반면, 오히려 아스널은 주요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기에 일견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선수층 면에서 아스널에 비해 여전히 우위에 있다. 갈라스, 주루를 이미 부상으로 잃은 아스널은 더 이상의 부상자가 나오면 매우 곤란해질 전망.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잘나갈 때에 비해 불안해진 수비와 시원스레 터지지 않고 있는 득점포에는 신경이 쓰인다. 베르바토프와 테베스 중 적어도 한 명은 제 몫을 해줘야만 하는 시점이다.

이번 준결승을 매우 흥미롭게 만드는 공통 요소 한 가지를 언급하자면, 네 팀 모두가 ‘골키퍼’ 부문에 불안감을 안고서 대결에 임한다는 사실이다. 우선 아스널은 부상을 입은 알무니아의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 파비안스키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지만 실수가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어쩌면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반 더 사르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록적인 무실점 행진과는 별개로, 반 더 사르는 근본적으로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있는 인물. 굳건한 믿음을 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첼시의 체흐는 언론으로부터 가장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이른바 ‘위험 인물’이다. 공중볼 처리의 불안정성이 계속되고 있는 체흐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것도 히딩크 감독의 몫이다. 바르셀로나의 발데스 역시 첼시 공격수들의 위협에 직면해 실수가 나올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인물. 결국, 이번 챔피언스리그는 어느 팀의 골키퍼가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치느냐에 따라 최후의 승자가 가려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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