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즙은 무조건 건강에 좋다고?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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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섭취하면 오히려 독”간질환 환자에게는 치명적 결과 초래할 수도

ⓒ시사저널 유장훈

녹즙은 액체여서 쉽게 섭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양분의 흡수율이 좋아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생야채를 잘 먹지 못하는 노약자에게도 녹즙은 좋은 대용물이다. 

그렇다 보니 녹즙이 보약처럼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녹즙기나 녹즙을 판매하는 업체들은 이런 현실을 적극 활용해 소비자를 늘리고 있다. 사실 누구나 녹즙을 천연식품으로 여겨 건강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부 오지혜씨(28·여)는 “고혈압, 간, 정력에 좋다는 지인의 권유로 남편이 지난해 6개월 동안 명일엽(신선초), 돌미나리, 씀바귀 녹즙을 마셨다. 뱃살이 빠지기는 했는데, 녹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녹즙이 마치 건강식품인 양 알려지게 된 데는 관련 업체들의 마케팅이 한몫했다. 한 녹즙 제조업체는 녹즙 원료의 하나인 명일엽을 ‘천사가 인류에게 준 식물’이라고 선전하며 특별한 성분이 있을 것 같은 환상까지 불러일으켰다.

기자가 지난 6개월 동안 서울 시내 5대 대학병원에서 만난 각종 질환의 환자 10명 중 3~4명은 녹즙을 복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녹즙이 특정 질환을 예방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는 사람도 있었다.

관련 업체 마케팅이 ‘환상’ 심어

그러나 전문가들은 녹즙의 효과가 과다하게 포장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하루 세 끼 식사로 해결할 수 있는 영양분을 굳이 녹즙으로 섭취할 필요가 없으며, 녹즙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오히려 환자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녹즙은 야채를 갈아 놓은 식품일 뿐 보약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녹즙=건강’이라는 공식이 각인된 까닭은 베타카로틴(betacarotin)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이 물질은 체내에 흡수되면 비타민A로 바뀐다. 비타민A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항산화 작용이다. 산소가 몸속에서 음식물을 산화시키고 남은 일종의 부산물이 활성산소이다. 활성산소는 성인병과 노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베타카로틴이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항산화 작용을 한다. 이는 유해 물질인 사염화탄소(CCl4)를 주입한 실험용 쥐에게 녹즙을 투여한 결과 산화 반응이 억제되었다는 연구 결과로 증명된 바 있다.

그러나 이 효과가 동물 실험이나 세포 실험에서 확인되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서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베타카로틴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는 의학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팀은 지난 3월 <미역학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을 통해 매일 20~30mg의 베타카로틴을 섭취한 흡연자에게서 폐암 발병률이 약 24%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암이나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베타카로틴을 복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베타카로틴은 심장병 위험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내 녹즙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풀무원건강생활의 명일엽 녹즙에는 베타카로틴이 0.15mg/1백50ml 들어 있다. 당근에는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베타카로틴이 있다.

폴리페놀(polyphenol)이라는 항산화 물질도 있다. 피부 노화와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녹즙업체들이 강조하는 성분이다. 녹즙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함량은 36~51.8mg/100ml이다. 적포도주(100mg), 녹차(60mg), 초콜릿(8백mg)보다 적은 양이다. 폴리페놀은 오렌지나 커피에도 함유되어 있다.
열량, 탄수화물, 당류, 단백질, 나트륨, 비타민 등도 녹즙의 주요 성분이다. 이런 성분은 일반 식이섬유 음료나 종합 비타민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녹즙이 건강에 오히려 좋지 않다는 말은 특정 질환에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간질환이다. 약물이나 음식물로 인해 간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약인성 간 손상(DILI)이라고 하는데, 녹즙이 간 손상을 일으켜 빌리루빈 등 간 수치를 높인다고 한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외과 교수는 “녹즙은 간 대사질환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드물지만 녹즙을 섭취한 환자가 간 이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치명적인 경우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도 녹즙은 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녹즙에 풍부한 칼륨은 신장에 부담을 주고 부정맥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또, 녹즙은 많은 영양소를 한꺼번에 섭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섬유질이 채소의 4분의 1 수준이어서 변비, 당뇨, 고지혈증에 별 효과를 주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녹즙이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술 마신 다음 날 녹즙을 찾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알코올로 인해 간의 해독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녹즙을 과량 복용하는 것 자체가 간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충고한다. 미국 병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녹즙을 섭취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조영연 삼성서울병원 영양팀장은 “간과 신장 기능이 저하된 사람이나 약물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녹즙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량 섭취할 경우 장기 기능 부전까지 유발될 수 있어 되도록 녹즙을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라고 권고했다.

“녹즙이 암 예방한다는 근거 없어”

녹즙에 항암 효과는 있을까? 녹즙은 위암과 식도암의 위험을 20% 정도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야채를 암 예방 기능이 있는 식품으로 분류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IARC는 최근 이 분류를 한 단계 아래인 ‘불확실’로 재조정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 전문의는 “일정 기간 동안 동일한 인자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코호트 연구(cohort studies) 결과, 녹즙은 우리 몸에 이로울 것도 해로울 것도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녹즙이 암을 예방한다는 임상적 근거도 없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녹즙을 건강보조식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녹즙이 건강 유지의 필수품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유화승 대전대 둔산한방병원 동서암센터 교수는 “녹즙의 안전성과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 확실한 효능을 확인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풀무원건강생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녹즙은 의약품이 아니고 일반 식품이어서 간질환 등 특정 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자료는 없다. 시중에 판매되는 녹즙은 농도가 진하지 않아 간에 무리를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컴프리(comfrey) 현상’이 있다. 비타민 B12가 풍부한 채소류인 컴프리는 빈혈, 소화, 위장질환, 피부염, 화상, 타박상, 관절염, 근육염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간질환에 좋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타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컴프리에 함유된 피롤리지딘 알칼로이드(pyrrolizidine alkaloids)라는 독성 물질이 세포 내 DNA에 작용해 유전체 구조에 이상을 일으키고 간암을 유발할 수 있으며, 독성이 체내에 축적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FDA와 우리나라 식약청은 2001년 컴프리를 재료로 제조한 식품의 수입과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백승운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의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컴프리에는 간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간의 정맥폐쇄질환을 일으키므로 서양에서는 재배조차 금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간염 치료제로 둔갑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건강을 챙기기 위해 매일 최소 5회 이상 녹황색 채소를 섭취하자는 ‘eat 5 a day’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하루 최소 4백g의 채소를 먹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우리나라 사람이 하루 세 끼 식사로 섭취할 수 있는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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