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은 여권 인사들 더 있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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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지인들 증언 잇따라…“미공개된 3~4명으로 거물급도 포함”

▲ 지난해 12월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 박연차 회장(가운데). ⓒ시사저널 임준선

도대체 ‘박연차 리스트’의 끝은 어디인가.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는 그동안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 여야 정치권 인사들을 잇달아 구속시키거나 소환 조사했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이어 검찰청사 문을 드나들 인사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권 인사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천회장은 이대통령의 특별당비 30억원 대납 의혹과 함께 박연차 회장의 세무조사 대책회의 의혹 등에 연루되어 지난 4월 초 출국 금지되었다. 당시 이대통령은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금융정상회의에 출국하기 전에 천회장과 관련해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라는 의중을 청와대 참모진에게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으로 보았을 때, 천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시간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연합뉴스

박연차 회장이 사석에서 들려줘

그런데 천회장 이외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여권 인사들이 더 있다는 복수의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박회장이 수감된 서울구치소로 몇 차례 면회를 다녀온 그의 지인은 지난 4월13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설명했다. “박회장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여권의 몇몇 인사들에게도 금전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 여권 인사들이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고, 박회장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박회장에게 ‘검찰이 증거를 제시하기 전에 먼저 진술하지 말아라’라고 얘기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여권 인사들이 누구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지인은 “그 사람들을 먼저 공개하면 박회장에게 불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해해달라. 검찰 수사를 좀더 지켜보자”라며 입을 닫았다.

박회장의 다른 지인도 “박회장이 예전에 절친한 사람들과 있는 자리에서 ‘여권 인사 3~4명에게 돈을 주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한두 명은 요즘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여권 인사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다만, “피라미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라고 밝혀, 거물급 인사가 포함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런데 검찰이 명확한 증거를 들이대지 않는 한 박회장이 먼저 입을 열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항간에는 검찰이 박회장의 자녀들까지 출국 금지 조치를 시켜가며 함께 수사할 움직임을 보이자 박회장이 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가 먼저 하나 둘씩 풀어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박회장은 자신의 사업이 한순간 무너지게 될 것을 가장 크게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박회장을 면회한 인사는 “박회장은 자녀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30억 달러 규모의 베트남 화력발전소 사업과 전세계 나이키(NIKE) 신발 생산량의 15%를 차지하는 태광실업이 한꺼번에 무너질까 크게 걱정하는 것 같았다”라고 전했다.

박회장의 변호인측은 “박회장의 스타일은 검찰이 구체적 물증을 제시하면 시인하는 식이다. 검찰이 구체적인 정황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진술을 하지는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지난해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통해 확보된 국세청 자료와 박회장의 스케줄이 적혀 있는 여비서 다이어리, 계좌 추적과 통화 내역 등을 통해 확보한 증거들을 들이대며 박회장으로부터 필요한 진술을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박회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인사들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시간 차를 두고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사고 있는 검찰·국세청·경찰 등의 전·현직 고위 간부들에 대한 수사는 아직 뚜껑조차 열리지 않았다. 게다가 향후 공개되지 않은 여권 인사들까지 드러나게 되면 수사 기간은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 대검찰 청사. ⓒ시사저널 유장훈
“검찰 수사가 너무 나간 것 같다.”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천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한 직후 청와대의 한 인사가 이렇게 말했다.  ‘통치 행위’ ‘성역’ ‘극비 사항’이라 불리는 대통령 특수활동비의 일부가 이번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그동안 대통령의 특수활동비가 수사 대상으로 오른 적은 없었다. 지난 2003년 대북송금 특검 당시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수활동비는 ‘통치 행위’라는 이유로 비켜갔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해마다 대통령 특수활동비는 100억~1백10억원 선에서 책정되었고, 대통령은 매월 2억원 정도를 특수활동비로 영수증 처리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특수활동비는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업무추진비와는 별개이다. 특수활동비는 대통령의 품위유지비로, 각종 경조사를 챙기고, 현장 순시나 기관 행사 등에 참석했을 때 전달하는 금일봉으로 쓰였다. 간혹 청와대 직원들이 회식할 때나, 격려금을 줄 때도 이 활동비에서 지출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특수활동비도 수사 대상일 수 있다는 ‘선례’가 생김으로써, 현 정부뿐 아니라 향후에도 논란의 소지를 남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을 비롯해 검찰·국세청·경찰 등 사정기관장들도 특수활동비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사정기관에서는 특수활동비 상당액을 기관장이 개인적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말들이 많았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특수활동비를 어디에 썼느냐를 따졌을 때 솔직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검찰이 대통령 특수활동비에 대해서도 칼을 들이댄 이상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총장 등의 특수활동비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태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대통령의 통치 행위까지 들춘 이상 올해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여권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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