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문 ‘신 삼국지’ 열렸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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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상고·대륜고·경남고, 현 정권 들어 대약진…핵심 인물은 이상득·최시중·천신일

 

▲ 이명박 대통령이 4월21일 청와대에서 중장 진급·보직 신고를 받고 김상기 국방정책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지난해 1월4일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고려대 교우회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자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당초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정 학교가 너무 부각되면 여론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라며 주변에서 참석을 만류했음에도 이를 뿌리치고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통령의 모교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대통령의 모교 사랑은 고려대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2월7일 그는 ‘자랑스러운 동지인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모교인 경북 포항의 동지상고(지금은 동지고로 이름이 바뀜) 동문회에서 수여하는 상이었다. 이대통령은 김백준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대신 내려보냄으로써 특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이대통령은 김비서관을 통해 “동지상고가 있어 현재의 제가 있고 특히 ‘제1회 자랑스런 동지인상’ 수상은 어느 상보다 값진 것이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대통령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6년간 3대(11~13대)에 걸쳐서 재경동지동문회장을 맡기도 했다. 지방 학교의 특성상 총동문회보다도 오히려 더 부각이 되는 것이 재경동문회이다. 동지고 동문회 관계자들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재경동문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결정적 공헌자는 이대통령이었다”라고 입을 모은다. 그 전까지는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었으나 이대통령이 회장 시절에 모두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는 단연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권력 실세 인사들이 포진한 학교 동문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유대감이 끈끈한 고교 동문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매 정권마다 이른바 잘나가는 고교 동문 인맥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학맥이 인사를 장악하면서 특혜설도 난무하고, 때로는 비리가 개입되기도 한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경북고가 대세였다. 그러던 것이 김영삼 정권 시절 경남고와 부산고로 권력 중심이 옮겨졌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광주일고와 광주고, 목포고가 득세했고, 노무현 정권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산상고와 용산고가 단연 주목되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이런 움직임은 당연히 나타난다.  

“비주류 TK와 신 PK 시대 왔다”

대구 지역 한 한나라당 의원의 측근은 “현 정권을 언론에서는 ‘TK 전성시대’라고 하는데, 솔직히 정통 TK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정통 TK는 모두 ‘친박계’가 장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반면, 현 정권은 ‘비주류 TK’와 ‘신 PK’가 점령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대구 지역의 국회의원 12명 의원 가운데, 이른바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이 9명이나 된다. 이 중에서 6명이 경북중·고 출신이다. 나머지는 모두 서울에서 고교를 나왔다.

지금도 대구 지역에서는 ‘TK=경북고’라는 등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앞서의 관계자가 말하는 비주류 TK는 ‘비(非)경북고’ 출신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일각에서는 ‘범TK’라고 표현한다. 현재 범TK의 선두주자로 부각되는 곳이 대구 대륜고이다. 신 PK란 ‘포항·경북’ 출신을 말한다고 한다. 신 PK의 대표 주자로는 역시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가 꼽힌다.

여기에 또 하나, “PK가 10년 만에 회춘했다”라는 얘기가 회자된다. 10년 전 김영삼 정권 시절 잘나갔던 경남고 인맥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현 정부에서 잘나가는 ‘3대 고교 동문’으로 동지고·대륜고·경남고가 손꼽힌다. 그런데 이를 잘 살펴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이른바 ‘빅3’ 고교 동문의 상징적 인물이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그리고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 3인방’으로도 불린다.

국방부가 4월21일 소규모의 보직 인사를 단행했다. 여기서 이목을 끄는 인물은 김상기 신임 국방정책실장이었다. 국방정책실장은 한·미 관계 등 군사외교 업무를 총괄하는 국방부 내의 핵심 보직이다. 당초 이 자리에는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가 유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 정책 분야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는 지난 2월까지만 해도 사실상 홍교수로 내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국방부에서 강력한 항의가 있었다. 절대 현역 군인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두 달간 승강이를 벌이다가 현역 장성인 김상기 중장이 임명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당초 생각했던 민간인 정책실장 카드를 접고, 현역 장성으로 양보하면서 새롭게 내민 카드가 김중장이라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는 평가이다. 그는 이대통령의 동문 후배인 동지상고 출신이다. 

동지상고 인맥은 지방 실업계 고교 특성상 정·관계 인물이 드물다. 역시 정신적 지주는 이상득 의원이었다. 그는 1990년대 동문회장을 지냈다.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은 이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총동문회장을 맡아 동문회의 외연과 재정을 상당히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선의 이의원은 그동안 TK였지만 비주류 격으로 대접받다가, 현 정부 들어 노른자위 상임위인 국토해양위 위원장이 되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도 정치인 출신이다. 그는 경북도의원을 4선이나 했고, 한나라당 소속으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도의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지상고의 힘은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도 읽혀진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최규식 의원이 입수한 경찰 자료에 따르면, 총리실에 파견된 경찰 인사 11명 가운데 2명이 동지상고 출신이고, 이들은 특히 정보와 감찰을 담당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사저널>이 지난 1월13일 단독 보도한 ‘한상률 국세청장의 경주 골프 사건’에 이대통령의 측근 인물로 등장했던 정 아무개 병원장 또한 이대통령과 동지상고 동기 동창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한 이상득 의원(왼쪽)과 방송위원회 업무 보고에 참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시사저널 이종현

 

국방부·경찰 등 다방면에서 두각

대구 대륜고는 동문들 간의 유대감이 아주 각별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를 가리켜 동문들은 “경북고에 밀리는 ‘만년 2위’의 설움을 극복하기 인한 고육지책”으로 표현한다. 그런 대륜고가 최근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경북고의 벽을 뛰어넘을 기세이다. 특히 재경대륜고동창회는 서울 지역의 대구·경북 지역 동창회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대륜고 동문회의 최대 자랑은 재단법인 재경대륜장학회에 있다. 대륜장학재단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최시중 방통위원장이다. 최위원장은 얼마 전까지 이 재단의 이사장을 맡았다. 특히 이 장학재단은 지난해에만 무려 1억5천만원의 장학금을 모교에 전달하는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대륜고에는 선배가 한 계좌를 만들어 후배의 한 학년 학비를 전액 부담하는 제도도 있다. 동문들은 이 모든 규모와 제도를 정착시킨 일등 공신으로 주저 없이 최위원장을 꼽는다.

최위원장은 지난해 5월 총동문회로부터 ‘자랑스런 대륜인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 참가한 최위원장은 수상 소감에서 “대륜 생각만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라며 목이 잠기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모교 사랑 또한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륜고 인맥은 최위원장을 중심으로 갈래를 뻗어간다. 그 한 축으로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가 꼽힌다. 14년 선후배 사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막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용산 화재 사건으로 중도 사퇴했지만, 그가 남긴 족적이나 영향력이 만만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내정자의 3년 후배인 김수정 중앙경찰학교장을 비롯해 최동해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이상정 마포경찰서장 등 경찰 주요 보직에 대륜고 출신 인사들이 많다. 

최위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방통위의 핵심 보직으로 꼽히는 운영지원과장에 최근 오남석 과장이 임명된 것도 눈에 띈다. 그는 대륜고 출신으로 최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 국정원 3차장에 임명된 최종흡 차장 역시 대륜총동문회 40기 회원이다. 인수위 및 당선인 비서실 출신인 이병욱 환경부 차관도 주목해볼 인사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정통 PK인 경남고 인맥이 다시 뜬다는 것은 이채로운 대목이다. 그 중심에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이대통령의 고려대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이다. 지난 대선에서 고대교우회장을 맡아 상당한 공을 세웠다. 부산 출신의 천회장은 PK 출신 고려대 인맥의 허브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고 출신의 실세를 또 한 명 꼽자면 바로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들 수 있다. MB 정부 초대 경제 수장이었던 그에 대한 이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사공일 무역협회장 후임으로 청와대 경제특보를 강위원장이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불거지고 있다.

경남고 인맥은 주로 미디어 분야에서 강세를 나타낸다.
MB 캠프에서 뉴미디어팀장을 지냈던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구본홍 YTN 사장, 정국록 아리랑방송 사장 등이 미디어 분야에서 막강한 경남고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이밖에도 장수만 국방부 차관, 이종상 한국토지공사 사장, 이기우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김대식 민주평통 사무처장 등이 현 정부에서 중용된 인사들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김형오 국회의장은 당과 국회에서 ‘수장’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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