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왕비서관’막강 파워 여전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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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국무차장, ‘권력의 주체’로 다시 떠올라“정보 라인 장악했다”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돌아

▲ 2월25일 청계천에서 열린 ‘녹색 박람회’에 참석한 박영준 국무차장.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 4월2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상대는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었다. “지난해 11월5일 강남의 한 호텔에서 윤석만 포스코 사장을 만난 적이 있지요?” “지난해 12월에는 포스코 박태준 명예회장을 신라호텔에서 부부 동반으로 만나 식사를 했지요?” 느닷없는 예상 밖의 질문에 박차장은 잠시 숨을 골랐다.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자연인 신분이었습니다. 내용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우의원의 질문이 이어졌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을 만났습니까? 안 만났습니까?” 이때서야 사태를 감지한 이한구 예결위원장이 황급히 나서 “박차장, 그것은 답변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제지하는 바람에 질문은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해 ‘권력 사유화’ 당사자로 지목 ‘퇴청’

정권 초 ‘왕비서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국무차장이 다시 전면에 떠올랐다. 지난해 6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제기한 ‘권력 사유화’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청와대를 떠난 그는 지난 1·19 개각 때 차관급인 국무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을 10여 년간 모신 그는 서울시로 가서 정무국장을 지내며 이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정권의 핵심 인물이다.

그를 ‘찍어낸’ 정두언 의원은 개각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한 뒤 정국 방향과 인사 구도에 대한 나름의 구상을 요로를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했으나 인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박차장의 부활을 지켜보며 쓴잔을 마셔야 했다.

정권 초에도 그랬지만 박차장이 복귀한 뒤 관가에는 이런저런 말이 무성했다. 그의 복귀 배경에서부터 역할, 파워에 대한 소문이 시끌시끌했다. 어떤 이는 “몸을 낮추고 1분1초를 아껴 국정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관여하는 회의만 30개가 넘는다”라며 열심히 일만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박차장이 웬만한 일에 다 관여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인사와 관련해 그에게 줄을 대려는 이들이 길게 서 있다”라고 말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박차장만큼 실제 일을 만들어내면서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그가 중용된 배경을 설명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영준 파워’는 이명박 정권의 현재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얼마 전 만난 한나라당의 한 친이명박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박차장을 이상득 의원의 심부름꾼 정도로 보는 인식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는 스스로가 이미 거대한 권력의 주체가 되었다.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는 이제 ‘소통령’이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힘을 가졌다.”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 개입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그는 최근 들어 두 가지 측면에서 정·관계에서 주목되었다. 우선 정보 라인이라는 관점에서이다. 여권 주요 인사나 사정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박차장이 정보 라인을 장악했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이들이 정보가 움직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찰과 검찰의 정보 라인이다.

지난 3월 경찰청 정보국장이 된 윤재옥 치안감은 박차장과 같은 대구 오성고 출신이다. 박차장이 한 살 더 나이가 많다. 경남 합천 출신으로 대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윤치안감은 경찰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했다. 경찰대 출신 가운데 경감·경정·총경·경무관·치안감으로 제일 먼저 승진하는 등 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2년 전 치안감으로 승진해 대구지방경찰청장으로 갔다가 이번 인사에서 경찰 정보를 총괄하는 정보국장이 되었다.

검찰에서는 권익환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이 주목된다. 그는 경북 칠곡 출신이다. 어릴 때 이사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범죄 첩보나 정보를 수집하는 범죄정보1담당관실과 달리 10여 명으로 구성된 2담당관실에서는 범죄와 관련된 사항도 수집하지만 정치권이나 사회 주요 인사들과 관련된 동향 정보 등을 주로 수집한다.

국무총리실에서 정보를 총괄하는 김성완 정보관리비서관도 박차장과 절친한 관계이다. 대구가 고향인 김비서관은 대륜고와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70여 명의 직원이 움직이는 정보관리비서관실은 검·경,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이른바 ‘4대 권력 기관’은 물론 금융감독원 등에서 파견 나온 이들이 움직이는 정보의 집산처이다. 총리실은 지난 3월9일 업무를 조정하면서 정보관리비서관은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직속으로 했다.

박차장은 국정운영실, 사회통합정책실, 정책평가분석실, 새만금사업추진기획단 업무 등을 맡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담당과 관계없이 힘 있는 곳으로 흐르는 것이 정보의 속성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는 진작부터 박차장과 친밀한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이밖에 최근 국가정보원의 ‘국회팀장’이 고려대를 나온 대구·경북 출신 인사로 바뀐 점이나 국세청의 정보를 총괄하는 세원정보과장에 경북 안동 출신으로 경북고를 졸업한 인사가 자리 잡은 것이 주목된다. 전반적으로 각 기관의 정보 라인에 포진한 이들은 대구·경북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박차장과 실제로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공교롭게도 그렇게 배치가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박차장과 연결지어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특정인이나 특정 지역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인사들이 각 기관의 주요 정보를 다루는 자리에 있다면 자칫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가 편향될 위험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4백만 회원 가진 ‘선진연대’도 주목

‘정보 라인’과 함께 주목된 것이 ‘선진국민연대(선진연대)’이다. 선진연대는 지난 대선 때 박차장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회원 수가 4백만명이 넘는다는 사조직이다. 조직과 조직을 엮은 이른바 ‘네트워크 조직’이다. 지난 4월12일자 조선일보와 4월13일자 동아일보에는 선진연대를 강하게 비판하는 사설이 실렸다. 여권 내에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조선일보는 ‘현 정권은 지금 노무현 정권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행태가 같으면 말로 또한 같은 법이다’라고, 동아일보는 ‘정부, 청와대, 공기업은 물론이고 금융 기관을 비롯한 민간 기업 사외이사에 이르기까지 선진연대 출신들이 끼어들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라고 선진연대를 질타했다.

이처럼 선진연대에 대한 비판이 무성하자 청와대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에 주목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한 인사는 “청와대가 선진연대와 관련해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선진연대 출신들이 어디로, 어떻게 진출했는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당장 문제가 있다기보다 혹시라도 ‘사고’를 치게 되면 문제가 되니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예방하는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이해된다”라고 설명했다.

박차장은 일을 할 줄 알고, 부지런하며 추진력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 지금의 구조대로라면 사정기관의 ‘감시’ 시스템에서도 그는 ‘예외’인 것으로 보인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위험하다는 것이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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