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실세들에 휘둘린 포스코 회장 인사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5: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은 천신일 회장과 박영준 국무차장 외에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29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지난 4월21일“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과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 정권 실세들이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 개입했다”라고 주장했다. 박국무차장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을 만난 사실은 시인했으나 외압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부인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2월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의 사퇴설이 흘러나오던 시점부터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고 보고 포스코 안팎을 취재해왔다. <시사저널>은 권력 실세들이 포스코 회장 인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막바지 취재를 하는 상황에서 우의원의 폭로를 접했다. 정치적으로 보면 포스코는 이미 권력에 ‘접수’되었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천신일 회장과 박영준 국무차장 외에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12월29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장소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에 있는 박명예회장의 사무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권력 실세들의 포스코 회장 인사 개입 사건’은 ‘형님’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구택 전 회장의 사퇴에서부터 정준양 회장 체제가 등장하기까지 권력 실세들이 어떻게 포스코 회장 인사에 관여했는지 그 전말을 추적했다.

지난 1월15일 열린 포스코 이사회에서 이구택 당시 포스코 회장은 자진해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적 외압이나 외풍에 의한 사임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새 인물이 새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포스코는 이날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보다 매출은 38%, 순이익은 20.9% 증가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2008년부터 유·무형의 압박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한 전철이 이번에도 되풀이된 것이다. 김영삼 정권 때는 박태준 명예회장이, 김대중 정권 때는 김만제 회장이, 노무현 정권 때는 유상부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하지만 당시 정·재계에서 이 전 회장이 스스로 물러났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미 2007년 대선 직후부터 그의 퇴진설이 여권 내부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포스코 회장이 되었다. 촛불 시위 이후 여권이 진용을 정비한 2008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유·무형의 압박이 포스코에 가해졌다.

우선 검찰 수사가 이루어졌다. 2005년 대구지방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았을 때 포스코가 감세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구택 회장 자택 압수수색설’까지 돌았을 정도였다. 2008년 11월에는 당시 한수양 포스코건설 사장이 에너지 전문 기업인 케너텍으로부터 각종 청탁과 함께 4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 의해 구속되었다. 케너텍 고위 경영진과 이 전 회장은 고교 동문이었다. 이 사건은 최근 한 전 사장이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중수부가 당시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아들이 병역을 회피한 의혹이 있다는 해묵은 이야기도 다시 불거졌다. 당시 분위기라면 이 전 회장으로서는 ‘안전’에 위협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포스코청암재단이 중심이 되어 시민단체 인사들을 지원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2006년 이후 30여 명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거액을 들여 해외 연수를 보내준 사실은 청와대를 자극했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이와 관련해 포스코 관계자가 청와대로부터 강한 질책을 들은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노무현 정권과 가까운 일부 사외이사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권력층이 불편해한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청와대는 이처럼 ‘촛불 세력’ 막후를 조사하면서 포스코를 강하게 압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압박에 처한 이 전 회장과 청와대 비서관을 그만두고 ‘자연인’ 상태였던 박영준 국무차장이 연결된 것이 이때쯤이다. 어느 쪽에서 먼저 손을 뻗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해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으로 낙마한 사람의 후임자가 정치적인 흐름 속에서 정해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박차장은 과거에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전략팀장을 지낸 ‘대우맨’ 출신이다. 이 전 회장과 박차장이 연결되는 과정에는 대우그룹에서 고위직을 지낸 ㅈ씨가 있다. 그가 두 사람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

이 전 회장이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라는 정권의 뜻을 최종 확인하고 퇴임 결심을 굳힌 것은 지난해 11월 하순쯤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초, 이 전 회장이 박태준 명예회장을 찾아가 “사퇴하겠다”라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여권 핵심부에도 비슷한 시기에 퇴임 의사를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회장의 전임인 유상부 전 포철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박명예회장은 이 전 회장이 유 전 회장과 어울리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다. 정권의 뜻을 확인하고 박명예회장과의 관계마저 틀어진 이 전 회장으로서는 퇴임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후임’에 대해서는 생각이 같았다. 내부 인사가 포스코 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만큼 과거 김영삼 정권 때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가 포철 회장으로 왔던 것처럼 외부인이 포스코 회장으로 올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은 ‘낙하산’을 막아야 한다는 데는 뜻을 같이했지만 염두에 둔 인물은 서로 달랐다. 박명예회장은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현 포스코건설 회장)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 정통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1월21일 포스코 창설 요원들이 윤사장을 지지하는 맥락의 성명서를 낸 것이 반증이다. 반면, 애초 뜻을 같이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구택 전 회장은 막판에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 카드를 빼들었다.

윤석만-박태준 대 정준양-이구택 라인

▲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뉴시스

결국,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은 내용적으로 보면 윤석만-박태준 라인과 정준양-이구택-정권 실세 라인 간의 한판 대결이었던 셈이다. 두 후보는 홍보·마케팅 분야의 전문가(윤석만)와 광양제철소장을 지내는 등 현장에 강하다(정준양)는 차이가 있었다. 권력 입장에서 운신하기에는 아무래도 ‘정준양 카드’가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정준양 회장과 관련해서는 당시 이러저러한 의혹이 불거졌었다. 자사주를 매입했다가 되팔아 차익을 남겼다거나 친인척들이 납품을 했다는 의혹 등이다.

ㅔ지난 1월29일 차기 회장을 선임하기 위해 열린 ‘포스코 CEO 추천위원회’에서 이와 관련해 “아무 문제가 없다”라는 감사실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이런 문제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소지가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박명예회장의 영향력도 배제하고 ‘흠’이 있기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운 인사를 앉혀놓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분석했다.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구택 전 회장이 ‘포스코 회장 정준양’이라는 권력의 뜻을 분명히 접한 것은 1월 초순이다.

포스코 회장 구도가 잡혀가는 과정에서 당시 ‘자연인’이었던 박영준 국무차장은 지난해 12월5일 저녁 강남의 한 호텔에서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을 만났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 자리에는 박차장과 친한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의 내부 인사 두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해 12월24일에는 박명예회장과 부부 동반으로 시내에 있는 한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복수의 정·관계 핵심 인사에 따르면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당시 포스코 윤석만 사장에게 전화를 건 것 또한 사실로 확인되었다. 천회장은 과거에 콜타르를 정제해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납품하는 사업을 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박태준 명예회장과도 잘 아는 관계이다.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서 천회장은 박명예회장과도 여러 차례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은 12월29일 박명예회장을 만났다. 이날 만남에 대해 양측은 말이 다르게 부인하고 있다. 이의원측에서는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에 박명예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박명예회장의 한 측근은 “내 기억에는 행사장에서 만나기는 했으나 따로 만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사저널> 취재 결과 두 사람이 이날 만난 것은 분명하다. 이 자리에서 박명예회장은 “포스코 회장에 외부 사람이 와서는 안 된다”라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이의원은 박명예회장의 한 측근에게도 포스코 회장 인선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독립 경영을 하기 위해 사내 이사(6명)보다 많은 사외이사(9명)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번 포스코 회장 인사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면접 과정에서 윤석만 사장이 정치 권력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사외이사들은 외풍을 막는 ‘울타리’ 역할을 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정준양 회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교체된 사외이사가 이명박 대선 후보 정책자문단에서 활동했던 인사와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인사라는 점은 향후 포스코가 외풍에 취약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하게 한다.

현재 정부가 포스코에 갖고 있는 지분은 전혀 없다. 지난 2000년 민영화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지분율이 40%를 넘는다. 굳이 연관성을 찾는다면 국민연금이 4.31%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이 2.85%, 미래에셋이 4.5% 등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민간 기업의 CEO 인사를 선임하는 과정에 권력 실세들이 관여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친이명박계인 한 국회의원의 “인사는 곧 이권과 연결된다”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지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