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독재 타도’에 한몸 바치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5.05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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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인권상 받는 버마의 민꼬나잉

ⓒEPA

2007년 8월, 버마(미얀마)의 한 형무소 특별 독방에 88세대의 학생운동 리더들이 수용되었다. 학생운동 리더들은 사형수처럼 열악한 독방에 갇혀 있다. 건강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수감된 리더들 중에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뒤를 이어 버마 민주화운동의 새로운 상징이 된 민꼬나잉도 있다. 그는 2007년, ‘샤프란(선황색 상징, 버마 승려복의 색) 항쟁’을 촉발한 여러 시위를 조직한 혐의로 무려 65년형을 선고받았다.

민꼬나잉의 본명은 파우유툰(Paw Oo Htun)이다. 민꼬나잉은 필명으로 ‘왕 혹은 독재자(Min)에게(Ko) 승리한다(Naing)’를 뜻하며 버마 민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1988년 8월에 결성된 전(全) 버마학생연합의 위원장으로 학생운동가 출신이다. 활발한 민주화운동으로 체포된 뒤 1989년 3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15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잠잠했던 민꼬나잉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06년 9월이었다. 다른 학생운동 리더 출신 네 명과 다시 구속되면서 이들을 풀어달라는 석방 탄원 서명운동이 펼쳐졌다. 군사 정권의 서슬 퍼런 감시에도 불구하고 무려 50만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버마 내부의 움직임에 더해 국제 여론까지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자 결국, 버마 군사 정권은 2007년 1월 그들을 석방했다. 풀려난 민꼬나잉은 쉬지 않았다. 버마 군정이 연료비를 다섯 배나 인상하자 다시 반정부 시위의 선봉에 섰다. 결국, 풀려난 지 7개월 만인 2007년 8월에 다시 구속되어 현재도 수감 중이다.

광주인권상은 5·18 민중항쟁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공헌한 국내외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되는 상이다. 광주인권상 심사위원회는 2009년의 수상자로 민꼬나잉을 선정했다. 심사위원회측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던 민꼬나잉과 그 동료들의 모습은 5월 광주가 기억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바로 그 모습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버마인으로는 지난 2004년 아웅산 수치 여사의 수상에 이어 두 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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