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평정할 ‘자격’은 충분했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5.05 21: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BS <해피선데이>, 새 코너 <남자의 자격> 등으로 호평받아

▲ 의 (왼쪽)과 승승장구하고 있는 새 코너 (오른쪽). ⓒKBS 제공

예능계의 적벽대전이라는 일요일 밤 시간대 버라이어티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한때 노쇠해가는 것처럼 보였던 <1박2일>은 회춘하는 데 성공했다. <패밀리가 떴다>는 대본 논란 이후 김종국에 대한 비난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궤멸하는 분위기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는 날로 떨어지는 리얼 판타지성으로 인해 고전하더니, 정형돈 열애설로 결정타를 맞으며 최악의 국면으로 진입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야심차게 준비한 새 코너는 <대단한 희망>이었다. 여기에 김용만, 탁재훈, 신정환, 김구라, 이혁재, 윤손하가 투입되었다. 특히 탁재훈을 영입한 것 때문에 상당한 화제를 낳았다. <해피선데이>는 <남자의 자격>을 준비하며 맞불을 놓았다. 여기에는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 김성민, 이정진, 윤형빈이 투입되었다. 이경규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떠나 <해피선데이>에 가세한 것 때문에 상당한 화제를 낳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MC들의 중량감은 <대단한 희망>에 턱없이 못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매체의 관심도 <대단한 희망>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대단한 희망>은 ‘대단한 절망’이 되었다. 엄청난 비난과 냉대 속에 한 달도 다 채우지 못하고 종영이 결정된 것이다. 실로 전광석화 같은 결정이었다. 이렇게 재빠른 퇴출은 일요일 밤 시간대 예능 경쟁의 절박함을 보여주기도 했고, 또 그렇게 황급히 내려야 할 만큼 ‘싹수’가 노랬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남자의 자격>은 상당한 호평 속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경규는 드디어 소원을 푼 것 같다. <라인업>의 대재난을 딛고, 친정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떠나면서까지 재차 리얼 버라이어티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남자의 자격>에 호평이 쏟아지며, 일요일 밤 예능 격전의 승자로 <해피선데이>가 자리를 굳혔다. 한쪽에는 <1박2일>, 또 다른 쪽에는 <남자의 자격>을 거느리고 강호를 호령하는 패자가 된 것이다. 강호동과 이경규가 일등공신이며, 김국진이 그것을 받쳤다.

<1박2일>도 새로운 기획으로 ‘회춘’ 성공

<무한도전>도 한때 식상한 캐릭터와 가중되는 비난으로 사양길에 접어들었었다. 하지만 매회 거듭나는 새로운 기획으로 식상함을 떨쳐버리며 비난을 존경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무한도전>이 이렇게 회춘하던 시기 <1박2일>은 엄청난 비난을 당하며 사양길에 접어들었었다. <1박2일>에 조금만 튀는 내용이 나와도 비난의 십자포화가 작열했다.

하지만 <1박2일>은 겨울을 맞아 처절한 야생 정신으로 이것을 정면 돌파했다. 마치 극기 훈련과도 같았던 심기일전 특집을 거친 후 계속해서 극한의 야생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는데, 초기에 가학 논란이 잠시 일었지만 사람들은 결국 <1박2일>의 기에 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1박2일>은 회춘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1박2일>의 캐릭터들에게 좀더 끈끈한 정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정이 들면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사실 남자 여섯 명이 매주 같은 패턴의 여행을 하는 것에 질리는 것이 당연한데, 정이 들면 질렸던 것도 새롭게 느껴지게 된다. 이것은 <1박2일>이 멤버들 사이의 ‘정’을 추구하는, 사람 냄새 나는 버라이어티라는 본래의 색깔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한도전> 짝퉁으로 출발했지만 <라인업>은 망하고 <1박2일>은 성공한 것은, <1박2일>에는 <라인업>에 없었던 ‘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1박2일>은 위기를 맞아서도 그 본래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1박2일> 가학 논란이 완전히 사라진 계기는 ‘박찬호 특집’이었다. 박찬호는 요즘의 스타가 아니라 한물 간 운동 선수이다. <1박2일>은 ‘핫’한 스타가 아닌 운동 선수를 초대해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엮어냈다. 그것은 ‘시청자 특집’으로 이어졌다. 역시 스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다. 가장 최근에는 ‘친구야 특집’을 마련하면서 화려한 스타와의 트렌디한 재미가 아니라, ‘정’을 추구한다는 프로그램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이 특집에도 시청자의 찬사가 쏟아졌다.

<1박2일>은 온 가족이 즐기는 시간대에 편안하게 공감하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굳히면서 위기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

▲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종영한 의 새 코너 의 출연진들. ⓒMBC 제공

<일밤>은 <대단한 희망> 때문에 ‘절망’

<대단한 희망>은 프로그램 자체가 까칠했다. 1회 때 PD가 돌출하며 출연자들과 충돌하고, 출연자들끼리도 까칠했다. 여기의 출연자들은 남을 감싸고 당해주는 컨셉트가 아니었다. 탁재훈과 신정환은 남에게 면박 주는 캐릭터로 위기에 처해 있으며, 김용만도 웰빙 1인자의 느낌이었고, 김구라도 공격적인 캐릭터이다. 이런 캐릭터의 스타 MC들을 불러모아 까칠한 느낌의 쇼를 구성했으니 <라인업>과 대단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남자의 자격>은 사람 냄새 나는 ‘정’을 전해주는 버라이어티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남자의 자격> 출연자들은 모두 ‘굴욕’ 코드의 소유자이거나, ‘듣보잡’ 캐릭터로서 철저히 약자, 루저, 패배자, 보통 사람의 느낌을 고수했다. 이경규는 <명랑히어로>를 거치며 굴욕의 아이콘이 되었고, 김국진은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와 신정환에게 면박당했던 인물이다. 유일한 독설 코드인 윤형빈도 여기서만큼은 ‘왕비호’가 아닌 평범하고 성실한 이웃집 청년 같은 분위기였다.

그들이 서로 기대고, 아픔을 나누며 고생을 이겨간다는 것이 <남자의 자격>의 내용이다. 그 사내들 사이에는 ‘정’이 면면히 흐른다. 첫 회부터 그들은 10년지기처럼 행동했다. 폭군 캐릭터일 수 있었던 이경규는 여기서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히 무너뜨렸다. ‘비실’과 ‘실패한 인생’의 아이콘인 김국진이 ‘이경규 잡는 매’로 등장한 것이다. 김국진은 워낙 약한 이미지라서 남을 타격해도 위압감이 안 들고 오히려 통쾌하기만 하다. 이경규는 김국진에게 당하며 군림하는 1인자가 아닌, 정이 가는 큰형님 이미지를 굳혔다.

<대단한 희망>은 여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들에게 면박 주던 사람들을 모았고, <남자의 자격>은 반대였다. 시청자는 약자를 선택했다. 결국, 희망은 절망이 되고 <남자의 자격>은 시청자로부터 사랑받을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하여 일요일 밤 시간대에 <1박2일> <남자의 자격>이 연이어 사내들의 정을 전해주며 사람 냄새를 원하는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트렌디한 재미를 원하는 사람은 <패밀리가 떴다>를 선택하는 국면이 펼쳐진 것이다. 정에서도 밀리고 아기자기한 트렌디함에서도 밀린 전통의 명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