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 ‘벚꽃 잔치’는 끝났나
  • 도쿄·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09.05.0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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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진출 기업들, 경기 침체 여파로 수주 끊겨 허덕 귀국 보따리 싸는 업체들 갈수록 늘어

▲ 한국 IT 관련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일본 도쿄 치요다 구 신가스미까세끼 빌딩.

요즘 일본의 나리타·하네다 공항에는 한국에서 구입한 상품을 가득 들고 내리는 일본 관광객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띤다. 지난 4월25일부터 시작된 골든위크 기간에는 이런 모습이 더 확연했다. 주로 서울의 명동·동대문·남대문 등지에서 쇼핑을 하고 온 사람들이다. 반면, 일본 내 한국 IT(정보기술)기업들, 특히 SI(시스템 통합)기업들은 하나 둘씩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일본의 경기 침체로 일본 내 한국 IT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코트라 도쿄 IT지원센터 오창렬 차장은 “일본의 경기가 침체되어감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신규 수주가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SI업계는 거의 초토화된 형국이다. 한국 SI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일본 대기업의 2~3단계의 하청을 거쳐 일을 수행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수주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어려워지자 일본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에 대한 발주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IT기업들은 엔고의 환율 효과는 보지 못하고 일본 경기 침체의 악영향만 받고 있다.

모바일 쇼핑몰을 운영하는 모바일콤비니 사의 기타사와 코타로 사장은 “한 회사의 경우 인력파견업을 통해  15억 엔의 월 매출을 올렸으나 최근에는 경기가 안 좋아 3억 엔으로 줄었으며, 4백명의 직원이 70명으로 대폭 줄었다. 일본 기업이 이 정도이면 한국 IT기업들의 경우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한국 IT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 일본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IT 인력 지원과 우수한 IT 솔루션 및 제품 그리고 일본 내 IT 수요의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에 힘입은 바 컸다. 또, 당시 한국의 IT시장이 포화 상태였던 점도 한국 업체들을 일본으로 몰려들게 한 한 요인이었다. 그동안 한국의 기술에 대해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던 일본 기업들도 한국의 IT 기술이 일본보다 한 단계 앞선다며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또, 유능한 한국 IT 엔지니어들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한국 IT 인력들을 참가시켰다. 

일본에 진출한 SI업체인 윈프로젝트의 김경아 사장은 “조선 시대의 우리 도자기 기술이 일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이후 아마도 일본에 눈에 띄게 영향을 미친 분야는 한국의 IT 기술일 것이다”라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일본 내 사업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외국산이라는 보이지 않는 차별, 의사 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화, 정서적인 차이 등 때문에 일본에 진출한 기업들의 경우 성공보다는 실패한 기업들이 더 많았다. 그동안 한국 IT기업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일본에서 생존 능력을 배양했다.

일부는 틈새시장 공략해 위기를 기회로

이런 상황에서 이번 경기 침체는 한국 IT기업들에게 가히 쓰나미로 작용했다. SI업계가 제일 크게 타격을 받았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엔지니어 모시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이력서를 가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엔지니어들이 많다. 급여를 삭감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저항하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형편이다. 대부분 조직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고민이 크다. 실직자들의 경우 비자 문제도 고민거리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에 기다려주는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이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업들도 있다. 컴퓨터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원격으로 서비스해주는 솔루션을 판매하는 RSUPPORT는 이런 불경기 속에서도 매출이 매년 30% 정도 증가하고 있다. 이 기업의 송천홍 일본 지사장은 성공의 요인으로 “기술이 매력적이고 틈새시장을 공략했으며 시장성이 있는 제품을 개발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5~6년간 지속적으로 일본 업체와 신뢰 관계를 맺어온 점도 불황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지식경영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온더IT의 장진영 사장은 “기업들이 불황으로 인원을 줄이자 경영 노하우가 더 필요해지면서 우리 회사의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라며 지금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현재 IT와 관련해 일본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은 약 3천여 명이다. 이들은 부각되지 않은 산업 역군이다. 그동안 일본 시장에 적응하는 능력을 배양해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번 위기만 극복하면 추동력을 갖고 성장할 가능성이 큰 기업들이다. 이들에 대한 지원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 조은호 소장.
일본 경기가 어렵다. 일본 내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실적이 아주 안 좋다. 우리 센터에 17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1~2개 업체는 괜찮지만 나머지는 지난해 말부터 신규 수주가 중단된 상태이다. 기존의 조직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생존 방법은 있는가?

일본 시장의 경우 경기가 어렵다고 철수하면 다시 진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어렵더라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센터 내에 입주해 있는 기업의 경우 기술력과 자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년 말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IT기업들의 경우 환율 효과는?

일본 IT시장의 경우 금방 결과가 나지 않는다. 최소한 1년 정도는 시간이 걸린다.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다. 다만, 여기서 지난해에 영업해서 이익이 발생한 기업의 경우 환율 효과는 있다.

특히 SI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들의 경우 경기가 어려우면 접대비를 줄이고 그 다음 출장비, 마지막으로 IT 투자비를 줄인다. 대기업에서 하청에 하청을 받아 수주하는 한국 기업의 경우 신규 수주가 없어 아주 어렵다.

센터에서는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

일본에 진출한 기업들에게 가장 큰 애로 사항은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점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 6월에 ‘한국 IT 비지니스 2009 상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정보 보안 관련 15개사와 센터에 입주해 있는 10개사 등 25개사가 일본의 바이어와 직접 상담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본 내 20만개 회사에 홍보할 예정이다. 그리고 일본 IT 유관 기관인 MCPC CIAJ 같은 곳과 협력하고 있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라는 점이 기존의 상담회와 다르다.

일본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IT기업에 한마디 한다면?

우리 센터에 입주하고자 하는 기업은 언제든 환영이다. 다만, 일본 시장에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국내에도 좋은 기업이 있지만 일본화 작업이 미흡하다. 이 점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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