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천사와 악마’
  • 조명진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전문역) ()
  • 승인 2009.05.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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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출신 조지 소로스와 버나드 메이도프 각각 투자의 귀재·최악의 사기범으로 엇갈려

ⓒAP

올해 칸영화제(5월13일 개최)에서는 <월스트리트의 사탄>이라는 제목으로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될 예정이다. 미국의 드루일헷 감독이 만들었다. 나스닥 증권거래소 이사장을 지낸 버나드 메이도프는 돈 세탁과 위증, 사기 등 11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최대 1백50년 징역형에 처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그는 6월15일 법정에서 1백50년 징역과 손해배상금으로 1천7백억 달러를 구형받을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의 유대인 성공 신화는 조지 소로스에서 시작해서 메이도프에서 끝난 것인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금융 위기로 경색되었던 2008년에도 소로스는 11억 달러를 벌어들임으로써 환투기와 투자의 귀재임을 입증했다. 반면, 메이도프는 6백50억 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 액수의 사기범으로서 많은 헤지펀드와 함께 몰락했다. 소로스는 재귀성 이론(금융시장의 참여 주체가 서로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면서 선제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시장의 끊임없는 변화와 상호 작용, 역동성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이론)을 접목시킨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승승장구했다. 1969년에 짐 로저스와 함께 세운 퀀텀펀드는 4백만 달러로 시작해 1989년까지 20년간 연평균 수익률 34%를 기록하며 헤지펀드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소로스, 정의의 편에 서려고 노력한 인물로 평가

소로스와 메이도프는 월스트리트에서 유대 자본가의 성공과 몰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인물이다. 메이도프는 유대인 네트워크를 자신의 폰지 스킴(일반적으로 고수익을 제시해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후 새 투자자의 원금으로 앞 사람의 이익을 챙겨주다 끝내는 사기 수법을 말한다)을 운영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반면, 소로스는 나름으로 정의의 편에 서려고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월가의 유대인 중 성공 신화로 기록될 조지 소로스(왼쪽)와 몰락한 버나드 메이도프(오른쪽). ⓒEPA(왼쪽). 로이터(오른쪽)

소로스는 1998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세계 자본주의 위기의 본질에 대해 거론했다. 1992년 자본주의를 잘 이용해 영국 은행을 뒤흔든 사나이로서 역사에 기록될 그가 자본주의의 위험을 논했다는 사실이 쉽사리 믿기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소로스는 놀랍게도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금융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소로스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적·윤리적 가치가 자본주의의 맹목성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장 근본주의에 대한 경계, 도덕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것을 뒷받침하는 세계적인 정치적 의사결정기구 창설 등이 소로스가 제안하는 대안들이다.

이 책에서 소로스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야말로 위기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과 중심을 오가며 이윤 극대화를 꾀하는 금융자본, 그것이 주변부를 급격히 이탈함으로써 주변의 위기가 전세계로 파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해 거액을 거머쥔 소로스이기에 위기를 경고하는 그가 이중적으로 보인다. 소로스는 10년 뒤인 2008년, 그의 저서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신용 경색을 10년 전처럼 재귀성의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1998년 ‘세계 자본주의 종말’을 예언했던 조지 소로스는 10년 만에 다시 금융시장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그런데 지난 11월 미국 하원 청문회에 불려나간 4명의 기라성 같은 헤지펀드 거물들 중에는 소로스도 있었다. 헤지펀드의 대부 4명이 지난 11월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금융 위기와 헤지펀드와의 관련성을 확인하러 출석했다. 출석한 사람들은 소로스 펀드 메니지먼트의 조지 소로스 회장, 폴슨 앤 코의 존 폴슨 회장, 하빙거 캐피탈 파트너스의 필립 펠콘 회장 그리고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제임스 사이몬스 회장이었다.

질의를 한 하원의원들은 마치 5공 청문회 때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질의하던 한국의 국회의원들 같았다. 날카로운 질문과 공격적인 방어가 아니라 정부 규제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헤지펀드의 미래를 염려해주기까지 했다. 금융 위기에서 헤지펀드의 폐해에 따른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자리치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소로스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볼커와 런던 정경대학(LSE) 동창이다. 볼커는 2003년에 출간된 소로스의 책 <금융의 연금술>에 추천사를 써줄 정도로 소로스와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헤지펀드의 대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의 이러한 관계는 ‘미국판 정경 유착’으로서 소로스 스스로가 지적하는 자유 시장경제 원리의 또 다른 약점이다. 참고로 볼커는 1979년 카터 행정부 시절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했고, 1983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서 연임된 바 있다.

메이도프가 1960년에 창업한 메이도프 투자증권은 2008년 월스트리트 해당 업종에서 6번째로 큰 회사였다. 당초 메이도프는 사기 규모가 5백억 달러 규모라고 주장했는데, 검찰의 수사 결과 1백50억 달러가 더 늘어나 6백50억 달러에 이른다. 피해자는 기관과 개인 투자자를 합쳐 총 4천8백명에 이른다. 소로스가 “신용은 자본주의의 근원이다”라고 말한 것을 볼 때, 메이도프의 초대형 폰지 사기는 같은 유대인인 소로스의 발등만 찍은 것이 아니라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 비수를 꽂으며 더 강력한 정부 규제를 불러들였다.

메이도프, 자선사업가 이미지 앞세워 투자자들 농락

기관 투자가와 개인 투자자들이 메이도프라는 월스트리트의 큰손에게 친분만 믿고 거금을 맡겼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자선 사업가라는 점이다. 소로스와는 재단을 통해서 사회 사업을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메이도프는 미국 유대인 총회의 재무부장를 맡은 적도 있다. 1백90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갖고 있는 메이도프 패밀리 재단을 통해서 병원과 문화 행사에 기부 활동을 해왔었다. 메이도프 체포 이후 이 재단의 자산은 연방법원에 의해서 몰수되었다.

메이도프는 워싱턴의 정치인들·실력가들과 밀착되어 있었다. 영향력 있는 인사들 덕분에 메이도프의 사기 행각이 오랜 기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 증권거래감독원은 1999년에 이미 사기 혐의의 증거들을 알았지만, 수사에 제대로 착수하지 않았다.

월가가 유례 없는 금융 위기로 흔들리면서 금융계를 주도해온 많은 유대인이 타격을 받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 사건으로 유대계 자선단체와 많은 유대인이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다. 메이도프가 벌인 사기 규모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부도났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를 요청하며 신청한 5백70억 달러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메이도프의 사기 사건이 유대인들의 대중적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건으로 반유대 정서가 확산될 것에 대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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