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좋지만 칼바람은 싫다”
  • 이철현 경제전문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5.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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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직원들 “연봉 1위에 신의 직장은 과장된 말”…신입 사원들이 불안에 떤다

김아무개씨(32)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학 재학 중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재원이다. 삼일회계법인 회계사로 일하다가 몇 해 전 산업은행으로 전직했다. 컨설팅이나 회계 감사라는 회계사 업무 특성상 고객이나 감사 대상 업체에 방문해 현장 근무를 하다 보니 업무의 안정감이 떨어지는 것이 싫었다. 회계사의 꿈인 파트너까지 오르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와 달리 산업은행은 업무 범위가 명확하고 고용 안정성도 높다. 산업은행은 공인회계사(CPA)나 공인재무분석사(CFA) 같은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한다. 김씨는 “정책금융 기관이라는 산업은행의 공공적 성격이 마음에 든 데다 업무나 고용의 안정성이 높아 입사를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전체 임직원 중 중간 관리자가 66%

김씨는 산업은행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한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당황스럽다. 김씨의 연봉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산업은행이 공기업 연봉 순위에서 항상 1~2위를 차지하다 보니 ‘신의 직장’이라는 부러움 섞인 비난을 받을 때는 난처하기까지 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3일 알리오사이트(www.alio.go.kr)를 통해 공기업 연봉 순위를 공개했다. 산업은행 평균 연봉은 9천2백70만원으로 한국거래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지난해까지 늘 1위를 차지하다가 올해 2위로 물러났다. 산업은행 자회사인 산은캐피탈은 8천5백만원으로 4위에 올랐다.

김씨는 “(산업은행에는) 20~30년 근속 직원 수가 많다 보니 평균 연봉이 높아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인력 구조(표 참조)를 보면, 전체 임직원 2천2백63명 가운데 책임자로 분류되는 중간 간부 수가 1천4백90명이나 된다. 근속 20~30년 된 중간 관리자가 전체 임직원의 66%를 차지하는 셈이다. 일반 행원 수는 6백20명에도 못 미친다. 일반 회사 조직이 피라미드 형인 것을 감안하면 산업은행의 마름모꼴 조직 구성은 기형적이라 할 만하겠다. 산업은행 내규에는 직원이 범죄 행위나 회사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는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해고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산업은행에 입사하면 본인이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는 한 다닐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인사 적체가 심각하다. 조직 운영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생동감을 찾기 쉽지 않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처럼 공무원 조직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폐해는 고스란히 안고 있다. 금융산업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이 공기업이라는 보호막을 벗었을 때 금융 환경에 적응하고 시장 경쟁을 견뎌낼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이다.

산업은행 민영화 조치를 바라보는 내부 직원 사이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산업은행이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으로 자리 잡으려면 강도 높은 개혁과 함께 민영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임직원 사이에 이의가 없어 보인다. 다만, 민영화 조치로 인한 후폭풍을 우려한다. 인사 적체를 없애고 첨단 금융 기법에 익숙한 우수 인력을 유치하려면 인력 조정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산업은행 직원들은 민영화 조치가 고용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책임자급 이상 직원 다수는 산업은행 개혁과 민영화를 환영하지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들은 민영화 조치가 달갑지만은 않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한 산업은행 직원은 “누릴 것 다 누린 장기 근속자들은 민영화 조치를 반길지 모르겠으나 고용 안정성을 높이 사 최근 입사한 직원들은 께름칙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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