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광고 볼모로 언론에 재갈 물리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5.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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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신문 부수 공사 제도 개선안’ 기습 발표 신문·잡지사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진행해 반발 클 듯

▲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ABC. ⓒ시사저널 임영무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가 지난 5월6일 ABC 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잡지사에 대해서만 정부 광고를 게재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ABC 공사 제도 개선 대책’을 발표하자 신문업계에서 강한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 신문 부수 공사) 제도는 신문·잡지 등이 자진해서 보고한 유가 및 발행 부수를 조사한 후 공개하는 제도이다. 이는 신문·잡지에 대한 광고 단가 책정의 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 ABC협회 회원사는 2백38개. 이 가운데 신문이 1백78개, 잡지는 28개, 전문지는 21개이다. 2008년 현재 6개 일간지(중부매일·충북일보·농민신문·메트로·AM7·포커스)와 23개 잡지, 77개 주간신문만 ABC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 일간지는 2005년 이후로는 부수 검증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중앙 일간지는 ABC협회의 부수 검증 결과와 신문사가 자체적으로 신고한 내용이 차이가 나 신문고시를 위반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해 부수 검증을 기피하고 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신문들의 경우, 부수가 공개되면 광고 단가가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유명무실해진 ABC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개선 대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화부 발표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인지 업계에서는 대체로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 경영전략실 관계자는 “과거 신문업계에서 부수를 공개하자고 합의해놓고 몇몇 신문사만 공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 신문사가 공개하지 않아서 특정사만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부와 다른 신문사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좀더 알아본 다음 대응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전략기획팀 관계자도 “문화부에 추가 자료를 요청한 상태이며, 그 자료를 받아본 다음에 향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다”라고만 말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부의 개선안이 나오자 신문·잡지업계에서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이에 언론계에서는 이해 당사자격인 신문·잡지사의 의견 수렴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문·잡지 업계 “대국민 홍보는 거래 대상 아니다” 비난

유력 일간지의 핵심 간부는 “문화부가 ABC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는 루머조차 듣지 못했다”라고 했으며, 중앙 일간지 경영지원실 간부 역시 “연합뉴스에 기사가 나온 것을 보고 처음 알게 되어, 편집국과 판매·광고국 등에 ‘혹시 ABC 제도 개선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었느냐’고 확인했지만,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라고 씁쓸해했다.  

한겨레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문화부가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탁상·밀실 행정이다. 문화부의 이번 개선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한 다음 입장을 정리해서 문화부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ABC 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잡지사에 대해서만 정부 광고를 게재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매체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신문과 잡지 등에 모두 1천2백17억원 규모의 광고를 집행했다. 사실상 정부가 인쇄 매체에 대한 최대 단일 광고주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 일간지의 한 핵심 간부는 “정부의 광고는 민간 기업 광고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정부 광고는 정부의 정책을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ABC 부수 검증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국민에게 알려야 할 정책을 알리지 않는다는 것은 신문업계에 재갈을 물리려는 처사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함께 ‘정가 또는 80% 이상 수금’으로 책정되어 있는 현재의 부수 검증 기준을 ‘50% 이상 수금’으로 낮추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마이너 신문의 한 관계자는 “부수 검증 기준을 개선한다면서 유료 부수 범위를 정가의 80%에서 50%로 완화한다면 신문 구독료를 1년에 6개월치만 내도 된다는 것이냐. 이는 정부가 신문시장의 불공정 판매를 조장하는 것이며 신문시장을 더욱 혼탁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ABC협회가 향후 구독료를 50% 이상 납부했는지 어떻게 일일이 검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정부가 ABC 제도를 통해 언론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정부 광고를 무기로 광고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고, ABC 제도를 제대로 자리 잡게 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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