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열린 의료관광 곳곳에 ‘복병’
  • 석유선 (의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5.1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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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의료 분쟁 등 풀어야 할 숙제 ‘첩첩’

▲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이 외국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연세의료원 제공

중국인 링링 씨(26)는 이번 노동절 3일 연휴를 틈타 서울행을 택했다. 중국보다 기술이 뛰어난 쌍꺼풀 시술을 받기 위해서이다. 때마침 5월부터 한국 병·의원에서 외국인 환자를 직접 유치·알선할 수 있도록 의료법도 개정되었다. 그 덕에 링링 씨는 병원을 수소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이 의료관광 전문 에이전시를 통해 병원을 추천받아, 강남의 한 성형외과를 찾아 수술을 마치고 지난 5월3일 귀국했다.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가 지난 5월1일부터 의료법을 개정해 국내 의료 기관의 외국인 환자 진료를 전면 허용했다. 이에 따라 종합병원은 입원실 정원의 5% 이하에서 외국인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고, 전문의 1인 이상의 의료 기관(의원급)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게 되었다.

복지부는 외국인 환자 1명을 유치할 때 약 7백만원의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고, 연간 6백50억원에 이르는 의료서비스 적자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서비스를 통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 국내 의료 산업의 경쟁력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시아에서 의료관광 선도국인 태국의 경우, 2006년에만 1백28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 9억 달러의 외화를 벌여들였다. 환자 1인당 평균 7백50달러를 벌어들인 셈이다. 싱가포르도 JCI인증 병원을 15곳이나 보유한 덕분에 치료 중심의 환자를 유치하는 데 주력해 이미 35만명의 외국인 환자가 다녀갔다.

요즘도 JCI 인증을 받은 범룽랏 병원을 비롯해 사미티에 병원, 방콕 파타야 병원 등에는 내국인 환자보다 유럽·중동 등지에서 온 외국인 환자가 병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주한 태국대사관 상무공사관은 “오랫동안 축적한 양질의 의료서비스와 전문 인력을 양성한 노하우 그리고 태국 특유의 관광 인프라가 맞물려 외국인 환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유치에 따른 외화벌이가 짭짤하다”라고 말한다.

가격 싸도 아직은 한류 수요에 불과해

무엇보다 국내 의료서비스가 외국인 환자에게 매력적인 것은 수준 높은 의료 기술과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경쟁력이다. 실제로 미국의 85~90% 가까운 의료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암 치료, 장기 이식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의료비는 오히려 미국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의료관광 전문 여행사 우봉식 대표(재활의학전문의)는 “한국의 의료비를 100으로 보면 중국은 1백67, 일본은 1백49, 싱가포르 1백5, 미국 3백38로 충분한 가격 경쟁력이 있고, 최근 원화 가치 하락으로 경쟁력이 더욱 뛰어나다”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외국인 환자 유치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시점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적잖은 혼란이 있다.

의료관광 서비스를 오랫동안 준비했다는 압구정의 A피부과 관계자는 “아직은 누구도 외국인 환자 유치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장밋빛 미래만 보고 무작정 뛰어든 곳도 많아 의료관광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확실히 의료법 개정으로 (외국인 환자)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우리를 비롯한 규모 있는 개인 클리닉에서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현지에 지사를 세워 환자를 유치하고 있고, 실제 피부·성형을 원하는 환자들의 상담이 잦아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의료관광 전문 대행사의 한 관계자도 “대학병원 등에서는 건강검진과 치료 목적의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소규모 의료 기관에서는 외국인 환자를 받아들일 엄두를 못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환자도 중국, 일본 등에 남아 있는 한류 분위기에 기대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류 스타의 영향으로 한국의 미용 성형술을 익히 알고 있는 환자들의 수요는 있지만, 태국이나 싱가포르처럼 유럽이나 중동까지 대상 국가를 늘리지 않으면 의료관광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대상 국가 늘리지 않으면 성공 장담할 수 없어

외국인 환자 유치에 나선 의료 기관에서는 통역과 의료 분쟁을 가장 두려운 요소로 꼽는다. 무엇보다 말부터 통해야 의료 과정에 대해서 상세히 환자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말이다.

강남의 B성형외과 김 아무개 원장은 “국내 경기 침체로 이번에 외국인 환자를 타깃으로 삼으려 했는데, 통역 잘하는 사람을 정말 찾기 힘들다. 3개월 전에 공고를 내, 두 달 만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 일본인 환자를 응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원장은 그나마 자신은 운이 좋아 적임자를 찾았지만 많은 개인 병원 관계자들은 통역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외국인 환자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메디컬 콜센터(1577-7129)’를 개설했다. 이곳으로 전화하면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의료서비스 상담을 비롯해 국내 의료 기관 안내, 의료 사고 분쟁 상담 등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콜센터가 아직 국내 근무 시간에 맞춰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미국이나 러시아 등 국내와 시간 차이가 나는 지역의 외국인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인 의료관광에서 또 다른 골칫거리는 국내인도 머리 아파하는 ‘의료 분쟁’이다. 건강검진의 경우야 문제가 없지만,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부작용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 쌍방 모두 의료 분쟁을 가장 두려워한다.

 더구나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어온 외국인의 경우, 수술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 부작용과 후유증이 심해진다면 더욱 난감한 일이다.

 홍영균 의료전문 변호사는 “국내에서는 아직 외국인 환자와의 의료 분쟁에 따른 손해 배상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판례가 없다. 이로 인해 외국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국내 의료 분쟁 후 보상의 범위이다”라고 말했다.

홍변호사에 따르면 국내 의료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수준이 미국보다는 낮지만 환자 수요가 많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차이가 크지 않다. 이에 국내 의료 기관과 대행 업체들은 국내의 의료 분쟁 처리 과정과 관련 법규 등을 잘 숙지해 환자들에게 이해시키고 의료서비스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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