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꺾인 부산 갈매기, 다시 날까
  • 정철우 (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09.05.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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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자이언츠, 에이스 손민한 등 부상으로 정상적인 전력 못 꾸려…로이스터 감독에 비난 화살

▲ 경기를 마친 롯데 선수들(맨위). 위은 로이스터 감독. 롯데는 5월13일 현재 7위에 랭크되어 있다. ⓒ연합뉴스

2009 시즌이 개막되기 전 롯데 자이언츠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2008 시즌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준 팀에 ‘홍성흔’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젊은 선수들에게 8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자신감을 안겨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모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롯데는 5월13일 현재 13승21패로 8개 팀 중 7위에 랭크되어 있다.

롯데는 비판하기 좋은(?) 팀이다. 나머지 7개 팀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감독 출신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에도 메이저리그식 자율 훈련을 심고 있는 중이다. 감독이 정한 훈련 시간은 보통 팀들의 절반 수준. 훈련량이 적은 팀이 성적까지 나쁘니 당연히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로이스터 감독은 여전히 “아직 우리 야구를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 훈련량과는 상관없다”라고 장담하고 있다.

아직 2009 시즌 프로야구는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다. 과연 롯데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4개월 후 모든 시즌이 끝나고 나면 현재 롯데가 받고 있는 비난이 ‘편견’이었는지 아니면 ‘현실’이었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훈련량, SK의 3분의 1

최근 한국 프로야구의 최강팀은 단연 SK 와이번스이다. SK는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러는 동안 SK는 지옥 훈련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성근 감독의 훈련량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혹독하다. 김감독의 훈련을 통해 SK의 젊은 선수들은 ‘성장’을, 고참 선수들은 ‘회춘’을 맛보았다.

롯데는 SK의 대척점에 서 있는 팀이다. SK에 비하면 정규 훈련 시간은 3분의 1 수준이다. 롯데가 여전히 허술한 수비와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로이스터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얼마나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필요한 훈련을 다 했으며, 남는 시간은 선수들이 컨디션에 맞춰 알아서 준비했다”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선수들도 적은 훈련량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FA로 두산에서 롯데로 둥지를 옮긴 홍성흔은 “선수들이 알아서 준비를 잘해놓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봤을 때 롯데는 정말 막강한 공격력을 갖고 있는 팀이다. 이런 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율 훈련’이 롯데 선수들의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성흔은 두산 시절에 못지 않은 훈련으로 지난 겨울을 보냈다.

그렇다면 롯데의 부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큰 원인은 부상이다. 에이스 손민한이 컨디션 난조와 부상으로 아직 단 한 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4, 5 선발인 조정훈과 이용훈마저 잇달아 전력에서 이탈했다. 정상적인 전력을 아직 꾸려보지도 못한 셈이다. 송승준, 장원준 등의 부진에도 그로 인한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 로이스터 감독의 설명이다. 5명이 나누어지던 짐을 사실상 둘이서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장점이던 공격적인 투구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공격 부문에서도 부상은 중요한 전력 손실 요소이다. 주장 조성환이 얼굴에 공을 맞아 엔트리에서 빠졌고, 홍성흔도 허벅지 햄스트링으로 열흘 이상 재활 훈련만 해야 했다.

그러나 부상은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이라는 지적도 공존하고 있다. 시즌을 정상적인 최고 전력만으로 꾸려가는 팀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1, 2위를 달리고 있는 SK와 두산만 해도 그렇다. SK는 핵심 불펜 요원인 조웅천, 윤길현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두산은 테이블 세터인 이종욱, 고영민이 빠져 있다. 그러나 두 팀은 여전히 강한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로이스터 감독의 준비 부족이 롯데의 부진을 가져왔다”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로이스터 감독은 지난해 삼성과 준 플레이오프가 끝나자마자 짐을 꾸려 미국으로 떠났다. 절대 다수의 한국 감독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마무리 훈련’은 박영태 수석코치의 지도로 치러졌다. 스프링캠프 합류도 예정보다 늦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 이유였다. 한국 정서와는 너무도 큰 거리가 있는 결정이었다. 한국 감독들은 마무리 캠프를 사실상 새로운 시즌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김성근 감독의 경우 새출발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가을 캠프’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대안을 마련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존 선수들의 기량 향상보다는 1년간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선수들이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때가 바로 마무리 캠프 시기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바로 이 기간 동안 팀을 떠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는 이 부분 역시 선수들의 자율에 맡겨둔다. 한 방송 해설자는 “로이스터 감독이 한국에서 야구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일단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팀 성적이 끝까지 이렇게 이어진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실제로 기존의 주전급 선수 외 선수를 기용하는 데 인색한 편이다. 라인업도 거의 바꾸지 않고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에는 이같은 방식이 효과적으로 통했다. 그러나 올 시즌 위기를 맞으면서 이런 방식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계속 기용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들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누가 어느 정도 실력과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선수를 쓰는 용병술 부분에서 미숙한 점이 많이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롯데가 지난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저돌적인 공격성이었다. 투타에 걸쳐 겁없이 덤벼오는 공격적인 야구는 상대를 주눅들게 하기 충분했다. 그와 같은 성향은 성적으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공격적인 야구 보이지 않아

롯데는 지난해 선취점을 빼앗긴 경기에서도 28승40패를 기록했다. 승률이 4할이었다. 끌려가던 경기에서도 제법 뒤집는 힘을 보여주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 시즌 이런 경향이 많이 줄어들었다. 올 시즌 선취점을 빼앗긴 경기에서는 4승13패를 기록하고 있다. 승률이 2할3푼5리에 불과하다. 1년 사이 같은 상황에서 승률이 1할6푼5리나 떨어진 셈이다. 공격성 부재는 초구 공략 비율에서도 나타난다. 로이스터 감독은 초구부터 적극적인 공격을 강조하고 있다. “초구에 좋은 공이 가장 많다”라는 것이 이유이다. 지난해 롯데는 전체 볼 카운트 중 초구 공략 비율이 15%였다. 그러나 올 시즌 12%로 낮아졌다. 큰 차이가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롯데의 한 선수는 “지난해에는 초구를 치다 아웃되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해결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올해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지는 경우가 많아져서 그런지 타석에서 주저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롯데는 반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수치상으로는 가능하다. 롯데는 지난해 69승57패로 3위를 차지했다. 5할 승률에서 +12를 기록한 셈이다. 올 시즌은 13승21패에 그치고 있다. 5할 승률 -8이다. 지금이라도 지난해의 모습을 찾는다면 5할 +3경기로 시즌을 마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5할 승률은 포스트시즌의 마지노선인 4위권에 도전해볼 수 있는 성적이다. 때문에 롯데에는 여전히 4강 진출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숫자로 살펴본 가정일 뿐이다. 롯데가 지난해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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