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계 주름잡는‘미녀’ 정치인들
  • 파리·최정민 통신원·김지혜 기자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9.05.1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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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미국·일본 등에서 미모를 무기로 맹활약

▲ 왼쪽부터 프랑스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고이케 유리코 일본 자민당 의원, 미국 퍼스트레이디 미셀 오바마. ⓒ(왼쪽부터)EPA,ITAR-TASS, EPA, EPA

프랑스계 미국인 저널리스트인 미셸 시레트는 “프랑스에서는 정치인이 배가 나오면 은퇴를 각오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권력 자체가 멋있고 매력적이라는 관념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정치인도 그에 걸맞게 스마트하고 멋지기를 원한다”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몸집이 컸던 드골 대통령은 감자자루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런 까다로운 프랑스 대중의 미적 취향 때문일까? 현재 프랑스의 정치판은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화려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여성 정치인들이다. 연예계의 꽃이 여배우이듯, 딱딱하기만 한 정치계를 여성 정치인들이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그 시작은 지난 대선 때 첫 여성 사회당 후보로 등장한 세골렌 루와이얄 의원이었다. 현재 55세로 네 자녀의 어머니인 그녀는, 미테랑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992년 환경부장관을 지내고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사르코지 대통령과 맞붙어 석패한 거물 정치인이다. 학교 폭력을 추방하고 아동 포르노물을 척결하자고 주장했으나 ‘이미지 정치’ ‘인기 영합주의’라는 비판도 들었다.

그러나 지금 중심에 자리한 것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이다. 퍼스트레이디로서 적지 않은(특히 외교 분야에서) 공을 세우고 있는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 세련된 행보로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지난 5월6일 사르코지 집권 2주기의 평가가 나왔을 때에도 프랑스 국민 3명 중 2명은 사르코지의 집권 2년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렸지만, 외교 분야만큼은 후한 점수를 주었다. 카를라 브루니가 등장할 당시 ‘외교가의 새로운 바람’이라는 예상이 나왔던 것처럼 영국 방문에서 최근의 스페인 방문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숱하게 화제를 뿌렸다. 이미 지난해 7월 프랑스 주간지 <엑스프레스>가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르코지가 브루니의 후광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국민이 55%였다.
이러한 아름다운 대통령 부인을 필두로 한 사르코지 내각의 여성 정치인들은 면면이 화려하다. 지난해 5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프랑스를 공식 방문했을 때 열린 엘리제궁의 연회는 패션쇼를 방불케 했다. 주인공들은 여성 각료들이었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후 토크쇼에 출연해 입담을 과시한 크리스틴 라갸르드 재정부장관, 미셀 안리오 마리 내무부장관, 발레리 페크레스 고등교육부장관, 라마 야드 인권부장관 그리고 늘 화제의 중심에 있는 라시다 다티 법무부장관 등이 모두 샤넬과 디오르 등 명품으로 치장한 채 입장한 것이다. 특히 입각 때부터 자수성가의 전형으로 화제에 올랐던 라시다 다티 법무부장관은 점점 아름다워지는 외모와 명품 중심의 패션 스타일로 정치 풍자의 단골 주인공이 되고 있다. 급기야 고가의 샤넬 반지를 착용한 사진이 포토샵으로 수정되어 보도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녀는 현직 장관 중 유일하게 샤넬에 개인룸을 가지고 있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패션 스타일도 한몫…때론 싸움꾼 변신도

▲ 율리아 티모첸코 우크라이나 총리. ⓒAP연합

또한, 최근 일본과 한국을 나란히 방문했던 나탈리 코쉬스코 모리제 미래기획디지털경제부장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빼어난 미모와 약관의 나이에 프랑스 최고 명문인 에꼴 폴리테크닉을 졸업한 수재로서 29세에 정계에 입문해 34세에 내각에 입각한 당찬 여성이다. 프랑스 집권 여당의 부총재이자 파리 인근 소도시인 롱쥐모시 시장도 겸하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만으로 모든 것이 용인되지 않는 것이 정치계의 냉엄한 현실이다. 관대한 이탈리아와는 달리 프랑스는 아름다움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자리를 걸고 싸워야 한다. 발레리 페크레스 고등교육부장관은 현재 진행 중인 대학 개혁을 놓고, 배수진을 친 학생들과 사투에 가까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대학가에는 6개월째 시위와 파업이 진행 중이다. 한 학기가 모두 날아갈 판이라고 모두 아우성이지만, 페르케스 장관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또, 30대인 모리제 장관은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일본과 한국은 물론 미국의 실리콘 밸리까지 발로 뛰고 있다. 특히 그녀는 사르코지 내각의 환경 담당 장관으로 내각에 첫 발을 디뎠을 당시 환경 문제로 사르코지와 대립각을 세우는 배짱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잦은 구설수와 언론 노출로 비판받아온 라시다 다티 법무부장관은 오는 유럽연합 선거 출마를 계기로 장관직을 물러날 예정이다.

정치판을 ‘미인’들이 지배하는 분위기는 어쩌면 프랑스만의 일이 아닌 세계 공통의 추세인지도 모른다. 이미 미국에서는 우아한 미모의 퍼스트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 현 국무장관이 존재를 과시했다. 68세이지만 힐러리, 콘돌리자 라이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인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도 주목된다.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인 그녀는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와 스카프 등을 통해 강력한 추진력을 상징하는 등 여성성과 정치 이미지를 적절하게 조화시킨다고 평가되고 있다.

지난 4월 유럽 방문에서 성공적으로 국제 무대 데뷔식을 치른 새로운 퍼스트레이디 미셀 오바마도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그녀는 ‘유연한 여성성’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지난 대선 때 오바마의 적수였던 메케인 상원의원의 러닝메이트였던 사라 페일린도 빼놓을 수 없다. 사라 페일린은 스페인 무가지인 ‘20미뉴트’가 선정한 세계의 미녀 정치인 중 24위에 오르기도 했다. 사우스다코타 주 하원의원인 스테파니 헐셋 새들린은 주목되는 차세대 여성 정치인이다. 뉴욕타임스는 그녀가 대선 후보에 출마할지 모른다고 점쳤고, 2010년 사우스다코타주 주지사에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북미뿐만이 아니다. 남미에는 지난 4월에 열렸던 G20 정상회담에서 아름다운 미모를 과시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있다. 그녀를 두고 ‘제2의 에바 페론인가, 외모에만 관심 있는 요부인가’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에바 페론은 미모를 바탕으로 1946년에 남편인 후안 페론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빈민 구제 활동 등에 헌신한 ‘성녀’라는 시각도 있지만, ‘권력에 굶주린 요부’라는 말도 듣는 등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영화 <에비타>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분홍색이나 보라색 정장, 타이트한 스커트 등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옷 입기를 즐기며 명품 핸드백과 액세서리를 해 구설에 올랐다. 남편이 후보로 지명하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집권 이후 경제성장률은 떨어진 반면, 실업률은 상승하고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한 상태이다. 그녀는 2008년 8월 <포브스>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여성’ 13위에 올랐다.

또한, 지난해 5년6개월의 억류 뒤에 석방된 콜롬비아계 프랑스인 잉그리드 베탕쿠르 또한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정치권 미인이다. 베탕쿠르의 어머니는 미스 콜롬비아였다. 페루의 31세 국회의원인 루시아나 레온은 변호사 출신인데, 스페인 신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정치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미인이다.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공주로 불리우는 율리야 티모첸코 총리 또한 동유럽을 대표하는 미녀 정치인이다. 우크라이나 개혁의 물결이었던 오렌지 혁명의 파도를 타고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패션 잡지 <엘르>의 표지 모델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녀는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정치인 3위’, 캐나다 신문인 더 글로브 앤 메일이 선정한 ‘최고의 미녀 정치인’에 뽑힌 적이 있다. 르네상스풍을 연상케 하는 헤어스타일을 잘 바꾸지 않는데, 언론이 머리 스타일의 변화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의 정치 변화를 설명하는 기사를 내보냈을 정도로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거리이다. 그녀의 스타일은 ‘티모첸코 스타일’로 통한다.

이처럼 화려한 여성 각료의 등장으로 골치를 썩는 나라도 있다. 이탈리아가 그렇다. 유난스런 여성 편력과 거침없는 말투로 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오는 6월7일 치르는 유럽의회 의원 후보로 모델 출신의 미녀 4인방을 내세워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행정부의 수반이었던 좌파의 로마노 프로디 전 총리는 “이것은 완전히 영화 캐스팅이다”라고 독설을 퍼부었지만,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참다못한 총리의 부인이 그의 여성 편력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고 나서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현재 32세로 기회균등부장관인 방송연예인 출신 마랴 카르파냐와의 염문설이 퍼지는 등 유난히 ‘미인’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델·미인대회 출신으로 정계 입문하기도…돌출 행동 땐 구설수

이웃 일본에도 미모의 여성 정치인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아소 다로 총리를 대신해 총선에서 자민당을 구할 대안으로 거론될 만큼 지지 기반과 실력을 갖춘 5선 중의원인 고이케 유리코가 대표적이다. 10대에 카이로 대학을 다녀 아랍어에 능통하고 20대에 결혼과 이혼을 경험한 이후 독신이다. 30대에 TV 캐스터로 명성을 날린 뒤 40대에 정치권에 뛰어들었고, 50대에 장관직을 세 개나 거머쥔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고이즈미 전 총리 라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때 고이즈미 전 총리와 결혼설이 돌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강한 보수 성향이다. 주간지 표지 모델로 등장하고 비키니·기모노 차림 등 다양한 장면이 담긴 DVD 화보집을 발간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유리 후지가와 시의원은 일본에서 ‘얼짱 의원’으로 통한다. 2007년 4월 아버지의 지역구인 아오모리 현 하치노헤 시에서 압도적으로 표를 얻어 당선했는데 정치력보다는 미모와 돌출 행동으로 언론을 장식하곤 한다.

이밖에 ‘미스 싱가포르’ 출신인 31세의 유니스 올센 싱가포르 국회의원, 러시아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푸틴 총리와의 결혼설로 유명해진 26세의 알리나 카바예바 통합러시아당 국회의원, 모델과 쇼 프로 진행자로 활약한 35세의 올리 레비 이스라엘 국회의원, 언론인 출신인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 등도 세계 정계를 주름잡으며 화제를 뿌리는 여성 정치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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