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한 동대문 조폭 세상 되나
  • 정락인·김지영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5.1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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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 대형 패션상가 연 매출 15조원에 ‘군침’합법적인 용역회사 차려놓고 버젓이 활동 중

지난 4월30일 오후 5시30분쯤 해가 서서히 넘어가는 무렵이었다. 서울 동대문에 있는 패션몰인 유니온30 창가에서 ‘다다닥’ 하는 소리가 나더니 ‘쿵’ 하는 굉음이 잇달아 울렸다. 그리고는 한동안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비명 소리가 연달아 터져나왔다. 불과 수십 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거기에는 유니온30 운영위원회 소 아무개 회장(49)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이 건물 11층 복도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고, 열린 창문들에 잇달아 부딪치면서 온몸의 뼈가 부러졌다.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소회장의 자살은 동대문 지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동대문 상인들 사이에서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릴 정도로 사업 수완을 인정받던 그였다. 이런 그가 한낮에 평생의 일터였던 패션몰에서 뛰어내린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는 왜 자살한 것일까. 그가 남긴 유서에 죽음의 단서가 있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A4 용지 3장 분량의 유서에는 ‘왜 자살을 선택해야 했는지’가 자세히 나와 있었다. 특히 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동대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특정 조폭을 언급한 부분이다. “내가 투명한 관리 업무를 위하여 관리단을 만들었더니 광주 동아파 두목 김 아무개씨와 그 형 김 아무개씨, 그 부하 한 아무개씨가 공모하여 용역깡패 100여 명을 동원했다. (이들은) 순진한 상인들을 괴롭히고 장사를 방해하여 모든 상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나와 운영위원회를 무력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순진한 사람들을 협박해 소○○(본인)의 없는 비리를 진술하게 강요하고 있다”라고 적은 것이다.

▲ 유니온30 소 아무개 회장의 유서.

“광주 동아파가 상인들 괴롭히고 장사 방해해”

유서의 내용으로 보면 소회장의 죽음과 광주 동아파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듯하다. 소회장은 죽기 전까지 유니온30의 운영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 이전에는 약 10년 동안 동대문에서 알짜 상가로 소문난 테크노상가의 운영위원회 회장을 맡았었다. 소회장이 자살한 직접적인 원인은 테크노 상가와 관련된 분쟁이었다. 지난해 4월1일 소회장이 바로 옆에 위치한 유니온30의 운영회장을 맡자 사업 파트너이던 테크노상가 김 아무개 회장(52)과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유니온30은 원래 ‘올레오’라는 상호였다가 장사가 되지 않자 상호를 바꾸고 소회장을 영입했다고 한다. 테크노상가의 운영·영업·관리권을 두고 두 사람 사이에 승강이가 자주 벌어진 것도 이 시점이다. 급기야 소회장이 운영위원회와는 별도로 관리단을 만들면서 두 사람의 감정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런 과정에서 양쪽은 상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용역들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소회장의 유서에는 김회장이 관리단 구성을 막기 위해 동대문 일대에서 활약하던 광주 동아파를 끌어들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회장은 “용역을 동원한 것은 소회장이 먼저이다. 지난 4월25일 새벽에 소회장이 100여 명의 용역을 동원해 상가 옥상에 컨테이너를 설치하려고 했다. 내가 용역을 동원한 것은 다음 날인 26일 새벽이었다. 상가를 방어하기 위해 용역회사에서 25명을 동원했다. 동원된 용역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아무개씨는 평소에 안면이 있던 사람이고, A상가의 관리이사를 맡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회장이 언급한 A상가는 동대문 내에서는 광주 동아파가 관리하고 있는 상가 세 곳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고 소회장이 광주 동아파 두목의 형이라고 지목한 김 아무개씨가 A상가의 회장으로 있다. 양측이 동원한 용역들이 충돌하면서 상가는 한동안 아수라장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 상인은 “(용역들이) 상가 출입문을 막고 있는 등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직·간접적으로 위협도 받았고,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손님들도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라고 토로했다.

소회장이 자살하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큰형 소 아무개씨(52)는 “용역들이 테크노상가를 통제하면서 동생의 건물 출입은 사실상 봉쇄되었다. 관리단 구성도 무산되었고, 김회장이 소회장의 재산을 강제로 경매 신청하면서 코너에 몰렸다. 여기에 경찰 조사까지 받으면서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것 같다”라고 밝혔다.
현재 소회장 자살 사건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와 중부경찰서에서 동시에 수사하고 있다. 서울청은 김 아무개 회장이 검찰에 낸 탄원서를 토대로 검사 지휘 하에 수사하고 있으며, 중부서는 소회장의 유족들이 김회장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다.

서울에서도 동대문 패션타운 일대는 영락없는 조폭 사회의 축소판이다. 오래전부터 전국 각지의 조폭들이 동대문 일대로 끊임없이 찾아들었다. 여기에는 ‘노다지 금광’이라고 부를 만큼의 풍성한 먹잇감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동대문 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현재 27개의 대형 패션상가에서 3만5천여 개의 점포가 영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 5백억원, 연간 15조원의 매출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산 2백억~3백억원 가진 우두머리도 있어

▲ 동대문 패션타운에 근거지를 둔 조폭들은 주차 관리 같은 용역도 한다. ⓒ시사저널 유장훈

그러다 보니 조폭이 개입할 만한 이권 사업이 상당하다. 이 지역 상인들에 따르면, 조폭들은 패션상가의 주차 관리권과 경비 및 청소 용역권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패션상가 주변에서 장사하는 노점상들도 조폭의 ‘관리 대상’에 속한다. 상인들은 한결같이 “동대문 패션상가 가운데 조폭이 끼어들지 않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조폭의 우두머리 중에는 재산이 2백억~3백억원대의 자산가도 있다고 한다. 곧 ‘조폭 재벌’이 나올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조폭들은 과거와 같이 주먹을 휘두르면서 상인들에게 행패를 부리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용역 회사를 차려놓고 ‘양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돈과 이권을 따라 움직인다.

대부분의 패션상가 운영자들도 이 지역이 워낙 드센 곳이어서인지, 조폭들이 운영하는 용역회사와 손잡는 것을 크게 마다하지 않는 눈치였다. 한 패션 상가 운영자는 “용역회사 사람들이 조폭이라고 하지만 불법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문제인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상가에서 말썽만 나지 않으면 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조폭과 상인 간의 마찰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형 패션상가에서 14년째 의류 장사를 하고 있는 박 아무개씨(53)는 “조폭들이 운영하는 용역회사에서 한 번은 홍보비 명목으로 점포마다 돌아다니면서 10만원씩을 걷은 적이 있다. 우리 상가에 2천개 정도 점포가 있으니까, 2억원 정도는 걷었을 것이다. 그 돈으로 소형차를 경품으로 내걸고 상가 앞에서 이벤트를 했다. 그래봐야 1억원이나 썼을까. 나머지는 용역회사에서 다 챙겼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 문제로 한 점포 주인이 용역회사 사람과 다투다 결국, 주먹질까지 해서 경찰이 온 적도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동대문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조폭들은 주로 호남 출신들이다. 상인들에 따르면, 전북 익산의 역전파와 광주 동아파 출신들이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40대 후반인 역전파의 김 아무개씨 형제가 이 지역에서 ‘보스’ 노릇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군소 조폭들이 도박장 운영, 사채업 등에 나서고 있다.

서울에서 호남 조폭들이 큰 세력을 형성한 것은 지난 2000년 이후이다. 호남 조폭들의 근거지는 광주, 목포, 익산 등지였으나 점차 활동 무대를 중앙으로 옮겨갔다. 그중의 하나가 동대문 패션타운 일대였던 것이다. 동대문에 터를 잡은 조폭들 간에도 이권 다툼이 심하다. 평상시 휴전 상태에 있다가도 새로운 먹잇감이 등장하면 전쟁도 불사한다.

동대문 지역의 한 상인 단체 관계자는 “대형 패션상가가 새로 생길 경우 조폭들끼리 거기서 나오는 각종 이권을 서로 먼저 챙기기 위해 싸움을 벌이곤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동대문 지역에 진출한 조폭들은 건물 관리, 주차장 관리, 노점 관리, 경비, 청소 등의 이권을 차지하며 야금야금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상가와 조폭들이 공생하고 있는 셈이다. 경찰에서도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손을 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분쟁이 있는 당사자들이 용역을 동원할 경우 직접적인 개입을 꺼려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게 되고 도심이 무법천지가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조폭 원로로 통하는 ㅈ씨는 “요즘 제대로 된 조폭들은 갈취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곧바로 철창행인데 누가 그러겠나. 바보 같은 짓이다. 요즘은 합법적인 사업을 한다. 겉으로 봐서는 조폭인지 누구인지 전혀 모를 정도이다. 조폭 사회도 이렇게 변했다. 불법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뭐라고 할 것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경제 불황 틈타 신흥 조폭들도 속속 생겨나

‘조폭들은 불황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조폭들이 득세한다는 말이다. 이런 경향은 전국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경기 불황을 틈타 조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검찰이나 경찰의 관리 대상이 아닌 신흥 조폭들이 속속 생겨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실제 경찰청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조폭들을 단속한 결과 기존에 관리 대상에 들지 않았던 신흥 조직이 전체 35%나 되었다고 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4개파 87명)가 증가한 수치이다.

최근 부산 지역에서 검거된 조폭들은 기존의 조직이 와해되자 불법 채권 추심 등에 나서며 서민들을 괴롭혀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장통합파 조직원이던 김 아무개씨(26)는 지난해 10월 경찰의 단속으로 조직이 와해되자 사채업자로 돌변한 후 동업자인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받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채무자를 수차례 협박하는 등 불법으로 채권을 추심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상통합파 행동대원 출신의 김 아무개씨(30)도 중고차 매매센터에 기생하면서 업주들을 협박해 돈을 뜯다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칠성파의 행동대원 김 아무개씨(41)는 여대생을 성폭행하고, 이를 약점으로 잡아 유흥주점을 운영하게 하고 주점 빚까지 떠넘기는 일도 있었다.

충북에서는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며 피해자 부인의 카드를 빼앗아 사용한 청주 지역 조직폭력배와, 노래방 등에 남자 도우미를 보내주는 보도방을 독점 운영하려는 업주와 결탁해 다른 업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조폭들이 검거되는 등 전국에서 조폭들의 민생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일명 ‘조폭 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전북 익산에서는 ‘조폭과의 전쟁’에 나섰다. 익산은 인구는 30여 만명인데 반해, 경찰이 관리하고 있는 조폭의 수는 6개파에 8백여 명에 이른다. 역전파와 배차장파가 양대 파벌을 형성한 가운데 여러 분파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 신상채 익산서장이 부임하면서 전담 수사대를 편성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다. 이처럼 경찰이나 검찰도 불황을 틈타 세력 확장에 나선 조폭들의 실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소탕을 위해 강력한 단속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조폭들에게는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해서 ‘흡혈귀’라는 명칭이 붙었다. 경찰과 검찰이 또다시 흡혈귀와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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