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인생, 서글픈 우정
  • 이재현 (yjh9208@korea.com)
  • 승인 2009.05.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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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통해 만난 한국과 일본 두 청년의 ‘한탕’ 이야기

▲ 감독: 김영남/ 주연: 하정우, 츠마부키 사토시, 차수연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장 불행한 일은 자신의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문의 영광’ 밑에서 호의호식하며 살고 싶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하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 가운데는 결손 가정 출신이 적지 않다. 부모 중 하나가 없거나, 둘 다 없어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 일찌감치 바깥 세상에 눈을 뜬다. 화려한 사회는 이들에게 자본의 위력을 가르치고 아이들은 그 가르침대로 음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달동네 사람들은 동네에 나와서 놀지만 부자들은 결코 나오는 법이 없다. 가난은 서로 기대어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서로 돕고 나누고 살면서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가진 것 없이 폭력만 휘두르는 조폭들이 자꾸 뭉치려는 이유도 결국, 기대며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은 아닐까.

한·일 합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보트>는 부산 앞바다와 일본 니가타 현이 주 무대이다. 김영남 감독은 “아무리 딱딱한 두 개의 구슬이라도 자꾸 부딪히면 결국, 하나의 매듭으로 엮일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살이의 관계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부산에서 일본으로 보트를 타고 ‘물건’을 나르는 형구(하정우 분)는 일본의 사업가 보경 아저씨에게 김치를 배달하며 살아간다. 스트립 댄서였던 엄마는 일곱 살 때 자신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고, 갈 곳 없는 형국은 보경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살아남을 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갈 때마다 그를 맞이하는 일을 하는 토오루(츠마부키 분)는 형구가 가져오는 김치 독을 애지중지한다. 형구는 그 안에 마약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하지만 하던 일을 계속한다. 현해탄을 바쁘게 오가던 어느 날, 형구는 꽁꽁 싸맨 시체를 배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아빠를 찾아주면 거액을 주겠다”

같은 조직 안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형구와 토오루는 이 살아 있는 시체 지수(차수연 분)를 두고 갈등한다. 지수의 아빠는 2억 엔을 들고 도망친 사람이다. 조직의 보스인 보경은 토오루에게 형구를 감시하라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빠를 찾아달라며 그녀가 제시한 엄청난 돈(5천만 엔)에 이끌려 조직에 쫓기는 생활을 이어간다. 조직이냐 돈이냐를 놓고 치고 박는 두 사람은 싸우다가 미운 정을 키워간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아열대에 시달리는 관객들의 눈이 시원할 법하다. 생각 없이 보아도 따라가는 데 큰 무리가 없는, 복잡하지 않은 영화이다. 상영 시간 1백18분. 5월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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