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 무관심한‘초식’ 남자가 는다
  • 이현석 (재일 만화기획자) ()
  • 승인 2009.05.26 16: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애인보다 가족 중시하는 남성 증가기업들은 마케팅 전략 새로 짜고 정치인·관료들은 한숨

▲ 결혼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등장한 일본 드라마 .


일본은 유행어가 많은 나라이다. 그리고 연말에는 한 해 동안 유행한 단어들을 선별해 상을 주는 이벤트까지 벌인다. 그 이유는 아마 이런 한마디, 한 단어의 유행어가 그 시대상과 관심사를 알기 쉽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유행어 중 하나가 바로 ‘초식계 남자’이다. 풀어서 말하면 ‘초식동물 남자’가 될 것이다. 이 용어가 지금 일본의 각 기업들에게는 새롭게 공략해야 할 마케팅 대상으로, 구세대와 정치인·관료에게는 골칫거리로 떠오르는 중이다.

 지난해부터 미디어에 등장해 지금 한창 입에 오르내리는 초식동물 남자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교성이 강하고, 가정적이고 친절하지만 연애에는 적극적이지 않은 남자’를 가리킨다. 즉, 여성을 공략 대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일반적인(?) 남성들의 특성을 육식계로 정의하고, 여기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초식동물적’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이런 남성의 구체적인 몇 가지 특징을 보자.

첫째 이들은 연애나 섹스에 대해서 인연이 없거나 기회가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단지 여자에게 인기가 있어도 연애에는 적극적이지 않을 뿐이다. 둘째, 이들은 여성을 이성이나 연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좋은 친구나 지인 정도로 생각한다. 심지어 술에 취해 같이 자도 손을 뻗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셋째, 이들은 연애보다는 가족이나 동료와의 관계를 더 중시한다. 넷째, 이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받는 것도 싫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극도로 꺼린다. 다섯째, 이들은 이성 상대에게도 그냥 좋은 사람 정도로 남고 싶어하고 일정한 선을 절대 넘지 않으려고 한다. 또, 외출하기보다는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요리 등에 능하고 여자들이 흔히 좋아한다는 디저트나 과자류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도 꺼려

이 용어가 미디어에서 처음으로 다루어진 것은 2006년 10월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가 <닛케이 비즈니스 온라인>이라는 온라인 잡지에 연재 중인 ‘35세 이하 남성 마케팅 도감’에서 이 단어를 거론하고 패션 잡지 <논노>에서 이 초식남자들에 대한 특집 기사를 다루면서부터이다. 이후, 모리오카 마사후미가 <초식계 남자의 연애학>이라는 단행본을 내놓았고, 공중파에 초식동물 남자를 다룬 <콘카츠>(婚活; 혼인 활동의 준말)라는 드라마까지 출현했다. 일본의 한 결혼정보회사가 30대 미혼 남성 4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신이 초식동물 남자라고 생각한다’라고 한 응답이 약 7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에는 ‘육식계 여자-육식동물 여자’나 ‘잡식성 남자-잡식계 남자’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전자는 남자들이 연애에 소극적인 면을 보이자, 종래의 연애관에 기대지 않고 자신이 직접 많은 남자와 교제를 해 적극적으로 상대를 고르는 여자를 가리킨다. 후자는 경우에 따라서 초식계와 육식계의 특성을 번갈아 내보일 수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초식동물 남자가 출현하는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역시 페미니즘적 사고방식의 확산으로 남성이 여성을 리드하는 종래의 연애 관계 모델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과 오락 수단의 다양화가 연애라는 여가 수단(?)이 필요하지 않는 남자들을 생산해냈다는 견해도 있다.
페미니즘의 확산은 한국이나 구미 각국에서도 이미 큰 흐름을 이룬 지 오래다.

일부에서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초식동물 남자 현상이 일어나고 이를 적극적 마케팅 대상으로 삼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과는 달리 아직 치열한 경쟁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현상은 일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도 유독 일본에서 이런 현상이 붐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출산율 심각한데 ‘니트’ 이어 또?

▲ 최근 만혼화가 진행되면서 연애정보회사가 각광받는 산업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위는 일본의 결혼정보회사 광고.

일본의 초식동물 남자 현상은 사회 구조의 다양화로 인해 여성의 요구가 다양화되고 여성을 쟁탈하기 위한 남성들의 노력 형태가 변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수도대학 도쿄 사회학과의 미야다이 신지(민주당 정책고문) 교수는 “한마디로 지금의 일본이 극단적일 정도로 남성성이 필요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남성들이 필요한 전쟁이나 육체적인 투쟁이 요구되지 않는 사회가 된 지 오래고, 지금 일본을 만든 아버지 세대는 회사를 중심으로 맹렬하게 일한 탓에 어머니라는 여성을 소홀히 대했다.

이 어머니들이 아들 세대에게 ‘너는 아버지처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라는 식의 교육을 시킨 것도 한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종래의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고 학생의 자유와 자주적인 교육 기회를 부여한다는 취지에서 지난 2002년부터 도입이 본격화된 ‘유토리 교육’ 정책과 경제적인 안정 등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사회적인 경쟁과 수직적 질서를 경원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면서 젊은이들의 연애관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초식동물 남자가 사회적으로 확산이 되어가자 각 기업체에서는 이런 계층을 공략하기 위해 분주하다. 기존의 인간관계를 전제로 만들어진 소비 구조(마케팅 모델)가 점진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닛케이 마케팅 저널>에서는 미팅 등에서 남성들의 참여가 저조해지거나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여성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는 젊은 남성의 비율이 이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떨어지는 점을 들어 기존 회사들의 마케팅이 변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의 일본 체제를 만들어낸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이런 현상을 곱게 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유명 언론인 타하라 소이치로(76)와 <실락원> <사랑의 유형지> 등으로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소설가 와타나베 쥰이치(76) 같은 사회 유명인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이런 일본의 젊은이에 대해 우려와 충고가 섞인 진지한 대담을 나누었을 정도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일본 정부와 관료들 사이에서 ‘초식동물 남자’ 현상을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문제로 떠오른 ‘니트 문제’와 함께 사회학계에서 일본의 장래를 뒤흔드는 문제 중 하나로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니트’란 영국에서 건너온 말로 본래 취지는 귀족과 같이 별다르게 노동을 하지 않아도 유유자적하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일본에서는 취직 등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 구도에 편입되는 것을 지극히 꺼리면서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거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무기력한 젊은이 군상을 가리키는 말로 통한다. 이는 최근의 부부간 섹스리스 문제, 만혼화·미혼화 현상, 그리고 저출산율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저출산율 문제는 심각하다. 일본 후생 노동성의 조사에 의하면 2007년의 한 명의 여성이 평생 동안 출산하는 아이의 평균 숫자가 1.34명으로 2년 전에 비해 아주 약한 증가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여전히 대단히 낮은 수치이다. 일본 사회가 존속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출생율은 2.08명이다. 이는 일본의 평균수명은 점점 길어져 노인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이를 부양할 젊은 층이 줄어들고, 연금을 지급하는 데 필요한 세수 층도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의 장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가 경제연대 협정을 맺고 간호사 등을 필리핀에서 대거 수입하고,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이 학자들에게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현황을 분석하거나 이민 정책에 대해서 연구를 해달라는 의뢰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걱정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