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병’ A형 간염의‘역습’ 경보
  • 석유선 (의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5.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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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체 보유율, 30대 이하 연령층에서 현저히 낮아…해외여행 늘면서 전염되어 오는 경우도

▲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이 A형 간염 예방접종 주사를 맞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플루로 집단 유행병에 대한 경고등이 켜진 상태에서 정작 국내에서는 ‘간염의 역습’을 받았다. 최근 서울 도봉구 한 고등학교에서 11명이 집단 발병한 데 이어 여의도 한 금융회사에서 직원 3명이 감염되는 한편, 또 다른 금융회사에서는 30대 중반의 한 직원이 감기로 오인했다 치료 시기를 놓쳐 급기야 사망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B형 간염의 위험성과 예방에 공을 들여왔는데 정작 A형 간염의 역습에 방어막이 뚫린 셈이다. 대한 세계간염연합(WHA)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 12명 중 1명이 B형이나 C형 간염 보균자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B형 간염 유병률이 특히 높은 지역으로 분류되어 보건 당국이 수십 년간 예방접종 등 관리 사업을 벌여왔고, 최근에는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방심했던 A형 간염이 ‘복병’으로 등장해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A형 간염은 흔히 ‘후진국병’으로 불린다. 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된 식수나 음식물,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통해 전염되기 때문에 집단 발병이 쉽다. 위생 상태가 열악한 중국이나 동남아권 국가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보건 행정이나 예방 의학 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내에서 A형 간염이 다시금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7년간 국내 환자 수 70배 증가

이는 A형 간염 바이러스(HAV)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 보유율이 최근 30대 이하에서는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질병관리본부와 성빈센트병원 공동 연구 자료에 따르면, 40세 이상 A형 간염 항체 보유율은 100%에 가깝지만, 29세 이하 젊은 세대의 항체 보유율은 10~30%에 불과하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도영 교수는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청결하지 못한 위생 환경으로 아동기에 A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된 40대는 대부분 항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아동기를 거친 30대 이하에서는 항체가 없어 최근 10~30대 사이에 A형 간염이 늘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1980년대 이전만 해도 개인 위생 환경이 깨끗하지 못하고 상하수도 시설이 열악해 A형 간염에 노출되는 영유아(0~5세)가 많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감기 정도의 증상만 있은 뒤 항체가 생기기 때문에 40대에 이르러서는 쉽게 걸리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항체가 없는 30대 이하에서 A형 간염에 걸리는 주요 이유로 인도, 중국, 동남아 등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국가로의 해외여행이 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항체가 없는 젊은 세대가 해외에서 A형 간염을 얻어오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간 수치가 오르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로 인해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에서의 A형 간염 발생률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1년 1백5명에 불과하던 A형 간염 환자가 2008년 7천8백95명에 달해 7년 만에 70배 이상 증가했고, 발병 환자 가운데 대부분이 20~30대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전국 병·의원을 대상으로 한 A형 간염 표본 감시 결과에서도 A형 간염 내원 환자 수가 2007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20~39세 연령층이 전체 발생의 8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에만 5월에 들어 4천2백명을 넘겼고, 이 가운데 10명 중 약 8명이 20~30대로 젊은 층의 A형 간염 발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형 간염은 B형, C형 간염과 달리 혈액을 통해 감염되지 않고 만성화되지 않는 ‘수인성’ 전염병이다. 특히 감기 몸살과 비슷한 발열과 전신 피로감으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고, 2~6주간의 잠복기 동안 전염성도 매우 강하다. 한마디로 ‘걸리기 쉽지만, 쉽게 발견하기는 힘든 질환’이 바로 A형 간염이다.

치료약 없어 필수 예방접종에 포함시켜야

그러나 A형 간염은 현재 1군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되어 있지도 않고 국가 필수 예방접종 항목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 발병 위험은 계속 지적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지난해 11월부터 30대 이하 환자에서 발병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하며 A형 간염 백신 필수 예방접종을 강조해왔다.

당시 곽의원은 “2000~01년 홍역환자가 5만명 이상 발병하자, 정부가 5개년 계획을 세워 예방접종으로 홍역을 퇴치한 바 있다. A형 간염처럼 전염병은 어느 시점에 이르면 급격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고, 홍역처럼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전에 조속한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경고했다. 곽의원은 A형 간염의 경우 치료제가 없어 무엇보다 철저한 예방이 중요함에도 2008년 말 현재 초·중학생의 접종률이 14%밖에 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5~7월이 창궐 시기…국가적 차원 대응 필요

결국, 올해 들어 A형 간염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이에 곽의원은 “A형 간염을 필수 예방접종 질병으로 분류해, 국가적 대책을 세우는 한편, A형 간염 예방을 위한 대국민 홍보 강화가 계속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A형 간염의 주요 창궐 시기는 식중독과 비슷한 5월에서 7월 사이이다. 2008년 질병관리본부 전염병 통계에 따르면, A형 간염 환자 7천8백95명 중 50% 이상(4천1백43명)이 5~7월 사이 발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전문가들 가운데 일부는 전세계적으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보다 몸 안에 항체 보유율이 낮은 10~30대에게는 오히려 A형 간염이 더 무서운 전염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A형 간염은 현재 발병되었을 때 치료제가 없다. 유일한 해법은 백신 예방 접종뿐이다. A형 간염 예방 백신을 접종하면 90% 이상 항체가 생긴다. 단, 만1~16세까지 접종이 가능하며 접종비는 1회 4만~7만원으로 한 번 접종한 뒤 6개월에서 1년 뒤에 추가 접종을 해야 한다.

어릴 때 접종을 했더라도 20~30년 지나면 항체가 없어질 수 있어, 항체 검사 후 여부에 따라 접종을 해야 한다. 또, 조리사나 A형 간염 바이러스 고위험 국가 여행자, 집단 생활자, 혈우병 환자, 만성 간질환 환자, 의료 종사자는 가급적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세브란스병원 김도영 교수는 “30세 이하의 연령대는 자신의 A형 간염 바이러스 항체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A형 간염에 대한 인식 확산과 신생아에 대한 예방접종 사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인하대병원 소화기내과 이진우 교수 역시 “A형 간염이 성인에서 발병하는 경우 소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료 기간 및 비용이 증가한다. 청년층 이하 등에는 항체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A형 간염에 대한 적극적인 백신 접종을 시행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같은 지적이 잇따르자 보건 당국도 최근 A형 간염을 1군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하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국회에 상정한 상태이다. 더불어 개인 선택으로 되어 있는 A형 간염 백신을 필수 예방접종 항목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질병관리본부 전병률 센터장은 “현재 A형 간염 예방관리 지침을 만들기 위해 학술연구 용역 사업을 진행 중이며, 오는 9월께 연구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A형 간염을 필수 예방접종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손 자주 씻고, 음식은 익혀 먹고

A형 간염, 피하고 싶다면!

B형이나 C형 간염과 달리 최근에 40대 이하에서 높은 발병률을 보이고 있는 A형 간염은 수인성 질병이다. 이에 A형 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항락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수인성 전염병인 만큼 평소 손을 자주 씻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회, 조개 등 날것을 피하고 물은 반드시 끓여 마시는 것이 예방법이다”라고 말한다.

1. 식사 전이나 화장실을 다녀온 뒤 손을 깨끗이 씻고 끓인 물이나 정수 처리가 된 물을 마시고, 음식도 열에 익혀 먹는 것이 좋다.

2. 학교에서 단체 급식을 할 경우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A형 예방접종 지침은 만 1세부터 16세까지 1차 접종을 한 다음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추가 접종해야 한다.

3. 중국, 동남아, 인도 등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곳으로 여행할 경우 음식 섭취에 주의하며, 간 질환이 있거나 해외에 장기 체류한다면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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