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고치고 살아난 지하철 집단 상가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05.2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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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이식 판매 등 몰개성 영업으로 죽어 있던 상권 리모델링 후 각종 브랜드 입점시켜 고객몰이 성공

▲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개 이상의 상가를 집단으로 계약, 개발을 맡김으로써 인테리어와 분위기, 관리의 통일성을 기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있다. 위는 천호역의 집단 상가. ⓒ시사저널 이종현

지하철에 쇼핑하러 간다?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하철 상점이 빠르게 브랜드 매장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쇼핑몰에 버금가는 상권으로 부상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 5월19일, 하루 유동 인구가 20만명에 달하는 사당역을 찾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었던 매장은 바로 ‘김창숙 부띠끄’. 지난해 12월1일 문을 연 이래 이곳을 찾는 손님은 하루 평균 2천명에 달한다. 이 점포를 운영하는 본사 직원은 “매출을 알려줄 수는 없다. 다만, 실평수 48평에 직원 수만 14명에 이른다. 그러고도 돈이 된다고 말할 정도로 대박을 치고 있다”라며 활짝 웃었다. 과거 고급 브랜드로 이름을 날렸던 ‘김창숙 부띠끄’는 지난해 가을부터 지하철에 입점하기 시작했다. 반응이 좋아 5개월 만에 매장 수가 40여 개로 늘어났다.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화장품 전문 브랜드 ‘미샤’도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지난 5월10일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올린 매출이 7천만원이다. 심윤정 점장은 “매출 규모가 월 1억원은 될 것으로 보인다. 고객들 사이에 제품에 대한 신뢰가 쌓인 덕에 반응이 좋다”라며 활짝 웃었다. 대각선 맞은편에서는 신발 브랜드 ‘까슈’ 직원들이 다음 날 개장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에 입점하는 신발과 가방 가게는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점포가 대부분이었다. 화장품에 이어 신발도 전문 브랜드 매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5호선과 8호선이 교차하는 천호역은 지난 4월, 집단 상가를 리모델링하면서 상점의 90%를 브랜드 가게로 채웠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이하 도철)로부터 상가 개발권을 따낸 점포 중개업자 박은철씨는 “비브랜드 가게가 우후죽순 영업을 했던 탓에 상권이 거의 죽어 있었다.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아리따움, 나이키, 파리바게트 등 브랜드 매장으로 채웠다. 지하 2층에 있던 개찰구도 집단 상가 바로 옆인 지하 1층으로 옮겼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상권도 살아났다”라며 변화의 과정을 설명했다.

강남 아줌마의 입맛을 사로잡은 ‘총각네 야채가게’도 지난 3월31일 학동역점을 시작으로 지하철 5, 7호선에 5개 점포를 열었다. 야채과일가게 전문 브랜드가 지하철에 들어서기는 처음이다. 지난 5월 초부터 답십리역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명섭 매니저는 “개장 초기에는 하루 매출이 3백만원에 이르렀고 지금도 하루 평균 1백50만원 정도 팔리고 있다”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총각네 야채가게’의 경우 도철 사업운영팀이 직접 시장 분석을 통해 유치한 사례이다. 사업운영팀 김문규 과장은 “웰빙 시대를 맞아 친환경 먹을거리를 지하철역에서 팔면 장사가 잘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일반을 대상으로 공모한 뒤 전문가들과 상의한 결과 ‘총각네 야채가게’ 평가가 가장 좋아 협상 계약을 맺었다”라며 유치 배경을 전했다.

상점 입찰에서도 ‘일반 경쟁’에서 ‘지명 경쟁’이나 ‘조건부’로 변화

지하철 상점은 일반 경쟁 입찰을 통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개인이 임대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최근에는 지명 경쟁 입찰이나 조건을 달아서 입찰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도철 김과장은 “2007년, 편의점을 유치하면서 30개 이상 점포를 낼 수 있는 업체로 제한했다. 편의점 브랜드 업체인 ‘세븐일레븐’이 입점한 덕에 고객들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고, 인테리어도 깔끔해 역사 환경이 산뜻해지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었다. 이후부터 규모가 있는 브랜드 업체 위주로 지하철 상점을 개편해나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업체에게도 지하철은 매력적인 곳이다. 실평수 8평 규모 매장의 월 임대료가 월 100만원에서 1천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하다. 보증금은 월 임대료의 9개월(도철), 18개월(서울메트로) 분으로 큰 부담은 아니다. 권리금도 없다. 덤으로 광고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업체들 사이에는 고액의 수수료를 내는 백화점보다, 파리만 날리는 로드샵보다 지하철 매장이 훨씬 낫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지하철로 들어오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공간 개발도 꾸준히 한 결과 임대사업 수익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08년, 도철이 임대료로 거둔 수익은 2백53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배 증가했다. 올해에는 광고 수입과 합쳐 5백억원까지 끌어올려 부대 수입액이 전체 운임 수익의 10%를 차지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도철보다 먼저 지하철 상점의 브랜드화를 이끌어낸 곳은 코레일유통이다. 2004년, KTX가 개통하면서 상점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이후 브랜드 업체로 채웠다. 변화의 단초는 화장품 가게였다. 코레일유통 마케팅기획팀 이정훈 과장은 “당시 점포 매출 추이를 분석해보니 브랜드가 없는 종합화장품의 매출이 뚝뚝 떨어지고 있더라. 그때 고객들이 지하철에서도 가치 구매를 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화장품 브랜드 매장을 직접 찾아가 입점해달라고 제안했다. 그때만 해도 브랜드 1위 업체는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입점을 꺼렸다. 하지만 화장품 브랜드 ‘더 페이스샵’이 지하철에 들어와 성공하자 이제는 브랜드 매장에서 먼저 제안할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라며 뿌듯해했다.

후발 주자로 나선 서울메트로도 지난해 7월, 지명 경쟁 입찰을 통해 화장품 브랜드 ‘미샤’ 60개 점포를 입점시켰다. 서울메트로 부대사업팀 오양수씨는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고 난 뒤 재고 물건이 쏟아져나오면서 지하철 상가에서는 저가 떨이식 판매가 주종을 이루었다. 이때만 해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지하 상권에까지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고객들이 지하철에서도 믿고 살 수 있는 브랜드 제품을 원한다. 변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불과 4~5년 만에 브랜드 매장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된 지하철 상점들. 일본처럼 지하철이 종합쇼핑몰 공간으로 거듭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 개통 준비가 한창인 서울 지하철 9호선. 최초로 편의점에서 티켓 판매 업무를 겸해 인건비 절감과 공간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시 메트로 9호선(이하 9호선)은 시작부터 다르다. 기존의 지하철 상점은 일반 경쟁 입찰 방식으로 분양되었지만 9호선은 유통 전문 기업인 ‘GS리테일’에 위탁을 맡겼다. GS리테일은 향후 5년간 9호선 역사에 들어설 1백14개 매장을 자체적으로 선정하고 관리하게 된다. 9호선 부속사업 담당 김유진 대리는 “100% 브랜드 매장만 들어올 수 있도록 조건을 달았다. GS리테일이 일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매장 분위기를 통일되게 이끌어나갈 수 있고, 관리 비용도 줄일 수 있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고객들이 매장 이용에 관한 불만을 전달해오면 GS리테일에 한 번만 알리면 되어 사후 처리도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라며 위탁운영 방식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편의점에서 매표소 업무를 겸하는 방식도 처음으로 시도된다. 공간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수익 극대화를 이끌어낸다는 장점이 있다. 김대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집중되는 개찰구 바로 옆에 패밀리마트를 입점시켰다. 마트 처지에서는 매출을 높일 수 있고, 우리로서는 더 높은 월 임대료를 받아 윈-윈 효과를 누릴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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