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엄마를 누가 이기랴
  • 정락인·김지혜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5.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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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강사들의 경우 1주일에 2시간씩 2회 하고 과목당 1천만원까지 받는다. 아이는 6~7세에 벌써 영재학원에 발을 들이고 엄마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갈 데까지 간 서울 강남의 ‘막장 사교육

서울 강남은 교육의 별천지이다. 교육 환경이 대한민국에서 최고 가는 곳이며, 전국에서 이름께나 날린다는 유명 강사들은 죄다 몰려 있다. 학원 강사나 과외 교사들이 ‘벤츠’를 타고 다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학원 왕국’ ‘사교육 1번지’라는 별칭이 붙은 대치동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축소판이다. ‘애들을 성공시키려면 대치동으로 보내라’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시사저널>이 취재한 강남 지역의 사교육 실상은 역시 놀라웠다. 사교육을 주름잡고 있다는 강남 아줌마들의 치맛바람은 여전했고, 사교육은 ‘막장’이라고 부를 만큼 갈 데까지 간 상태였다. 도대체 사교육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은 것인지 헤아릴 수 없다.

우선 강남 지역에서 ‘아줌마’들을 빼놓고는 ‘교육’을 얘기할 수 없다. 대한민국 사교육을 주무른다는 ‘큰손’들이 바로 강남 아줌마들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전업주부’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자녀들의 매니저’라는 직업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강남 아줌마들의 인생 최대 목표는 ‘아이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것’이다.

이들의 교육에 대한 집착은 무서울 정도이다. 강남 아줌마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곧바로 ‘입시 매니저’로 나선다. 이때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20여 년 동안 줄곧 영재 교육과 입시 전략을 짜는 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강남 아줌마들은 ‘교육 전문가’를 뺨칠 정도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다. “어지간한 실력 가지고 강남 지역에 발붙일 생각은 하지 말아라”라는 학원가의 속설이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현재 강남 지역에는 5백여 개의 학원과 교습소가 있고, 이 중 ‘사교육 1번지’라고 불리는 대치동에만 3백여 개가 밀집해 있다. 지하철 3호선 대치역에서 도곡역 사이에 있는 상가에는 ‘수학전문학원’ ‘영어논술’ ‘보습학원’ ‘학습클리닉’ 등의 이름을 단 학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강남교육청은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강남·서초 지역에서 폐원·폐소하는 학원이나 교습소가 지난 2007년 6월 이후 최대치라며 ‘학원비 단속’과 ‘방과 후 학교’ 운영이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원가의 시각은 다르다. 단순히 숫자를 가지고 ‘사교육’을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우선 학원 숫자가 줄어든 것은 경기 불황 탓이라고 본다. 강남 지역 학원가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는 학원은 어차피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기 불황 중에도 특목고 학원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강남 지역의 특성이다.

왕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왕도’를 걷는다면, 강남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영재 교육’ 코스가 필수이다. 기존에는 ‘영재 교육-특목고-명문대’가 ‘엘리트 코스’로 불렸으나, 올해 국제중학교가 개교하면서 ‘국제중’이라는 단계가 하나 더 생겨났다. 다시 말해 국제중 신설이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사교육비 현황을 보면 영어 과목의 1인당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엘리트 코스를 거치는 학생들은 험난한 사교육 행진을 이어가야 한다. 평소에는 ‘경시대회 과외’, 시험 기간에는 ‘내신 과외’, 시험 직전에는 ‘막판 족집게 과외’, 수능이 다가오면 ‘수능 과외’, 수능이 끝나면 지원 대학에 맞추어 ‘면접 과외’ ‘논술 과외’ ‘입시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학생 1인당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10개까지의 과외를 받고 있는 셈이다.

강남에서는 6~7세 된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영재학원으로 오는 경우가 꽤 많다고 한다. 목표는 선행학습을 위해서이다. 매달 30~40만원의 수강료를 내야 하는데도 영재학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애쓰는 부모들의 극성은 지나칠 정도이다. 그래야 나중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에 나갈 수 있다. 영재학원으로 유명한 ㅍ학원의 경우 7세 때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선행학습으로 이수하면서 경시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학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경시대회 준비를 시작한다.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와 같은 권위 있는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기 위해서이다. 경시대회에 대한 학부모들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목고에 가기 위한 관문이다 보니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자녀 성적 따라 부모들도 끼리끼리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성 아무개군(15)의 경우 어릴 적부터 과학고에 들어가기 위해 맞춤 교육을 받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수학 중등부 시험을 보고, 연이어 고등부 시험에 응시하고자 했지만 자격이 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학생들과 부모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학올림피아드를 주관하고 있는 대한수학회측은 자격 제한을 완화해 지금은 중등부에서 금상 이상을 수상하면 고등부 시험에 응시가 가능하다. 그런데 고등부에 응시하는 초등학생 상당수는 순전히 경력을 만들기 위해 시험을 본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아이들이 영재교육원에 다니고, 중학교 때 치열한 경시대회를 거쳐서 고등학교 과정을 다 배우고 난 후 과학고에 입학하게 된다. 잘 되면 카이스트까지 진학한다.

학생들의 성적순에 따라 부모들도 ‘끼리끼리’ 뭉치는 경향이 있다. 최상위권의 학생을 둔 엄마들은 수학·과학·영어 등 각 과목별 과외 교사 리스트를 공유하고 있다. 학교 수업과 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는 내신과는 달리 경시대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 유용하다고 한다.

일부 학부모는 다른 학교 학생의 신상 정보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이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주부 송 아무개씨는 “얼마 전에 우리 학교의 옆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자기 아들과 우리 아이의 수준이 맞을 것 같다’라며 수학 과외를 함께 받자는 제안을 해왔다. ‘온라인 교육 사이트인 ㅁ사의 인기 강사가 밤에 잠깐 시간을 내서 1주일에 두 번 과외를 해줄 테니 1천만원을 달라’라고 했다며 수준 맞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과외를 받자는 것이었다. 그 엄마는 ‘강남 지역의 전문 과외 선생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라고 전했다. 결국, 인근 중학교에서 수학으로 날고 긴다는 학생 네 명이 매달 2백50만원씩 내고 강의를 듣고 있다고 한다.

상위권 실력을 가진 학생들은 내신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특목고 입시 정책이 워낙 널뛰듯 춤을 추기 때문에 방심하면 ‘10년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상위권 학생 3명이 내신 과외를 받고 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일정이 잡히면 과목당 3백만원 정도 하는 ‘내신 족집게 과외’를 한다. 3명이 각각 100만원씩을 나누어내면 되지만,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을 수강하려면 3백만원을 써야 한다. 순수하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한 번 보자고 쓰는 돈이다.

특단의 대책 없으면 막아내기 힘들어

▲ 지난 5월21일 밤.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이처럼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과외를 받는 목적은 따로 있다. 학교에서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아이들의 석차를 가리기 위해 내는 ‘변별력 문제’ 때문이다. 내신은 평범한 교과서 중심 문제이지만 등수를 가리려면 어려운 문제를 한두 개 내는데 이 문제를 맞추어야 과학고 입시를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다. 내신 대비 온라인 강의는 과목당 7만~8만원이지만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족집게 과외’가 동원되고 있다.

강남 지역의 한 학원 관계자는 “과외도 과목별로 세분화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수학’이라고 해서 수학교사 한 사람에게 과외를 받지 않는다. 종류별로 쪼개서 과외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함수·미적분·통계 등에는 각각 과외 교사가 따로 있다.

과학도 물리·생물·화학 과외가 별도이다. 과외비는 교사들의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유명 강사의 경우 1주일에 2시간씩 2회 수업을 하고 과목당 최소 3백만~1천만원을 받는다. 한 학생이 과외비를 감당하기가 버거우면 과목당 100만~1백50만원씩 내고 2~3명이 팀을 만들어서 수업을 받기도 한다. 학부모들은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달 1천만원의 과외비가 들어간다”라고 말한다.

강남 지역에는 지방 학생들도 몰린다. 해마다 방학 때가 되면 대치동 일대는 지방 유학생들로 북적거렸다. ‘대치동에 오면 성적이 쑥쑥 오른다’는 명성을 듣고 쫓아온다. 여름이나 겨울 방학을 두 달 정도 앞둔 시기에는 방을 보러 오는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방 유학생들은 대치동의 학원가에서 ‘맞춤 강의’를 듣거나 ‘족집게 선생’에게 맨투맨 과외를 받는다. 그룹 과외는 다섯 명이 받는데 한 달 과외비로 2백50만~3백만원을 주고 있다. 과외 선생은 대치동 학원가에서 명성이 있는 유명 강사이다. 특A급 ‘유명 강사’들의 한 달 개인 과외비는 부르는 것이 값이다. 과외 선생들은 고급 오피스텔에서 상주하면서 학생들에게 집중 교육하고 있다.

‘사교육’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나 골칫거리였다. “내 임기 안에 반드시 사교육을 잡겠다”라고 호언장담했다가 오히려 입시 혼란만 초래했다. 학원가에서는 ‘학원의 심야 교습’을 억제하면 그 수요가 고스란히 새벽이나 주말로 옮겨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고액 과외를 부추기고 개인 과외가 성행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렇다고 학원의 심야 교습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끝까지 간’ 사교육 실태는 교육 문제 전반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줌마튜터’ ‘입시 컨설턴트’…시험의 달인이 된 그녀들의 변신

요즘 강남에서는 ‘입시의 달인’으로 불리는 아줌마들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자녀를 이른바 ‘SKY’에 진학시킨 노하우가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밑천이 되고 있다. 특히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미국 명문대에 자녀를 입학시킨 학부모는 ‘입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으로 분류되어 ‘귀한 몸’ 대접을 받는다.

이들 아줌마들은 단순한 부업에서 아예 ‘기업형’으로 나서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아줌마튜터’가 유행이었다. 아줌마튜터는 남의 자녀를 떠맡아 입시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며 명문대 합격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을 말한다. 보수는 계약하기 나름이다. 매월 돈으로 받고 명문대에 합격할 경우 성과급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사업 이권이나 자녀의 취업 등을 보수로 대체하기도 한다.

아줌마튜터에서 한 단계 진화한 것이 엄마들이 운영하는 ‘오피스텔 컨설팅회사’이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엄마가 차린 ‘1인 기업’인 셈이다. 아이를 명문 대학에 보내면 정보가 빠삭해지기 마련이다. 학생의 수준에 따라 ‘맞춤 교사’를 연결해주는 것도 컨설팅의 주 업무이다. 아줌마 컨설턴트의 재산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축적한 과외 교사 랭킹 리스트와 풍부한 노하우이다. ‘아줌마튜터’나 ‘입시 컨설턴트’들도 자녀가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에 따라 찾는 고객과 수입이 달라진다. 사교육의 틈새에서 생겨난 강남의 새로운 풍속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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