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것도 사랑이었나
  • 이재현 (yjh9208@korea.com)
  • 승인 2009.06.02 17: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적을 얻기 위한 위장 결혼…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부부

▲ 감독: 뤽 & 장 피에르 다르덴 / 주연: 아르타 도브로시, 제레미 르니에

우리도 한때 아메리칸 드림을 꾼 적이 있다. 잘사는 미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는 꿈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가느냐는 것이었고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위장 결혼이었다. 불법 중개업자가 전혀 모르는 미국인을 소개하면 돈을 주고 결혼해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지금은 동남아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을 꾸며 한국으로 몰려오지만 대부분 불법 체류의 형태를 띠고 있다. 위장 결혼에 들일 돈이 없어서이다.

최민식과 장백지가 주연했던 영화 <파이란> (2001년 개봉)도 위장 결혼을 소재로 하고 있다. 3류 건달 강재의 삶에 초점을 맞추다 영화 후반부에서, 떨어져 살았던 서류상의 아내 파이란이 남긴 편지를 보고 오열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결혼만 해준 여자가 사랑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죽은 여자가 사랑한다고 말하니 울 만도 할 노릇이다. 위장 결혼을 소재로 한 영화로는 당분간 <파이란>을 넘어설 작품이 없을 듯하다.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합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로나의 침묵>에서 로나(아르타 도브로시 분) 역시 클로디(제레미 르니에 분)와 위장 결혼을 한 사이이다. 한집에서 함께 살지만 둘은 철저히 남처럼 산다. 마약 중독자인 클로디는 로나만 보면 약을 사달라, 의사를 불러달라고 조르는 귀찮은 존재이다. 로나에게는 연인이 따로 있다. 그와 함께 돈을 모아 작은 식당을 마련하는 것이 소원이다.

단 한 차례의 정사 그리고 임신

로나의 위장 결혼에는 조직이 개입되어 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직이 감시하고 경고한다. 로나는 징징거리는 클로디가 싫어서 이혼하겠다고 말한다. 벨기에 국적도 이미 나왔으니 더 아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조직은 신중하다. 의심을 살 만한 일은 없는지 철저히 살핀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로나의 국적을 팔아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덜컥 임신을 하고 만다. 클로디와 단 한 차례 가졌던 정사에서였다.

2008년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는 <로나의 침묵>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클로디가 로나를 좋아한다는 것 외에 영화는 시종일관 위장 결혼만 이야기한다.

감독은 철저하게 재미를 무시하고 있고, 지루하거나 말거나 자기 주장만 펼치고 있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스크린에 담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영화 포스터와 제목만 보면 아주 그럴 듯한 사랑 영화 같지만, 아니다. 상영 시간 1백5분. 6월4일 개봉.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