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집중하다‘남북’ 놓쳐…특사 보내서 풀어야”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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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다녀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인명진 목사 / “민간 지원도 절실”

ⓒ시사저널 이종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지난 5월20일부터 23일까지 평양을 방문했다. 인목사는 민주당 천정배 의원, 불교방송 이사장인 영담 스님 등 11명과 함께 시민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자격으로 방북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우리 정부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 가입으로 평양 방북이 금지된 가운데 그는 가장 최근에 평양을 다녀온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인터뷰는 5월27일 오후 3시, 그가 담임목사로 있는 서울 구로구의 갈릴리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의외다. 평소 북한에 대해 관심이 많았나?

북한에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양이 생소하지는 않았다. 과거 중앙정보부에 잡혀갔을 때 평양 지도를 보여주며 ‘어디 갔다 왔느냐’라고 추궁당하며 2박3일간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 집중적으로 ‘평양 학습’을 했다. 평양에 갔을 때도 북측 사람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웃음)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당겨졌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법륜 스님이 찾아와 ‘지금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렵다. 그런데 인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대북 사업을 해왔던 사람들을 친북 좌파 인사로 보면서 잘 만나주지도 않는다. 목사님이 양쪽을 다 아니 서로 오해가 없도록 중간 역할을 해달라’라고 했다. 그날 같이 밥을 먹는데 법륜 스님이 식사를 안 하길래 물었더니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촉구하며 단식 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워지더라. 그때부터 심부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는데….

올 2월 개신교쪽 대표격으로 맡았다.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과 민주당 천정배 의원도 공동대표를 맡았다. 두 의원은 10년 이상 이 단체를 후원해왔다. 효과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한 번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 북측에 의견을 물었더니 ‘언제든 환영이다. 그런데 정말 올 수 있느냐’라는 답변이 왔다. 구체적인 사업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 둘러보러 간다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원래 예정했던 남포는 가지 못하고 평양 시내만 둘러보았다.

북한이 인목사와 천의원의 방북을 허용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

인도적인 차원의 대북 지원에 대해서 물꼬를 터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의원의 방북에 대해서는 처음에 정부에서 난처하게 생각했다. 통일부가 망설이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많이 도운 것으로 안다. 방북단 숫자도 좀 줄이라고 했는데 신청한 대로 다 갔다. 남북 당국이 우리의 방북을 허가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우리 정부가 왜 이렇게 했을지 잘 생각해봐라. 그냥은 아니다. 단장으로 갔는데 인사할 때 이렇게 말했다. “인도적 지원을 통해 화해·협력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지와 남측 당국의 인도적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지 때문에 오게 되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변화시키고 남북의 물꼬를 트는 데 일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쪽에서 메시지를 준 것도 없고 받아온 것도 없다. 실무자들만 만났다. 나는 북에 가서도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지원한 돈으로 북이 로켓과 핵을 만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도 돈 모으기 힘들다. 이명박 정권은 그런 사람들이 지지해서 만든 정권이다. 5백만표 차이가 났다”라고 했더니 북측 사람들이 상당히 당황해했다. “생각해봐라. 개성공단에서 일하다 50일 넘게 잡혀 있는데 어떻게 또 보내냐. 가능하다면 내가 유씨와 한 달 바꾸어 있고 싶다. 나도 혹시 몰라 매일 먹는 약을 한 달치 가지고 왔다”라고 큰소리쳤더니 북측 인사가 “인목사님 좀 편안하게 모시라우”라고 농담하더라.

첫날은 강하게 우리 정부를 비판하더니 오는 날 저녁에는 같이 밥을 먹으며 6·15 선언만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남북 대결(PSI를 지칭하는 듯)만 안 하면 언제든 협력해나갈 수 있다고 하더라. 북에서는 현인택 통일부장관을 기피 인물로 보고 있더라. 나는 (장관이) 학자일 때는 이런저런 주장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현실 감각이 생겨 그때와 다르다고 말했다.

평양의 분위기는 어떠했나?

지난해 9월에도 평양을 방문했던 사람들 이야기가 그때에 비해 차가 많이 늘어났고 불도 더 환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웃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체격이 작고 말라 몸이 약간 뚱뚱한 편인 내가 내심 미안하더라. 그래서 평양 갔다 온 뒤부터는 전에 비해 밥을 반만 먹는다.(웃음) 전에는 안내하는 이들이 저녁을 같이하고 뒤풀이도 했다는데 이번에는 일체 없었다. 하지만 민간 지원은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귀국 직후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방북을 계기로 느꼈던 남북 당국의 정책 변화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남북이 코너에 몰렸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로켓을 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거들떠도 안 보니 투정하는 것이다. 기싸움이다. 오래갈 것 같다. 풀리는가했더니 중단되어 가슴이 아프다. 자존심 비슷한 것 굽히고 얘기를 트면 쉽게 화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인데…. 답답하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기인데 이렇게 하다가 5년 임기가 다 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된다. 

남북 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딜레마에 빠졌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숙명적으로 씨름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외교·남북 문제이다. 경제는 대통령이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 관계에 편입되어 있고 전문가들도 많다. 대통령이 경제에 집중하다 남북 문제를 놓친 측면이 있다.

여전히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언젠가는 통일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남북 대결이라는 것과는 관계없는 민족으로서의 투자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100년 이상 된 소나무가 재선충으로 죽어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도와줬다는데 지금은 북으로 약이 안 가고 있다. 의료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민족의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장래를 내다보고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명박 대통령과도 남북 문제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지난해 5월쯤이다. 전화로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대통령도 배고파 보았으니 그들의 아픔을 알 것 아니냐. 인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상당히 유연성을 갖고 대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인도적인 지원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6월에 있었던 국회 개원 연설이 그 단초이다. 그 이후 사회 원로들과의 대화 등을 거쳐 8월15일에 진전된 대북 정책을 내놓는다는 계획이 있었다. 금강산 피격 사건이 없었다면 상당한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환하려는 중요한 시점에 공교롭게도 금강산 피격 사건이 터졌다.

나는 촛불 집회를 많이 원망한다. 이명박 정부가 그것 때문에 놀라지만 않았어도 폭넓게 중도 실용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항의를 넘어 정권 퇴진 쪽으로 가버리니 대통령이 확고한 지지층이 있는 우파 쪽으로 급격하게 기운 것이다. 자칫하면 이것도 놓친다는 조바심이 있지 않았겠나. 모험을 해서 정책을 전환하면 북한이 호응해야 하는데 자칫 집토끼·산토끼 다 놓칠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것 같다.

남북 관계가 계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명박 정부가 남북 문제를 이대로만은 끌고 갈 수 없다. 특사를 보내야 한다. 공개하기 어려우면 비밀스럽게라도 해서 풀어야 한다. 개성공단 문제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북쪽에 곤혹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개성공단에 투자하는 것도 통일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해야 한다. 금강산 문제도 놔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풀어야 한다. 북한에 대해 너그러운 자세가 중요하다. 잘 해결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데 대해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사람들이 단지 전직 대통령이 억울하게 죽어서 조문하는 것이라고만 해석하면 안 된다. 옛말에 제 설움에 운다는 말이 있다. 국민이 이 정부에 대해서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서럽게 울었을까. 정부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잘 살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만 듣지 말고 국민이 기대하는 것을 앞지르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잘 대처하지 않으면 이 정권에 굉장한 타격이 올 것이다.

일대 쇄신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한나라당이 자율성이 없다. 묶여 있는 것처럼, 끌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밑에서 올라가는 역동성이 안 보인다. 생기 있게 돌아다니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해온 것을 보면 선거를 다시 안 할 정당처럼 보인다. 쇄신특위라고 만들었는데 국면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다. 진정으로 쇄신을 하려면 외부 사람들이 과반수 이상 들어가야 한다. 당내 사람들 모아가지고 무슨 쇄신이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정책이 좋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싫다면 설득하며 기다리는 것이 정치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중에 바닥에 닿는 사람, 바닥을 기어본 사람이 없다. 그러니 바닥을 모른다. 떠 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곳에 정부가 없다. 예를 들면 용산 문제 같은 것이 그렇다. 조정이 안 되다 보니 일을 키운다. 너무 경제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면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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