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되 강하게”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9.06.0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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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 북한 움직임 보아가며 ‘강·온’ 택할 듯

▲ 5월25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비난했다. ⓒEPA

지난 5월25일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에서 보름이 더 지난 날이었다. 미국 현충일(메모리얼 데이)이기도 했다. 또,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한 날이기도 했다. 오바마는 연휴를 맞아 캠프 데이비드에서 머무르다 이날 오전 백악관으로 돌아가 로즈 가든에서 현충일 추모 연설을 했다. 그리고 보좌관들로부터 북한 핵실험 보고를 들으며 대책회의를 가졌다.

 오바마는 회의 직후 북한의 핵실험은 “국제법과 북한 스스로의 비핵화 선언을 노골적(blatant)으로 위배했다”라고 말하고 ‘대응’을 천명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에 전화를 걸어 이명박 대통령, 아소 다로 총리와 상황을 논의했다.

 그리고 오바마는 예정대로 골프장에 나가 오후를 보냈다. 미국민과 언론 누구도 ‘이처럼 중대한 시점’에 대통령이 한가하게 골프나 쳤다고 나무라지 않았다.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3년 텍사스에서 골프를 치던 중 미국의 유엔 파견 외교관 서지오 비에이라 데 멜로가 바그다드에서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고 라운딩을 중단했다. 북한 핵이 미국 외교관 한 명의 목숨보다 약하게 받아들여지는 곳이 미국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사설에서 아예 오바마를 두둔하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 시위에 호들갑을 떨지 않고 유연하고 느긋하게 반응한 것은 아주 잘했다고 오히려 칭찬까지 했다. 북한 핵실험은 위기가 아니라고 훈수까지 했다.

한 달 만에 다시 도발한 북한에 불쾌감 표출

 북한이 지난 4월 장거리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에 이어 지난 4월 핵실험과 함께 단거리 미사일 5기를 연달아 발사하자, 미국은 지난 2006년 1차 핵실험 때와 달리 불쾌하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하자 1993년 이래 미국 역대 정부가 해오던 방식대로 일단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번 핵실험은 지난번 미사일 실험에 이어 한 달 만에 다시 발생한 사태라는 점에서 아주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이 오바마의 대답을 재촉하기 위해 재도발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가 사용한 ‘blatant’라는 말에는 ‘뻔뻔하다’와 ‘노골적’이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다. 한 나라 지도자가 다른 나라 지도자에게 공식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용어가 아닐 수 없다.

 오바마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강력했다. 그러나 읽던 책을 접듯 금방 잊어버리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행동은 신속했으나 마음은 느긋했다는 의미이다. 그가 백악관으로 돌아가 접었던 책을 다시 펼칠 때 그날 오전에 받았던 불쾌감은 되살아났을 것이다.

 베이징 6자회담의 미국 부대표였던 한국 문제 전문가 빅터 차는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가 안았던 것과 같은 부담이 없이 북한 문제를 추진해나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부시 정부는 일방적인 이라크 전쟁 개전으로 국제 사회의 견제를 받은 데 이어,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전복 의도를 갖고 있다는 의구심을 받았다. 부시 정부가 북핵 문제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우방국들의 협력을 받는 데 실패한 이유였다.

 사실 북한이 대포동 2호 발사, 핵실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면서 미국 내 여론이 강경해짐에 따라 오바마에게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오바마는 지난해 대통령 후보 시절 김정일과 무조건 대화할 뜻을 시사하면서 부시 정부와 달리 유연성과 융통성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강경책보다는 유화책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 대신 강경책도 채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던 셈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북한이 오바마 정부의 관심을 끌고자 핵실험을 했다면 이번에는 그런 기도가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 더 이상 미국의 경제 지원이 있어서는 안 되며, 북한 정권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승인과 유화 정책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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