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역사 깊어도 제도적 지원 못하고 있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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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환자들의 ‘대모’ 노유자 수녀

ⓒ시사저널 우태윤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서 고생했는데, 마지막에는 편안하게 갔다. 각별한 정이 들었던 환자였다. 아직도 그의 모습이 선하다.” 성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 노유자 센터장(67·쟌드마리 수녀·사진 오른쪽)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환자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돌보던 환자가 임종하면 한동안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노수녀는 올해로 30년째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는 불치병 환자들의 ‘대모’이다. 지난 1970년대 초에 간호 수녀로 시작해서 가톨릭대 간호학과 교수, 성바오로병원 원장을 역임하기까지 줄곧 호스피스와 관련된 일을 했다. 가톨릭계 내에서는 알아주는 ‘호스피스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왜 호스피스가 되었을까. “신참 수녀 때 명동 가톨릭성모병원에서 간호 수녀로 일했다. 그때 간암 말기이던 34세 여성을 만났다. 임종할 때까지 곁에서 돌봐주었는데 나중에 ‘수녀님을 만나서 너무 행복했다. 앞으로 저와 같은 환자를 돌봐주시고 오래 사시다가 하늘나라에서 뵙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다”라고 회상했다.

성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에는 병실이 없다. 호스피스센터를 건립하려고 했으나 그린벨트에 묶여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환자들을 직접 찾아나서고 있다. 현재 그가 관리하는 말기 암 환자는 20여 명 정도. 1주일에 2~3번은 자원봉사팀(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자원봉사자·목회자)을 이끌고 환자 가정을 방문한다. 환자들이 편안한 임종을 맞도록 돌봐주고 기도해주는 것이 주된 일이다. 환자들의 몸 상태, 식사 조절, 투약 등도 꼼꼼하게 챙기고 가족들과의 작별 인사, 이별 여행을 보내주는 것도 노수녀가 하는 일이다.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역할뿐만 아니라 친구이자 어머니 역할까지 한다.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67세의 간암 환자가 있었다. 젊어서부터 참 열심히 살았던 분인데 돈 때문에 가족들과 오랜 갈등이 있었다. 거의 남남처럼 지냈다. 그의 가슴 속에 맺힌 평생의 한이기도 했다. 자원봉사팀과 의논을 한 끝에 가까스로 화해를 시킬 수 있었다. 임종 며칠 전에 서로 껴안고 화해하는 것을 보면서 떠나보낼 때 너무 행복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가정 방문이 없는 날은 ‘주간 호스피스’를 운영한다. 환자들을 센터로 데려오면 미술치료, 원예치료, 음악치료, 아로마요법, 꽃꽂이, 비즈공예 등의 요법으로 환자와 가족들의 심신을 안정시키고, 서로 정보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환자들 중에 ‘콧바람을 쐬고 싶다’라며 센터로 찾아오면 노수녀가 수녀원을 안내하며 산책을 시키기도 한다.

환자들이 임종하면 그 가족들의 뒷수발까지 맡는다. ‘사별 가족들의 모임’을 운영하며 서로 아픔을 달래주고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있는 센터를 방문했던 지난 5월27일에도 사별 가족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는 “호스피스는 사회운동이다. 환자가 어떤 모습으로 임종했느냐에 따라 가족들의 불행과 행복이 엇갈린다. 이것이 곧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역사가 깊은데도 아직 법제화가 안 되고 있다. 하루빨리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서 불치병 환자들이 체계적인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성바오로 가정호스피스센터의 호스피스 이용은 전액 무료이다. 순수한 후원금으로 센터를 운영하다 보니 부족한 재정이 항상 걸림돌이다. 노수녀는 “내 욕심으로는 상근 간호사와 의사, 유급 봉사자를 두었으면 좋겠는데 재정 형편 때문에 한계가 있다. 지금은 수녀님 두 분과 유급 봉사자 한 명으로 센터를 꾸려가고 있다. 환자들이나 가족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어도 안 된다. 나눔의 문화가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봉사라는 것이 따로 없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나누면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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