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검찰’ ‘국민 검사’ 사이 영욕의 28년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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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있는 중수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는 어떤 기구인가. 중수부는 전두환 정권 때인 지난 1981년 출범했으며, 대검 공안부와 함께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양대 축으로 불린다.

지난 2004년 12월 개정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중수부는 제1과와 제2과 그리고 첨단범죄수사과를 두고 있다. 중수부장 밑에는 수사기획관 한 명을 둘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중수부 제1·2과와 첨단범죄수사과는 모두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 사건을 수사한다.

특히 중수부장을 보좌하는 수사기획관의 업무가 폭넓다. 검찰총장이 정한 수사 업무를 기획하고 조정하며, 지도하고 교육하는 업무를 두루 관장한다. 여기에 유관 기관의 협조가 필요할 때에도 나선다.

또한, 공무원이나 공공 단체 및 국영 기업체의 직원, 변호사 등의 범죄 사건에 대한 검찰 사무를 지휘 감독하는 권한까지 부여되어 있다. 

이런 중수부가 처음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이었다. 중수부는 그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형 권력형 사건을 수사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사를 벌여 ‘정치 검찰’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영삼(YS) 대통령 시절,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으며, YS의 차남인 김현철씨도 중수부를 나오며 수갑을 찼다. 옷 로비 의혹 사건을 맡았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ㆍ김홍걸 씨 등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던 2003·04년에는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도 칼을 들이댔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현 대법관)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국민 검사’라는 애칭까지 붙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중수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에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과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의 뇌물 수수 사건 등 대형사건 등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이 났다. 여기에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씨의 대우그룹 구명 로비 의혹과 김승광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배임 수재 의혹 사건 등에서도 무죄 선고가 났다.

특히 한국석유공사와 강원랜드 등 공기업 비리 의혹 사건에서도 연전연패를 했다. 그러자 검찰 안팎에서는 “중수부가 무리하게 기소한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중수부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해 11월부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으나, 이 역시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지난 1월 이인규 중수부장이 부임하면서, 특수수사통인 ‘이인규 부장-홍만표 수사기획관-우병우 제1과장’ 진용이 갖추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들을 ‘환상의 트리오’라고 부르며 “뭔가 일을 낼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3월로 접어들면서 중수부의 칼날은 매서웠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인 이광재 의원과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 전·현 정권 인사들을 줄줄이 구속시켰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표적 수사’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중수부의 초기 수사 과정에서 구속된 이들 대부분이 구 여권 인사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또다시 ‘정치 보복’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리고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중수부가 또 한 번 존폐 기로에 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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