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부를 폐하라” 부메랑 맞는 검찰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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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론 불거지며 인적 쇄신·조직 개편 요구 잇따라

▲ 임채진 검찰총장이 5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전직 대통령을 구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명예가 곧 나라의 명예인 것이다. 검찰이 미주알고주알 다 파헤친다면, 대한민국에서 쓸 만한 인물이 어디 남아 있겠는가. 쓸 만한 인물은 그래도 포장을 해서 대한민국을 위해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 5월27일 오후, 기자와 만났던 한 전직 검찰총장이 했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라는 이 인사는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가끔 한숨을 내쉬며, ‘친정’인 검찰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정권이 교체되면 (전 정권을) 수사해야 하는 것이 검찰의 숙명이고 운명이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내가 (검찰을) 떠나보니까, 검찰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더라. 검찰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나 잘난 줄만 알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검사라는 직업 자체가 제일 나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뜻있게 살려고 한다면 검사를 해서는 안 된다.” 검찰이 ‘운명적으로’ 정치 편향성을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검찰이 위태롭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검찰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만만치 않은 후폭풍에 휩싸일 전망이다. 검찰 조직 가운데서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가 집중적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중수부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과 가족·측근들을 줄줄이 소환 조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30일 중수부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중수부의 무리한 수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노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직 대통령을 전방위로 압박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피의자(노 전 대통령)의 소명을 듣기도 전에 피의 사실을 언론에 공표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검찰은 지난 5월26일 한 대학생으로부터 피의 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피의 사실 공표로 고발당하기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사건의 수사 과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법조계의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은 20년 지기로 오랜 후원 관계였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딸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박 전 회장을 ‘삼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이다. 그런 ‘삼촌’이 돈을 주고, 집을 사주는 것을 ‘일반적 뇌물’로 볼 수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지난 3월 말부터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설이 흘러나왔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그 시점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중수부는 한 달 만에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했다. 그리고 다시 구속 기소냐 불구속 기소냐를 놓고도 차일피일 시간만 끌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수사와 구속 여부를 지연한 것을 두고 “중수부가 박 전 회장의 진술 외에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것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미국 뉴욕에 고가 아파트를 매입했다는 의혹까지 검찰청사 담장 밖으로 흘러나왔다. 검찰의 한 간부는 지난 5월28일 “중수부의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추려다 보니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의로 수사와 구속 여부 결정을 지연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민심은 다르다. 중수부의 과잉 수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대세이다. 그러면서 검찰총장 직할부대인 중수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 검찰 개혁이 거론될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나왔던 것이 바로 중수부 폐지였다. 중수부가 ‘정치 검찰’ ‘정권의 친위 부대’라는 오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DJ·노무현 정부 때도 폐지론 나와

중수부 폐지론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불거졌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중수부 폐지론이 처음으로 불거졌다. 당시 중수부를 없애는 대신 특수 수사 업무 부서만 두는 것으로 논의되었다. 하지만 검찰 내부의 반발이 거셌다. 게다가 청와대 내의 민정 파트에서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수부는 살아남았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더 강하게 중수부를 폐지하려고 시도했다. 거기에는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의 질긴 악연이 맞닿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80년대 초반부터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검찰과 맞섰고, 1987년에는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사인 규명을 파헤치다가 ‘제3자 개입 금지’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에 대한 불신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에도 드러났다. 인수위에서는 검찰 개혁 차원에서 중수부 폐지가 논의되었다. 그 대신 독립된 특별수사처를 설치하는 방안 등을 마련하려고 했다.

노무현 정부의 첫 법무부장관에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사시 11회나 후배인 강금실 변호사를 앉힌 것도 검찰의 뿌리 깊은 연공서열을 깨기 위한 조치였다. 대법원 산하에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두고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제한하려고도 했었다.

지난 2004년 중수부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가 마무리된 시점에는 청와대와 법무부를 중심으로 중수부 폐지론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먼저 내 목을 쳐라”라며 강하게 맞섰다. 논란 끝에 법무부에 감찰위원회를 신설해서 검찰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중수부 폐지론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론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책임에 따른 조치로는 사람이 바뀌는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이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바뀌게 되는 것을 최악의 상황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여권에서는 법무부와 검찰의 인적 쇄신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서 최근 대책안을 마련해 청와대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책안 가운데에는 검찰의 인적 쇄신안도 포함되었다는 전언이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다음에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우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전제한 다음 “무엇보다 박연차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야 인사 개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상에는 김경한 법무부장관과 임채진 검찰총장이 포함될 것이다. 이인규 중수부장과 우병우 중수1과장 등에 대해서는 오는 7월로 예정되어 있는 검찰 인사 때 자연스럽게 교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라고 전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오는 6월 중순께에는 마무리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적지 않다. 적어도 7월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박연차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단축된 셈이다. 

임채진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사표를 제출했으나 되돌려받았다. 하지만 야권과 국민 여론을 감안하면 조만간 사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총장과 동반 교체설이 제기되고 있는 김경한 장관 역시 사퇴의 기로에 서 있다.

민주당 “이번에는 확실히 짚고 넘어갈 것”

▲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지난 4월2일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서초동 대검 청사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 등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문제이다”라고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인사 조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여권에서는 검찰의 조직 개편과 관련해서는 아직 추진할 의사가 없는 듯하다. 당연히 중수부 폐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검찰의 인적 쇄신과 함께 조직 개편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월27일 “분명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며 인적 쇄신을 강하게 요구했다. 정대표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김경한 법무부장관, 임채진 검찰총장, 이인규 중수부장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다음에는 검찰의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 문제를 동시에 제기할 것이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하려 했던 ‘중수부 폐지’에 대해서는 이번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있는 중수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는 어떤 기구인가. 중수부는 전두환 정권 때인 지난 1981년 출범했으며, 대검 공안부와 함께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양대 축으로 불린다.

지난 2004년 12월 개정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중수부는 제1과와 제2과 그리고 첨단범죄수사과를 두고 있다. 중수부장 밑에는 수사기획관 한 명을 둘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중수부 제1·2과와 첨단범죄수사과는 모두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 사건을 수사한다.

특히 중수부장을 보좌하는 수사기획관의 업무가 폭넓다. 검찰총장이 정한 수사 업무를 기획하고 조정하며, 지도하고 교육하는 업무를 두루 관장한다. 여기에 유관 기관의 협조가 필요할 때에도 나선다.

또한, 공무원이나 공공 단체 및 국영 기업체의 직원, 변호사 등의 범죄 사건에 대한 검찰 사무를 지휘 감독하는 권한까지 부여되어 있다. 

이런 중수부가 처음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이었다. 중수부는 그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형 권력형 사건을 수사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사를 벌여 ‘정치 검찰’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영삼(YS) 대통령 시절,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으며, YS의 차남인 김현철씨도 중수부를 나오며 수갑을 찼다. 옷 로비 의혹 사건을 맡았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ㆍ김홍걸 씨 등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던 2003·04년에는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도 칼을 들이댔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현 대법관)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국민 검사’라는 애칭까지 붙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중수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에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과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의 뇌물 수수 사건 등 대형사건 등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이 났다. 여기에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씨의 대우그룹 구명 로비 의혹과 김승광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배임 수재 의혹 사건 등에서도 무죄 선고가 났다.

특히 한국석유공사와 강원랜드 등 공기업 비리 의혹 사건에서도 연전연패를 했다. 그러자 검찰 안팎에서는 “중수부가 무리하게 기소한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중수부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해 11월부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으나, 이 역시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지난 1월 이인규 중수부장이 부임하면서, 특수수사통인 ‘이인규 부장-홍만표 수사기획관-우병우 제1과장’ 진용이 갖추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들을 ‘환상의 트리오’라고 부르며 “뭔가 일을 낼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3월로 접어들면서 중수부의 칼날은 매서웠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인 이광재 의원과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 전·현 정권 인사들을 줄줄이 구속시켰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표적 수사’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중수부의 초기 수사 과정에서 구속된 이들 대부분이 구 여권 인사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또다시 ‘정치 보복’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리고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중수부가 또 한 번 존폐 기로에 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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