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초조·불안…“한 치 앞이 안 보인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8: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문 정국’ 이후 정치권 향방, 예측 불허 정부·여당, ‘제2 촛불 시위’ 일어날까 촉각 곤두

ⓒ연합뉴스

“앞으로 어마어마한 급변 상황이 닥칠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국정 방향에 대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야당 정치인의 목소리가 아니다. 물론 봉하마을에서 나오는 소리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평론가의 조언도 아니다. 한나라당 소속의 한 의원이 내놓은 6월 정국의 기상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정국은 그만큼 심각하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정부·여당은 할 말을 잃은 듯하고, 민주당 역시 정확한 방향을 못 잡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평론가들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국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역시 비판의 목소리는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집중되고 있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계속 오락가락했다. 청와대는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봉하마을 빈소를 직접 방문할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이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빈소에서 훼손되었음에도 재차 조화를 보냈다. 하지만 결국, 빈소 방문 계획을 접고, 29일 영결식 참석으로 대신했다. 5월27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비정치적이고 평화적이라는 전제 하에서 서울광장을 추모제 장소로 허용할 수 있다”라는 입장도 정부측에 의해 곧바로 거절되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일제 치하에서 사망한 독립투사의 장례식을 못하게 막는 일제 순사들도 아니고, (경찰들이) 덕수궁 앞에서 시민들을 가로막고 이게 도대체 뭐냐. 게다가 또, 서울경찰청장이라는 사람은 ‘(시민 조문객을) 전경 버스로 에워싸니 아늑하지 않으냐’는 소리나 하고. 정신 나간 정부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의 중도적이고 온건한 성향답지 않은 뜻밖의 가시돋힌 독설에 기자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또 다른 한 정치평론가 역시 “도대체 이 정부에는 철학도, 위기 관리 능력도, 리더십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인터뷰 요구에 하나같이 “상중인데…. 나중에 하자”라며 피해가기 일쑤이다.

현재 정부·여당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과연 ‘제2의 촛불 시위’로 번질 것이냐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조문 현장에  20대의 젊은 여성과 가족 단위의 30대 젊은 부부들이 많이 보였다”라는 말로 여권의 우려스러운 분위기를 대변했다.

조기 개각설도 나돌아

이명박 정부가 ‘촛불’과 ‘광장’에 대해 예민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난해 6월의 촛불 시위 때문이었다.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대통령이 처음부터 강경 기조로 나간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정국을 얼어붙게 한 계기는 광우병 파동으로 촉발된 지난해 촛불 시위였다. 집권한 지 6개월도 안 된 정부에 대해 ‘탄핵’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는 것을 지켜본 이대통령은 당시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때부터 눈빛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나왔다”라고 전했다. 장례 기간에 만난 정보 기관의 한 관계자 역시 “솔직히 지금의 조문객 인파가 촛불 시위로 확산될 것인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야당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 것이 뻔하다. 지난해 촛불 사태 때 정권 재탈환 얘기까지 등장하지 않았나”라고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정치평론가들도 이런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해 여름과 같은 위기 사태를 또 맞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이 모두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이 현재 느끼고 있는 박탈감과 슬픔을 현 정부가 제대로 달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힘들다”라고 말한다. 정치컨설팅회사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문제는 현재 국민의 분노로 분출되는 이 에너지가 수렴될 통로가 전혀 없다는 데에 있다.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지금의 민주당도 이를 흡수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이런 분노의 표출이 자칫 제도권을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진단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고민도 깊다. 집권 2년차인 지금 강도 높은 드라이브로 개혁 밑그림을 완성하지 않으면 향후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또한, 섣불리 국정의 기조를 바꿨다가는 기존 보수층의 지지 기반마저 잃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좀더 가시적인 정국 전환 카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각과 대화 정치 재개 등이다.

정치권에서는 당초 6월 정기국회가 끝난 이후인 7월 개각설이 나돌았다. 이것이 예정보다 앞당겨지거나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조심스럽게 몇몇 각료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현 정부 첫 내각에 발탁된 인사들 중 대체적으로 강경한 이미지를 대변해왔던 인물들이다. 김경한 법무부장관, 유명환 외교부장관유인촌 문화부장관 등이다. 이상희 국방부장관은 최근 북한 사태에 따른 변수로 다소 유동적이다.

비난 여론이 집중되고 있는 사정 기관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은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낳고 있다. 공석 중인 국세청장 역시 외부 인사로 채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미 개각 카드로는 수습이 어렵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신교수는 “개각은 역대 정부가 항상 민심 수습책으로 써왔던 카드인데, 문제는 지금의 상황은 그것이 전혀 안 통한다는 데에 있다. 잘못하면 오히려 역풍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은 가시적인 뭔가를 내놓을 상황이 아니라 국민의 진정한 요구가 무엇인지를 좀더 신중하고 면밀하게 살피는 것이 더 급선무이다”라고 진단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 역시 “단순히 몇 사람 바꾸는 것으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듯하다. 그보다는 진짜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대통령이 이제 본격적으로 여의도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여야 영수회담 같은 민주당과의 적극적인 대화 시도도 하고, ‘친박(친박근혜)계’ 끌어안기에도 직접 나서야 한다는 요구이다. 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40%의 부동층 껴안아야 정국 안정 가능”

▲ 5월29일 경기도 수원 연화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화장되는 동안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이해찬 전 총리 등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이미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현 정부가 책임이 있다고 단정하며 ‘노무현 재평가’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천명했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분위기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라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런 반발은 이른바 ‘친노’ 세력에서도 감지된다.(22쪽 상자 기사 참조) 그런 점을 의식해서라도 민주당은 6월 정국에서 더욱 정부와 여당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와의 화합 가능성에 대해서도 “오히려 더 악화될 것이다”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신교수는 “사실상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계의 화해는 물 건너갔다. 어떤 상태로든 둘 다 양보가 안 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를 같은 처지에 놓고 비유하는 말로 이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대통령의 대표적 정적이라 하면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대통령은 이들을 끌어안는 포용 정치를 펼쳤어야 했는데, 그 반대로 갔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했지만 계속 목소리를 냈다. 반대 목소리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대통령과 주류측이 갖는 경계심은 대단했다. 그래서 이른바 ‘노무현 죽이기’라는 얘기까지 등장할 정도로 사정 정국이 시작된 것 아닌가. 만약에 박 전 대표가 똑같이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것은 상상에 맡긴다. 박 전 대표가 일절 나서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컨설팅회사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실책하고 있는 것이 있다. 자칫 원래의 보수 지지층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인데, 조문객들은 야당 지지자들이 결코 아니다. 현재 여와 야는 각각 20% 정도의 취약한 지지 기반만 갖고 있다. 빈소에 몰린 조문객들은 현재 40%가 넘는 부동층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부동층을 껴안아야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또 머뭇거리면 국민이 절대 가만있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지난해 촛불 시위 때처럼 떠밀려서라도 정부가 또 허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이왕 할 것이라면 떠밀려서 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제발 먼저 나서서 했으면 좋겠다”라고 요구했다.

신교수는 “현 정부는 장·단기로 나눠서 대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여당 기능을 활성화하고 정무 기능을 빨리 복원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무슨 문제만 터지면 청와대와 시민이 바로 부딪치고 싸우는 상황은 더 이상 안 된다. 중간에 완충 지대로 여당의 기능을 키워서 여론 전달 통로 구실을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국민의 정서를 다독이면서 같이 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헌 대표는 “최고의 수습책은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정 운영에서 그동안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국정 통치자로서의 사과를 말한다. 이미 지난 4·29 재·보선에서 이런 민심이 드러났음에도 ‘일부 지역 선거일뿐이다’라며 애써 평가 절하한 것이 점점 더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라고 밝혔다.


▲ 5월23일 친노 인사들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봉하마을로 옮기고 있다. ⓒ공동취재단
“빈소에서 지난 5년간 함께했던 분들을 오랜만에 모두 만났다. 슬픔 속에서도 다 같이 손을 붙잡으면서 ‘그동안 우리가 왜 이렇게 서로 멀리했나’ 하고 서로 자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우리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시느라고 그런 선택을 하신 듯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던 한 인사는 봉하마을 빈소를 다녀온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이른바 ‘친노’ 세력이 모두 모였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유인태 전 정무수석, 유시민·김두관 전 장관,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등 원로와 소장파들이 모처럼 자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한 원로 인사는 “절대 다투지 말자. 그리고 너무 나서지도 말자.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라고 당부했다는 전언이다.

이 인사의 당부는 의미심장하다. 이미 정치권 주변에서 다시 결집된 친노 세력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친노 세력을 껴안아서 정통 야당인 민주당을 복원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독자적인 신당 창당설이 등장하고 있다. 민주당과 함께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우상호 전 의원은 전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에 실제 ‘친노’ 세력의 정당화를 추진하던 준비 그룹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런 시도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본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구 민주계 세력부터 영남 기반의 친노 직계까지 모두 화합의 흐름에 왔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반면, ‘참평포럼’ 출신의 한 인사는 “앞으로 친노 세력은 참여정부 시절 각료 출신들과 청와대 참모들이 중심이 되어 결집할 것으로 본다. 여기에 노사모도 동참하게 될 듯하다. 일부 원로 중진급들은 몰라도 소장파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 정서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함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정치컨설팅회사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 역시 “민주당이 지금까지 정국의 중요한 순간마다 노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친노가 그냥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도 지난 일을 ‘과오’로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인정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렇게 본다면 친노 세력이 별도로 제2의 개혁 야당을 표방하고 나설 가능성도 내재해 있다”라고 진단했다.

친노 직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5월27일 전화 인터뷰에서 “(친노 세력들이) 연석회의를 하자는 등의 여러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지만 구체적인 결정은 영결식이 끝나야 나올 것 같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어떤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그 여지를 남겨 놓았다.

또 하나의 관심은 향후 ‘친노 세력’을 결집할 새로운 구심점이 누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인사는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이다. 이들은 지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고, 이후 노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운 민주당에 반발해서 탈당하기도 했다.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참평포럼 출신의 한 인사는 “이 전 총리가 좌장격인 것은 맞지만 국민에게 너무 강성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고, 유 전 장관은 아직 기반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 두 인사 모두 정치색이 너무 짙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통합형 인사로 한명숙 전 총리 같은 분이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장례위원장을 맡아 친노 세력들을 대표했다.

빈소 현장에서는 정동영 의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는 전언이다. 참평포럼 출신의 한 인사는 빈소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로부터 들은 비화를 기자에게 이렇게 전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은 DY(정동영 의원)를 ‘차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2004년 총선 때도 공천 등 모든 권한을 DY에게 주었다. 그토록 원하던 통일부장관도 임명했고. 주변 참모들이 말릴 정도였지만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려 했다. DY도 그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DY는 노 전 대통령을 버리는 전략을 택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친노 세력의 좌장 자리에는 확고히 DY가 서 있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