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흔든‘바보’의 부활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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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후에 또 하나의 신드롬을 남겼다. 전국 각지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무엇이 그들의 발길을 그곳으로 이끈 것일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국 기상도를 짚어보았다.

5월29일 경기도 수원의 화장장인 연화장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생은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빈농의 아들, 좌익 인사의 딸과 결혼, 변호사, 구속, 국회의원, 대통령 출마, 후보 단일화, 대통령 당선….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것은 그 절정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가 한 시대를 온몸으로 웅변했고 마지막까지 시대의 가치를 부여잡고자 했던 정치인이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면서 ‘노무현 시대’는 막을 내리는가 싶었다. 그가 강조했던 ‘도덕’ ‘개혁성’은 부메랑이 되어 그의 목을 겨누었다. 극적인 반전이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번민과 고통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천지에 진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던졌다. 놀랍고도 비장한 선택이었다. 그러자 그를 추모하는 목소리가 천하에 울리는,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이로써 그는 역사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더불어 그를 따랐던 세력들도 재기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사람들은 따가운 햇볕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5월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마치고 서울역으로 이동하는 운구차 곁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어떤 이는 눈물을 머금었고, 어떤 이는 이를 앙다물었으며 어떤 이는 “미안해요! 대통령님”이라고 절규했다. 노란색 풍선과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운구차를 향해 날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남녀노소가 섞여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서거 당일인 5월23일부터 29일 새벽까지 전국 각지에서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 수만 100만명, 전국적으로는 4백만명에 달했다. 이날 영결식장을 찾은 인파만 50만명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조차 “예상치 못했던 결과이다. 우리도 놀랐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노무현의 ‘부활’이었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민심 분출된 것”

▲ 5월29일 영결식 직후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이 영정을 앞세우고 서울역 쪽으로 향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보수 진영의 전략가로 통하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극적인 삶을 살다가 극적으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에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우리와 같은 사람,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 우리와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보면서 동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문 앞 분향소에 여러 번 가보았는데 특히 젊은 세대들의 경우 고인과 정서적인 공감대를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종교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노무현 신화가 하나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은 그를 일종의 순교자로 보고 있다.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애널리스트는 “현 정부의 리더십이나 권력 기관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적인 민심이 분출된 것이다. 다른 사람을 겪어보고 나서야 과거에 자신이 노 전 대통령을 욕하는 대열에 합류했었다는 것에 대한 자책과 미안함이 조문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라고 보았다. 시민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인명진 상임공동대표는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에 조문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옛말에 제 설움에 운다는 말이 있다.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해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저렇게 울까? 이것은 다른 형태의 촛불이다. 정권이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 국민이 기대하는 것보다도 더 나아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사회 분석가는 “노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탈권위는 국민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던 권력에 대한 콤플렉스를 씻어준 측면이 있다. 직설적인 화법 등은 재임 당시에는 ‘품위 없음’으로 비쳤지만 퇴임 이후 시민들과 어울리는 소탈한 모습을 보면서 ‘시민의 눈높이로 내려온 권력자’라는 인식으로 승화되었다. 평소 노 전 대통령을 비판했던 이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미안함을 느끼며 ‘과거를 합리화할 명분’을 찾기 위해 분향소를 찾았다”라고 보았다.

노 전 대통령의 ‘부활’을 계기로 이른바 ‘가치’의 문제가 전면에 부상하며 ‘노무현 정신’이라는 화두가 사회에 던져졌다는 시각도 있다. ‘경제’ ‘실용’ ‘결과’ ‘업적’ ‘속도’로 표현되는 현 정권의 국정 기조와 달리 ‘인권’ ‘민주주의’ ‘평화’ 등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며 힘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윤여준 전 장관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그동안 자유는 중시되었는데 상대적으로 평등이라는 가치를 소홀히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권의 한 전략가는 “우리 사회의 가치와 노선을 둘러싼 싸움이 본격화할 것이다. 여권은 이런 측면에서 취약하다. 현재 여권의 주류를 형성하는 그룹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본 인물이 많지 않다. 반면, 이른바 친노무현 인사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무장되어 있다”라고 분석했다.

향후의 정치 일정은 ‘노무현 정신과 노무현 세력의 부활’이 한결 용이하도록 짜여 있다. 당장 6월에는 6·10 항쟁 기념일이 있다. 하투도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6·15 기념일도 있다. 10월에는 재·보선이 있고, 내년 5월 지방선거일 1주일 전인 5월23일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이다. 현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은 계기마다 ‘반MB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중간 중간에는 추모 열풍을 등에 업고 ‘노무현 기념 사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명운이 걸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부의 친박근혜 그룹과 외부의 민주당 그리고 친노무현 그룹이라는 삼각 파도에 직면했다.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 잡는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여권뿐 아니라 야권에도 숙제 남겨

▲ ‘시민 분향소’였던 덕수궁 대한문 주변에는 추모객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쓴 글귀들이 빼곡하다.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해 촛불 시위와 상황을 비교하는 이들이 있으나 그때보다 더 엄중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여권의 한 전략가는 “현 정권에 대한 정서적인 이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심리적이고 구조적인 민심 이반이 시작되었다. 지난해 촛불 때와 달리 이번에는 반대 세력으로 조직화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권력 기관들은 기가 꺾였다. 6월 국회에서 여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려고 했던 법들을 통과시키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대통령이 던진 의제들이 국회에서 막힌다면 식물 정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다 10월 재·보선에서 패한다면 주저앉을 위험성이 있다”라고 걱정했다.

이 인사는 “내각 총사퇴와 국정 기조의 전환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권 핵심부에 이처럼 과감하게 판을 바꿔야 한다고 건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조언했다.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내기도 한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청와대에 있으면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힘의 원천이 국민이라는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라고 말했다. 정치평론가인 유창선 박사는 “영결식 전후로 보인 태도로 볼 때 이대통령이 획기적인 정국 전환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노무현의 부활’은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에도 숙제를 던졌다. 민주당은 강력한 리더십을 확보해 현 정권에 반대하는 여러 세력을 통합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고,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노무현 현상’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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