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하기 전에 견제구가 너무 많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6.0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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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선수협회의 노조 설립 추진 싸고 논란 분분

▲ 4월28일 프로야구선수협회 손민한 회장(왼쪽)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선수 노조의 설립은 아직 시기상조인 것일까, 아니면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의 첫발을 내디딘 것일까. 선수 노조의 출범을 둘러싸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와 8개 구단 및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대립이 거세지고 있다. 언론과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선수 노조를 반대하는 쪽은 WBC로 높아진 야구의 열기가 식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참 야구 발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시즌 중에 선수 노조에 관한 이야기를 꼭 꺼내야 했느냐는 것이다. 반면, 찬성하는 측은 선수 노조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권리의 측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협이 소속 선수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을 거친 다음 노조의 설립 여부는 그들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높아진 야구 열기 식을 수도 있어

일단 선수 노조에 대한 선수들의 총의를 묻겠다는 선수협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선수협이 6월1일 열기로 했던 임시총회가 무산된 것이다. 삼성과 LG 선수단이 노조 설립이 시기상조라는 등의 이유로 반대를 표명했고, 뒤이어 다른 구단들의 선수단도 다 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불참 의사를 통보하면서 총회 소집이 어려워졌다. 선수협은 총회를 대신해 각 구단의 선수협 이사와 주장이 참여하는 대표자 모임을 열기로 했으나 이마저 삼성, LG, 두산 등 3개 구단의 선수 대표가 참석하지 않으면서 회의가 사실상 무산되었다. 선수협의 권시형 사무총장은 “대표단의 간담회에조차 나오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두산의 선수 대표는 참석할 예정이었다가 갑자기 불참하겠다고 알려왔다. 불참자들에게 참석할 수 있는 일자를 다시 잡아달라고 요구해서 대표자 회의를 다시 할 계획이다. 그 자리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할지, 개최한다면 무슨 내용을 논의할지를 정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산의 김승영 단장은 “구단이 압력을 넣은 것은 전혀 없다. 찬성을 철회했던 본인들 판단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원정 일정으로 참석하기 어려웠던 점도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노조 설립에 반대한다면 회의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 될 일이다. 여기에 구단의 입김이 작용했다면 더 큰 문제이다. 선수협의 대표자회의는 선수들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협의체이기 때문이다. 한 야구계 인사는 “그룹 내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을 비롯해 각 구단이 갖가지 방법으로 선수들을 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단을 해체하거나, 선수를 내보내겠다는 압박을 가하기도 하고, 선수들에게 발언력이 있는 고참 선수들에게 고액 연봉이나 은퇴 후 코치 연수 등을 제시하기도 한다. 구단에서 내몰리면 갈 곳이 없는 선수들이 거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28일 노조 설립을 선언한 선수협은 당초 각 구단별로 노조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시행했다. 선수단을 모아놓고 의견을 나눈 삼성과 1군 선수만이 투표에 참여한 LG를 제외한 두산, SK, 기아, 한화, 히어로즈 등은 1,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권시형 사무총장은 “찬반이 엇갈렸던 LG를 제외하고는 모두 70% 이상이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구단의 반대에 부담을 느낀 선수단들이 노조 참여를 철회하면서 4백63명의 프로 등록 선수가 전부 모인 상태에서 무기명으로 총의를 모아보자는 뜻에서 임시총회를 기획한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선수 노조 설립에 구단과 KBO의 반대가 유일한 걸림돌인 것은 아니다. 10년 전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던 선수협 설립 과정과는 달리 선수 노조를 둘러싼 여론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인 상황에 선수 노조 설립 논의가 불거져나왔기 때문이다. 경기에 집중하기에도 바쁜 선수들이 노조 설립에 신경 쓸 겨를이 있겠냐는 지적이 나왔다. 올 시즌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손민한 선수가 선수협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도 일부 팬들에게는 불만이었다. 구단측은 노조 설립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각 구단이 매년 10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고, 히어로즈 구단 사태에서 보듯 8개 구단 유지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르다는 것이다. 일부는 현재 야구계의 우선 과제는 돔구장 건설을 위시한 야구 인프라 확충이므로 노조 문제는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수협이 반발을 예상하고도 시즌 중에 선수 노조 카드를 내민 이유는 무엇일까. 선수협측은 선수 노조에 대한 논의를 꺼낼 시기가 지금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선수협측 “구단과 KBO가 대화 제의 거절”

▲ ‘프로야구선수 노동조합 설립 추진위원회 1차 회의’ 후 각 구단 대표 선수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민한 선수협회장은 이상훈 전 LG 투수와 가진 인터뷰에서 “왜 하필 지금이냐는 시각이 많지만 8~9년 동안의 경험에서 노조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수협이 생겼어도 구단, KBO와 대화를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선수협측에 따르면 구단과 KBO는 지난 시즌 중 처음 제안한 ‘프로야구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안’ 협의를 위한 대화 제의를 번번이 거절했다. 아시아 시리즈까지 모두 끝마친 지난해 11월25일 선수협과 KBO의 대표 각 4명이 모여 대화를 가졌지만 선수협의 요청안에 대한 KBO의 답변은 없었다. 권시형 사무총장은 “제안한 내용에 대해 답변을 받는 과정을 반복하며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정상적인 협상이다. KBO의 대응은 선수협을 소중한 파트너로 인정하며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을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노조 설립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라고 말했다.

선수 노조에 대한 논란은 이제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선수 노조 문제는 쉽게 가라앉거나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선수협은 6월12일 개최하는 프로야구 선수의 노동자성에 대한 토론회를 시작으로 선수 노조 설립 추진을 지속할 예정이다. 구단과 KBO 입장에서 선수 노조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이다. 반대 의사를 쉽게 굽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수협과 구단 및 KBO의 대립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야구계나 야구팬들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대화를 단절하기보다 공론화시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야구팬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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