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이제는 생존 문제다
  • 김규태 (과학커뮤니케이션 그룹 ‘싸이컴’ 대표 집필 ()
  • 승인 2009.06.0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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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한파 등 피해도 ‘실제 상황’…원인·해결책 찾는 데 다양하고도 총체적인 시각 필요

▲ 6월4일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어린이들이 ‘뉴욕자연사박물관 기후 변화 체험전 I Love 지구’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대해서는 다들 한 번씩 들어 보았을 것이다. ‘공부 좀 했다’고 하는 30대 후반 이상에서는 그 책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침묵의 봄>이 나오면 ‘환경’에 반사적으로 동그라미를 치게끔 훈련받았다.

요즘 10대와 20대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통계적으로 주장하기는 무리지만, 적어도 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많은 수의 10~20대는 ‘환경’ 문제가 입시나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지구 온난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내용을 외우는 것을 넘어서 온난화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 ‘머리’가 아닌 ‘피부’로 느낀다는 것이다. 아버지 세대가 군 복무하던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질병이 다시 유행하고, 해외 토픽을 보면 SF 및 재난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전염병 경보’가 매우 번번하게 등장한다. 민방위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으로 환경 문제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온난화는 국지적(local)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 문제이며, 환경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사람들의 상식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이 있다. ‘석탄·석유의 과다 사용→탄소 과다 배출→지구 온도 상승→빙하가 녹음→해수면 상승→각종 재난’.

결론이 ‘각종 재난’이라고 하니 모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정말로 지구 온난화는 다양한 결과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눈앞에 다가온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좀더 차분하게 결과에 대해 예측할 필요가 있다.

▒ 질병의 계절성 패턴까지 바꿔놓다

해마다 매년 3억명 이상이 걸리고 100여 만명이 사망하는 질병이 있다. 바로 말라리아이다. 말라리아에도 종류가 많지만 가장 증세가 심각한 것은 ‘열대성 원충’에 의한 말라리아라고 학계에서는 말한다. 이는 열대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아프리카는 말라리아 때문에 많은 피해를 받았다. 하지만 아프리카 내에서도 해발 1천6백24m인 케냐의 나이로비, 1천4백79m인 짐바브웨의 하라레 같이 고위도 지역은 서늘한 기온 덕분에 모기가 서식하지 못하는 ‘말라리아 안전 지대’에 속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프리카 고지대 역시 ‘안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기온이 전반적으로 올라가자 모기가 이곳까지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질병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를 이같은 현상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다.

이외에도 말라리아 퇴치 작업 이후에 안전 지역에 편입되었던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도 말라리아로 고통을 겪고 있다. 온난화로 인해 남미 지역의 건기, 우기의 형태가 바뀌면서 물웅덩이가 증가해 모기가 번식하기 좋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는 고인 물에서만 살 수 있다).

말라리아 이외에도 곤충이 매개하는 황열병, 뎅기열, 쯔쯔가무시병 등과 같이 이미 퇴치되었던 질병들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도 지구 온난화 때문으로 학자들은 설명한다. 또한, 전체적으로 더워지다 보니 겨울에도 식중독이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다. 지구 온난화가 질병의 계절성 패턴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 지구 온난화는 말라리아 안전 지대까지 안전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www.exploratorium.edu/climate

 폭염 등 직접적인 ‘습격’에 무방비로 당하다

지구 온난화가 가져온 질병에 집중하다 보면 간과하게 되는 것이 있다. 온난화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3년 프랑스 파리는 ‘폭염의 도시’로 변했다. 8월 평균 기온이 섭씨 웬만하면 30℃를 넘지 않았던 파리가 40℃에 가깝게 올라 펄펄 끓어버렸다. 이때 15일간 프랑스 전국에서 약 1만1천명이 사망했고, 유럽 전체로 보면 3만5천명이 사망했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평년보다 기온이 4~5℃ 높아지면서 사람의 건강 체계가 붕괴되었기 때문으로 학자들은 설명했다. 인간은 주변 기온에 상관없이 일정 체온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급작스런 기온의 변화는 체온 조절 시스템에 과부하를 주게 되어 저항력이 약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열적 순응 현상’이 더디게 발생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소수의 인원이 더위 때문에 죽는다면 개인적 또는 비질병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지역에서 이같은 일이 생기는 것은 온난화의 직접적인 공격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 한파 등 이상 저온 현상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학자들은 지구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인식된 이후에 이상 한파 등 저온 현상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SF 재난 영화인 <투모로우>에는 이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오는데, 태양 에너지는 골고루 내리쬐는 것이 아니라 적도에는 더 많이, 극지방은 더 적게 도달한다. 지구상의 70%는 물로 되어 있기에, 대류 현상에 의해 뜨거워진 바닷물은 난류가 되어 극지방으로 올라가고, 차갑게 식은 바닷물은 한류가 되어 되돌아오는 해류 시스템을 통해 지구상의 기온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어왔다. 지구 온난화 현상은 전반적인 기온을 상승시켜 지금껏 안정되어 왔던 해류 시스템을 교란시킬 수 있다. 해류 시스템이 교란되게 되면 열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이는 결국, 더운 지역은 더 덥게, 추운 지역은 더 춥게 만드는 ‘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통해 오히려 이상 한파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 온난화 ‘주범’이 호흡기 질환자 양산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최대 원인으로 ‘대기 오염’이 꼽힌다. 대기 오염은 인류가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과도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은 온난화와 함께 인간의 호흡기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많이 배출되면, 이산화탄소도 많이 나오지만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황이나 질소산화물도 동시에 발생된다. 실제로 통계청 2007년 자료를 보면, 10년 전에 비해 폐렴 환자가 25% 증가했고, 폐암 사망률도 늘었다. 페니실린 개발 이후 극복 가능한 질환이었던 호흡기 질환이 다시 무서운 병마로 변신한 것이다. 이는 온난화의 직접 효과는 아니지만, 온난화의 숨겨진 형제로 온난화와 짝을 이루며 인류를 괴롭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온난화는 간단한 현상이 아니다. 기상학, 의학, 생물학뿐 아니라 사회학, 철학, 문학, 경영학, 공학 등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구 온난화는 ‘위험 현상’이며 이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색다른 원인 분석, 창의적 해결책 등이 나와야 한다. 레이텔 카슨의 <침묵의 봄>이 상식에서 실존의 문제가 되었듯, 지구 온난화에 대한 접근도 학문 간 경계를 넘어서는 총체적인 시각이 필요할 때라는 데 전문가들은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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