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영토’ 찾아 어디든 간다
  • 조남준 편집기획위원 ()
  • 승인 2009.06.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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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종 한국자원광물공사 사장, 취임 후 니제르와 우라늄 판매권 양도 MOU 체결 등 성과

대한민국 영토를 넓히는 사람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전통적 의미의 영토 확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해외의 광구(鑛區) 확보를 광의의 영토 확장이라고 해석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한국자원광물공사 김신종 사장(59·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이다. 아직 취임한 지 10개월밖에 되지 않아 가시적인 성과는 별로 없지만, 그가 외국과 맺은 MOU(양해각서·가계약)대로 다 따진다면 이미 수백 ㎢의 땅을 확보해놓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7월30일 취임한 김사장이 지난 5월 말까지 10개월간 15개국을 18회 방문해 2개월 이상을 현지에서 머무르며 이룩한 성과이다.

가는 곳이 가까운 데도 아니다. 주로 아프리카, 남미 등 지구를 거의 한 바퀴나 반 바퀴 돌아야 하는 머나먼 오지 국가들이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따라 남미 볼리비아를 다녀온 데 이어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순방을 수행했고, 그곳에서 곧바로 아프리카의 콩고,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날아갔다. 구리, 우라늄, 망간 등 모두 중요한 전략 광물을 생산하는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를 방문하려면 비포장 도로와 고산지대를 오르내리는 고역은 아무것도 아니다. 난생 처음으로 황열 예방접종도 맞아야 하고 말라리아 예방약도 먹어야 한다. 세계적인 자원 개발 회사들에 비해 자본과 기술에서 밀리는 만큼 그런 회사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나라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무관 시절 심해저광 개발 ‘한몫’…광물 자주 개발률 42% 목표

벤처기업가처럼 발로 뛰어다닌 결과, 짧은 기간이지만 김사장은 만만치 않은 성과를 올렸다. 러시아 국영원자력공사(ARMZ)와의 우라늄 사업 협력을 비롯해 호주, 마다가스카르, 페루, 인도네시아, 니제르, 볼리비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13건의 MOU를 체결했다. 현재 가장 가시적 성과를 보이는 것은 마다가스카르 니켈 광산과 볼리비아 동광(銅鑛) 개발 사업이다. 캐나다, 일본과 3국 합작으로 40억 달러 이상 투자하는 니켈 광산 사업은 현지의 비정상적 정권 교체로 인한 잡음이 일고 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김사장은 내다보고 있다. 볼리비아의 경우, 광물자원공사와 LS니꼬동제련이 50 대 50 비율로 2억 달러를 투자해, 생산량 전량을 한국에 들여오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4월 현재, 상하 양원의 비준을 받아 현지법인을 개설한 상태이다.

특히 지난 3월 니제르와 체결한 우라늄 판매권 양도 MOU는 의미 있는 결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6대 원자력발전 국가로 꼽히면서도 자주개발률(직접 투자하거나 개발해서 수입하는 비율) 0%인 우라늄을 연간 4백t 들여올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이는 원자력발전이 시작된 지 31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국내 수요의 10%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중요시되는 만큼 앞으로 원자력발전 비중을 현재 36%에서 59%까지 높인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따라서 김사장은 니제르 외에도, 러시아, 호주, 페루 등과 맺은 우라늄 사업 협력, 광산 공동 탐사 등의 MOU를 본 계약으로 성사시키기 위해 현지를 자주 찾을 생각이라고 했다.

김신종 사장의 영토 확장 경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초기에 이미 남한 넓이의 75%에 달하는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는 데 초석을 놓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서울대를 다니다 시위로 퇴학당한 후, 다시 시험을 쳐서 고려대에 들어간 그는 1978년 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동력자원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82년 4월, 국제해양법 회의에서 공해(公海)상의 심해저광(深海底鑛) 개발 규약이 가결되는 것을 보고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해 사무관에 불과한 처지에서 당시 광업진흥공사(광물자원공사의 전신) 김복동 사장(작고)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심해저는 수심 5천m 이하의 바다 밑을 말하는데, 니켈, 망간, 코발트, 구리 등 특수 금속들이 덩어리째 가라앉아 있는 자원의 보고(寶庫)이다.

당시 김사무관의 요청 내용은 우리나라가 15만㎢에 이르는 심해저 광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기간(1985년 1월1일)까지 3천만 달러를 투자해 정해진 해역을 탐사해야 하는데, 광업진흥공사가 앞장서서 민간 기업과 컨소시엄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노력이 계기가 되어 정부는 1983년부터 심해저 망간 단괴(團塊)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92년부터 유엔에서 할당받은 ‘클라리온 클리퍼톤’ 해역에서 해양연구원과 지질연구원으로 하여금 공동으로 광물 탐사를 시행케 하고, 광업진흥공사를 정부 대행 사업 감리·감독 기관으로 지정해 사업을 수행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1994년 8월3일 유엔으로부터 하와이 동남방 약 2천km 거리에 위치한 15만㎢를 광구로 승인을 받았으며, 정밀 탐사를 거쳐 2002년 8월 최종적으로 개발권을 획득한 면적이 남한 넓이의 75%인 7만5천㎢이다. 그의 힘만으로 성사된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사업 초기에 그의 노력은 큰 역할을 했다.

지난 6월5일로 창립 42주년을 맞은 광물자원공사의 총수 김신종 사장의 비전은 광물자원공사를 세계 20대 광물 메이저로 키우는 것이다.

취임한 지 5개월 만인 올 1월1일 공사법 개정을 통해 법정자본금을 6천억원에서 2조원으로 확대하고 회사명을 국내용 한국광업진흥공사에서 해외용 한국광물자원공사로 바꾼 그는 유망 해외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2020년까지 자주개발률을 23.1%에서 42%로, 자산 규모를 1조원에서 9조원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문제는 사람과 돈이다. 경영지원 인력을 감축해 우라늄, 구리 등 핵심 해외 사업 파트에 배치했고, 직접 각 대학을 방문해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한 결과, 올해 입사한 25명의 신입사원은 대부분 회계사, 세무사, 경영학석사, 자원개발 전문가들로 채워졌다. 외부 차입 최소화를 통한 재무 건전화를 위해 정부와 국회를 움직여 추가자본금 납입용으로 1천억원의 추경예산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세계적 경제 위기인 지금이 자원 확보의 최적기이다. 저가인 지금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전략적 광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1~2년 안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김신종 사장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 관련 정부 투자 기관의 협력, 민간 기업의 적극적 참여 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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