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돋친 입들의 거친 소모전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6.0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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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부른 김동길·진중권의 독설들 / ‘노무현 서거’ 싸고 비생산적 이념 공방 불러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연합뉴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 역시 온 국민이 지혜롭게 받아들이면 슬픔을 딛고 화해와 통합의 길로 승화시켜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보수와 진보는 다시 양 극단에서서 자신들의 생각과 말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해댔다. 언제까지 이렇게 답답하고 비생산적인 소모전으로 국론을 갈라놓고 국민들을 짜증나게 할 것인가? 양 진영에서 날을 세웠던 대표적인 논객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발언을 정리해서 소개한다.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 2009년 4월15일 “먹었으면 먹었다고 말을 해야죠” >

과거에도 뇌물을 먹고 검찰에 끌려가는 공직자치고, 먹은 사실을 시인하고 수감되는 자는 없고 대개는 ‘나 동전 한 푼 먹은 것 없다’라고 버티다가 검사의 조사를 받는 가운데 증거가 드러나면 하는 수없이 ‘먹었다’ 하니 국민의 입장에서는 보기가 민망하다. 처음부터 검찰관에게 ‘네, 먹기는 먹었습니다마는 많이 먹지는 않았다”라고 겸손하게 한마디 하면 덜 미울 것 같은데,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니 더 밉고 더 얄밉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인류 역사의 어느 때에나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진실인데 진실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 구실 못하게 마련이다. 그런 자가 공직의 높은 자리에 앉으면 많은 백성이 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씨는 정말 딜레마에 빠졌다. 그가 5년 동안 저지른 일들은 다음의 정권들이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과오는 바로잡을 길이 없으니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서 복역하는 수밖에는 없겠다.

< 2009년 5월30일 “정권 교체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

자살로 생을 마감한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민장은 가히 ‘세기의 장례식’이라고 할 만큼 역사에 남을 거창한 장례식이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암살되어 화장으로 국장이 치러졌을 때에도 우리나라의 이번 국민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국의 모택동 주석이나 북의 김일성 주석의 장례식도 2009년 5월29일의 대한민국 국민장을 능가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서울에서만 해도 40만~50만의 인파가 애도의 뜻을 품고 서울광장에, 그리고 수원 연화장으로 가는 연도에 운집했다고 하니 전국적으로는 추모객의 수가 능히 100만은 넘었을 것으로 믿는다. 방송 3사가 총동원되어 노무현씨를 하나의 ‘순교자’로 ‘희생양’으로 부각시키는 일에 성공했다. 이 장례식이 끝난 뒤에는 그 어느 누구도 노무현씨를 비판할 수는 없게 되었다. 목숨을 걸고 한마디 하는 사람은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씨는 ‘순교자’도 아니고 ‘희생양’도 아니고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다 누렸고, 저승으로 가는 길도 본인이 선택한 것일 뿐, 누구의 강요나 권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 2009년 6월1일 ‘“이게 뭡니까”라는 말이 저절로’ >

정부측에서 유가족에게 ‘가족장’을 권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도 ‘가족장’으로 모셨는데 결코 도리에 어긋난 대우는 아니였다. ‘국민장’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었다 해도 자살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국민장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답을 해도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서 국민장으로 모신 독립투사·애국자들 중에 피살자는 있었어도 자살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결식장에서 대통령 내외가 헌화하러 나가는데 소리 지르며 덤벼들던 양복 입은 자가 어느 당에 소속한 국회의원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저런 인간도 있는가. 무슨 개인적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나, 경호원들이 즉각 달려들어 말리지 않았으면 1주일 간격으로 국민장을 또 한 번 치렀어야 하는 나라가 될 뻔했다. 그런 무례한 자는 마땅히 당에서, 국회에서 추방되고, 사법 기관이 중형에 처해야 옳은 것 아닌가. 나라의 꼴이 이게 뭔가.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연합뉴스
< 2009년 5월23일 진보신당 게시판 >


 ‘[근조] 노무현 대통령의 추억’ 

그에 대해 내가 마지막으로 공식적 언급을 한 것은 2007년 8월, 그러니까 그가 퇴임하기 반 년 전에 서울신문에 기고했던 글이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다들 노무현 비난에 정신이 없던 시절, 그 일방적 매도의 분위기가 너무 심하다 싶어 그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고, 그것은 그토록 투닥거리고 싸웠던 정적(?)에게 보내는 나의 마지막 인사였다. 그가 도덕적으로 흠집을 남긴 것은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 전과 14범도 멀쩡히 대통령 하고, 쿠데타로 헌정 파괴하고 수천억 검은 돈 챙긴 이들을, 기념공원까지 세워주며 기려주는 이 뻔뻔한 나라에서, 목숨을 버리는 이들은 낯이 덜 두꺼운 사람들인 것 같다. 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은 내가 만나본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분이었다. 참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흐른다.

< 2009년 5월29일 개인 홈페이지 “이제 칼을 뽑을 때가 된 듯” >

그동안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그냥 무시해버렸다. 억울한 오해를 받아도 대중의 오해를 허락하는 것이 내 성격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번에는 공격이 권력을 끼고 들어왔다. 무슨 협의회 어쩌구하는 인터넷 양아치들은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지만, 그 배후에 어른거리는 권력은 그냥 무시해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들려오는 소리도 심상치 않고…. 위험한 싸움을 시작하는 셈인데, 일단 싸움을 하기 위해 주변을 좀 정리했다. 나 자신을 방어하는 싸움은 그동안 해본 적이 없어 익숙하지도 않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변명해야 하는 구차함도 마음에 안 들고…. 별로 내키는 싸움도 아니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이제 칼을 뽑는다.

진중권 교수는 서거 정국의 와중에서 과거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과 남상국 전 대우 사장의 자살을 비난하는 글을 썼던 사실이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그는 그런 글들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 2004년 3월 진보누리 게시판 >

(남상국 전 대우 사장에 대해) 대우건설 전 사장의 자살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죽음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출세를 하려다 발각이 난 것이고, 그게 쪽팔려서 자살을 했다는 얘긴데, 한마디로 웃기는 자장면이다. 그렇게 쪽팔린 일을 대체 왜 하는가? 그렇게 명예를 중시하는 넘이 비리나 저지르고 자빠졌나? 사장 한 번 해쳐먹은 것도 부족해, 또 한 번 해쳐먹으려고 저질러놓은 비리. 그럼 발각도 되지 말라는 얘기인가? 자기가 돈 먹여 출세하면 그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생긴다는 생각은 아예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는 모양인가?

< 2004년 5월7일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인터뷰 >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에 대해) 이제까지는 안 걸렸는데, 걸린 것이다. 딴 얘기는 다 필요없다. 자살할 짓 앞으로 하지 않으면 된다. 그걸 민주열사인 양 정권의 책임인 양 얘기를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거고. 앞으로 자살세를 걷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시체 치우는 것 짜증난다. 옛날에 민방위 훈련 가니까 스위스 사람들은 자살을 할지라도 나라에서 지급한 총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 2004년 5월28일 진보신당 게시판 “변명의 여지가 없지요” >

그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다. 그분들의 죽음을 부당한 정치적 탄압의 결과인 양 묘사하는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의 태도가 역겨워서 독설을 퍼붓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것 같다. 변명의 여지가 없고, 아프게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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