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오른 민주당‘강공’으로 대세 굳히기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9.06.09 17: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여당에 5개 요구안 제시…“장외 투쟁 나서자” 주장도

▲ 5월31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맨 오른쪽)가 민주당 지도부들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법무부장관 파면 등 대정부 요구 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권에 빅뱅을 몰고 왔다. 5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이 한나라당 지지율을 앞선 것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버금가는 또 다른 사건이었다. 바뀐 정치 지형 속에서 민주당이 이전과 다른 행보를 걸을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 방향은 어디일까.

이전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 민주당이 무언가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다. 경제부터 살려달라는 민심의 심판을 받아 폐기 처분된 줄 알았던 민주당의 가치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기점으로 새삼 조명을 받자 자신감도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를 ‘신권위주의’ 정부로 규정하고 있는 민심의 비판적 평가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과거 참여정부와 거리두기를 하려고 했던 민주당 내부에서 이제는 “노무현 정신을 이어가겠다”(정세균 대표)라는 일성이 공개적으로 나오는 국면이 되었다. 당 지도부의 한 재선 의원은 “이대로라면 10월 재·보선에서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고, 내년 6월 지방선거도 해볼 만하다”라고 자신한다.

강경론 우세 속 “추모 열기 편승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신중론도

일단 민주당이 여권의 국정 기조에 대해 더 강력한 목소리로 견제와 비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관심은 견제와 비판의 수위이다. 당내 진영별로 강온 차이가 뚜렷하다. 민주당의 처지에서는 제1 야당의 위상을 되찾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 동안 최대한 공식 행보를 자제하던 민주당은 5월31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여 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은 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 보복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라고 규정하고 △ 이명박 대통령 사과 △ 수사 책임자·감독자 문책 △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추진 △ 검찰 수사 과정 특검제 도입 △ 검찰 개혁을 위한 제도 개선 추진 등 5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서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몰고 온 사상 초유의 사태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최소 공약수’라는 공감대가 당내 의원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다만, 민주당은 5가지 요구 조건을 6월 국회 등원과 명시적으로 연계하지는 않았다. 여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보고 대응 수위를 결정하겠다는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여권이 야당이 등원할 수 있도록 나름의 ‘당근’을 제시할 뜻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잡고,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것은 큰 틀의 변화보다는 현재의 국정 운영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당분간 정국 추이를 관망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제 새로운 행동을 보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앞으로의 대응 기조에 대해서는 당내 의견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정부·여당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국회 파행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이다. 다른 하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에 편승한 모험적 행동은 위험 부담이 크다는 신중론이다. 이 중 강경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이다. 6월4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의원 워크숍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부각되었다. 강기정 의원은 이날 자유 발언을 통해 “여권이 민주당의 요구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국회에 들어간다면 국민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조급할 필요 없이 요구 조건을 더 높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최재성 의원도 “노 전 대통령 서거로 5백만명의 추모 인파와 민주주의 복원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도출된 이 정국을 1㎝라도 이동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의 이념 공세에도 위축될 이유가 없다”라고 전의를 다졌다.

이밖에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한다”(김종률 의원) “장외투쟁, 단식 등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최문순 의원) 등의 강경 주장이 쏟아졌다. 이미 개혁 성향의 의원 10명은 “이 정권이 반성하고 있다는 징표로 최소한의 납득할 조치마저 하지 않고 자신들이 절대다수로 군림하는 국회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들어오라는 것은 정치적 폭력이다”라며 ‘선(先)사과 없는 국회 등원 반대’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정부·여당이 내놓는 ‘답’이 민주당의 방향 결정할 듯

강경론이 득세하는 직접적인 배경은 역시 지지율 상승이다. 최재성 의원은 “민주당이 앞으로 강한 견제 야당의 모습을 보여야 돌아온 지지층을 계속 붙잡아둘 수 있다. 설령 ‘민주당이 국회를 걷어찬다’라고 조·중·동 등 언론이 비판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6월에는 6·10 항쟁 기념일, 6·15 선언 기념일 등의 정치적 이벤트가 유독 많다는 점도 변수이다. 당 관계자는 “굳이 원내 투쟁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장외에서 싸울 공간이 많다. 반MB 전선의 이름 아래 범야권의 결집을 꾀할 수 있어 우리가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이 시기에 장외 투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느냐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실험에 이은 잇단 미사일 발사 움직임 등 한반도 긴장 수위가 최고조에 달한 것도 부담이다. 워크숍에서도 이런 우려들이 상당수 나왔다. 김성순 의원은 “(노 전 대통령) 공은 계승하고 과는 버려야 한다. 당이 모두 계승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진작부터 계승할 것이지 왜 죽은 다음에 하느냐”라고 꼬집었다. 김동철 의원은 “우리 중에는 노 전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하거나 열린우리당을 같이 못하겠다고 스스로 탈당한 분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반성한다고 해서 국민이 진정성을 믿어주겠느냐”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진정한 변화가 없으면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라는 얘기이다.

특히 최근의 지지율 상승은 민주당이 잘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우리가 잘해서 지지율이 오른 게 아니기 때문에 국민이 어떻게 볼지 낯간지럽다”(이석현 의원)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 변화만을 요구할 게 아니라 민주당도 새로운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이용섭 의원) 등의 지적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주로 당내 중도보수 진영에서 이런 목소리가 많다. 당 관계자는 “민주당 대여 투쟁의 강도는 강경론과 신중론 사이의 한 지점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 경계선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전적으로 정부·여당이 어떤 답을 내놓는가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