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키웠다” 안면 바꾸는 중국
  •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
  • 승인 2009.06.09 17: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핵 현실화에 우려·비판 소리 높아져 국경 왕래도 급감…경제적 차원 압박 선택할 듯

▲ 2006년 1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환담하고 있다(위). 아래는 중국·러시아가 북한의 핵 보유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 실험을 했을 때 중국에서는 이와 관련된 언론 보도가 별로 많지 않았다. 사실상 정부에 의해 통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중국의 많은 신문에서 북한 핵실험과 관련된 기사들을 게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조 또한 비판적이다.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난팡저우모(南方週末)’는 “왜 북한은 항상 중국에게 어려운 문제만 내고 있는가?” “북한의 2차 핵실험, 중·북 관계의 마지노선에 도전” 등 중국의 대북 정책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강경한’ 논조의 기고문을 잇달아 게재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중국 관방의 입장을 대변하는 런민(人民)일보가 “북한은 핵을 개발하려는 결심을 단단히 했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가 1차 핵실험 때와 달리 태도를 바꾸어 대북 강경 기조의 기고문과 기사들을 최소한 ‘묵인’하고 있다는 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북한 핵실험은 안보리 결의안 1718호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며, 안보리는 결의안에 준거해 신속히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에 착수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 역시 이에 찬동했다. 또한, 중국은 별도의 외교부 성명을 통해 “북한이 국제 사회의 보편적 반대를 무시하고 또다시 핵실험을 실시한 것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북한은 비핵화 약속을 지키고, 정세를 악화시키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현재 이러한 외교부 성명 내용은 주북한 중국대사관 홈페이지 전면에 게시되어 있는데, 이는 북·중 관계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외교적으로 대단히 높은 수준의 불만 표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 5월29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을 ‘위선자’라고 비난함으로써 사실상 중국과의 대결 자세를 보였다. 당분간 중국과 북한 간의 고위급 교류는 없을 것이라고 정보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6자회담 ‘보호’도 필요없다고 판단한 듯

 단둥(丹東)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수출 전초 기지이다. 그러나 활기 넘치던 단둥은 중국과 북한이 ‘미사일’ 문제로 이견을 노정시킨 올해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지금 단둥은 더 이상 ‘우의(友誼)의 창구(窓口)’가 아니다. 또, 압록강에서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인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는 도로와 철로 양용(兩用)인데 모두 일방통행로로서 운송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중국측이 2차선 다리로 확장하자는 제안을 해놓고 이미 설계까지 끝낸 상태이지만 북한은 이에 대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북한 핵문제에 대해 기존에 가장 유력했던 관측은 북한이 이른바 ‘핵 카드’를 활용해 미국과 담판을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는 북한이 추구했던 것이 이러한 단순한 ‘핵 카드론’이라는 일시적 전술 운용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종합 국력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핵무기의 보유 자체가 곧 ‘강성대국’의 핵심적인 내용으로서 이는 북한의 국책(國策)이자 전략적 선택이라는 주장이 급속하게 힘을 얻어가고 있다. 중공(中共)중앙당교(黨校) 국제전략연구소 장롄구이 교수가 그 대표적인 주창자인데, 장 교수는 북한이 6자회담이나 남북 대화, 미국과의 대화를 활용해 자신에 대한 압박을 완화시키고 시간을 벌면서 핵을 개발해왔다고 분석한다. 최근 북한은 6자회담에 영원히 참여하지 않겠다고 천명함으로써 핵을 사실상 보유하게 된 현재의 시점에서 6자회담은 이미 ‘수단’으로서의 사명을 마쳤으며, 따라서 이제 6자회담의 ‘보호’가 필요 없게 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전히 북한에 대해 중국이 압박을 가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으며 다만, 미국에 기울게 만들 뿐이라는 견해 역시 존재한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국가 이익에 기초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 질서의 재조정이라는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관리’함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지킨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본 입장과 이익의 내용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 그리고 북한 붕괴의 방지이다. 중국의 처지에서는 북한의 붕괴가 자국의 국가 이익을 심각하게 손상시킨다고 인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존재는 중국으로서 매우 유리한 정치 지형을 만들어준다. 북한은 중국에게 사회주의 형제국으로서, 특히 미군의 존재에 대한 일종의 ‘완충국(buffer state)’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중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군대와 바로 육지에서 국경을 맞대고 ‘대치’해야 한다. 이는 중국으로서는 가장 원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핵개발은 동북아 지역에서 유일한 핵무장 국가로서의 중국의 결정적 우위를 상실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일본, 한국, 타이완의 핵무장을 조장하는 작용을 하고 결국,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을 초래하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중국의 기존 한반도 정책이 현상 유지라는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었다면, 현재의 한반도 정책은 ‘비핵화 상태의 현상 유지’ 정책이라고 정리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황 변화에 대응해 중국은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중국이 북한에 대해 ‘전지전능한’ 압력 수단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현재 중국은 북한이 소비하는 석유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북한 군대는 이 석유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으며, 또한 연간 5억 달러 규모의 식량을 북한에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과 북한 간 무역이 27억9천만 달러로 41%나 급증했고, 그 대부분은 늘어난 중국의 대북 수출이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 조치는 ‘제한적인’ 영향력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해 자국의 국가 이익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으로 인식하는 중국으로서는 대북 정책의 근본적 수정과 함께 북한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다만, 중국은 대북 정책의 조정과 ‘압력’이 미국의 주도 하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네가 주도해 진행해야 하며, 북한의 ‘체면’도 살려주는 차원에서 특유의 강온 양면 정책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중국은 북한에 대해 우선 6자회담 참여 등 대화 촉구와 함께 경제적 차원의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