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실체도 알려지지 않는 한 스물여섯 살 청년의 갑작스런 등장에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김정운 후계 체제’ 시대의 북한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어디로 튈지 알 수도 없고, 곳곳에 ‘뇌관’이 깔려 있다.
권력 승계 국면에서는 대화 힘들 듯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은 이미 북한이 움켜쥐고 있다. 평양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관건일 뿐이다. 국내의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은 “당장 김정운이 북한을 좌지우지하기는 어렵고, 향후 몇 년간은 후계자 수업을 받는 단계로 당과 군부 등 주변 파워 엘리트들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 북한 전문가의 진단처럼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체제 위기를 맞고 있는 평양 주석궁은 일단 내부 체제 결속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초긴장 국면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 권력 승계 과정의 여러 변수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향후 한반도 내 격동 시나리오가 가능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현재 한반도의 정세가 최근 1년 사이 북한이 치밀하게 준비한 듯한 하나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선 가장 유력한 것은 지금과 같은 양상의 긴장·대치 국면이 상당히 장기화할 가능성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현재 남북 간이나 북·미 간에 전혀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또, 북한이 지금의 후계 구도 문제에서 대화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보인다”라고 밝혔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운의 등장은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다. 앞으로 자기 기반을 다져 나가는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계속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긴장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일정 기간 동안 서서히 그 강도를 높여나가는 전략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대표적인 카드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과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개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등 주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국지전과 테러를 벌일 가능성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있다(아래쪽 상자 기사 참조).
특히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UEP 개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 4월29일 “유엔 안보리가 로켓 발사에 대한 대북 제재를 ‘사죄’하지 않으면 핵실험과 ICBM 발사, 그리고 경수로발전소 건설에 나서겠다”라고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 북한 군사 도발에 강경 대응 천명
양무진 교수는 “엄포를 해놓고 상황을 살피던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지금의 북한은 그야말로 ‘우리는 한다면 진짜 한다’는 식으로 나서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경수로발전소 건설은 곧 북한이 자체적으로 핵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이른바 ‘핵 보유국’으로의 본격적인 길을 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UEP 개발에 본격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UEP는 미국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대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이 새로운 회심의 카드로 꺼내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우라늄 농축 핵물질은 실험이 필요 없기 때문에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를 획득하는 것도 어렵고, 더군다나 북한에는 4백40만t의 천연 우라늄이 무진장으로 매장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라늄 농축은 플루토늄 추출과는 달리 미국의 첩보위성으로도 추적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카드로 보이며, 한반도 안전에 있어서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두 번째로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것은 남북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다. 국지전 내지는 전면전 가능성이다. 전면전의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인 만큼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지전의 우발적 충돌이 자칫 확전 양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치달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도발 가능성에 대한 우리 군의 방침은 전례 없이 강경하다. 군은 이미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면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지상·공중·해상의 합동 전력으로 단시간 내에 현장에서 종결하도록 지침을 하달한 상태이다. 이상희 국방부장관은 최근 “핵은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다”라는 초강경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낸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은 “초동 상황에 대한 대처는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과 확전 가능성에 연관되어 있는 모든 군사적 조치에 대해서는 정치적 고려를 따져서 좀더 신중히 발언해야 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세 번째는 급격한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이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6월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조선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에서 미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권력 승계 작업이 확정된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협상 테이블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6자회담에 앞서 미국과 북한이 성공적인 6자회담을 이끌어내기 위해 먼저 양자회담으로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데니스 와일더 전 국장은 5월27일(현지 시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 2명의 재판에 즈음해 민간 차원의 특사를 보내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특사 파견은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북한 사정에 밝은 국내의 한 기업 관계자는 지난 6월4일 기자와 만나 “미국과 북한이 현재 막후 대화 교섭에 나서고 있으며,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문제도 이런 차원에서 해결될 것으로 본다. 북한이 남한을 향해서는 계속 강경하게 나오고 있지만, 미국측과는 물밑에서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대화의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지금의 강경 전략이 너무 장기화되면 북한 내부의 또 다른 불만과 주민들의 지나친 고통을 야기하는 위험 요인이 뒤따른다. 따라서 후계 문제가 어느 정도 가시화되면 미국과의 접촉을 재개해 경제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남북 간 충돌’ 예상 시나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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