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팬클럽'에 포위된 대중음악계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6.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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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으로 가요 순위까지 결정…다양한 뮤지션 성장 막아

6월 첫째 주 KBS 에서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한 아이돌 그룹 샤이니.▲ ⓒ연합뉴스

6월첫째 주에 샤이니라는 아이돌 그룹이 KBS <뮤직뱅크>에서 1위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돌 그룹의 1위는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하지만 샤이니의 1위는 사건이 되었는데, 이것은 그날이 샤이니의 첫 번째 컴백 무대였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돌 가수가 신곡을 내놓고 공식적으로 처음 무대에 서는 날 1위를 한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지금 기획사 아이돌 천하에 살고 있다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한 일이었다. 샤이니가 1위를 할 때 대한민국에 샤이니의 신곡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샤이니라는 가수 자체를 모르는 국민도 상당수이다. 그 가수의 신곡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일반 대중이 알지도 못하는 노래가 1위를 하다니.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일반 네티즌과 샤이니 팬들 사이에 공방이 벌어졌다. 샤이니의 팬은 ‘오빠’들이 실력도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했고, 음악도 좋고, 음반 판매량도 많으니 1위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날을 세웠다. 과거에는 아이돌이 화려한 기획 상품일 뿐이라고 다들 인정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이돌에게 음악성과 실력이라는 아우라까지 생기고 있다. 요즘 팬클럽들은 ‘오빠’들의 음악과 실력에 대해 거침없이 옹호한다. 때문에 일반 대중과 괴리감이 더 커지고 있다.

요즘 아이돌을 옹호하는 어린 팬들의 상태는 이렇다. 기획사에서 기획한 음악만 듣다 보니 그 속에서 음악성까지 찾으려 든다. 과거에 아이돌의 약한 고리는 립싱크였다. 요즘 아이돌들은 라이브를 소화한다. 그것을 통해 실력 있는 뮤지션이라는 평판을 획득해가고 있다. 막장 드라마에서 좋은 연기가 나오자 명품 드라마라는 평판을 획득한 것과 같다. 라이브를 보며 아이돌이 실력 있는 뮤지션이라는 확신을 얻은 팬클럽의 ‘오빠 사랑’은 더욱 맹렬해졌다.

<뮤직뱅크>는 ‘다양한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임을 표방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에서 소수만 아는 가수의 신곡이 1위를 할 수 있었을까? <뮤직뱅크>의 차트 집계 방식은 이렇다.

‘디지털 음원(60%) +음반 판매(15%) + 방송 횟수(15%) + 시청자 선호도(10%).’

샤이니의 노래는 신곡이었으므로 방송 횟수에서는 점수가 안 나왔다. 디지털 음원 부문에서는 점수가 낮게 나왔다. 하지만 음반 판매 부문에서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를 한 것이 차트 1위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시청자 선호도에서도 앞서나갔다.

▲ 지난 2007년 열렸던 의 객석을 가득 메운 동방신기 팬클럽. ⓒ연합뉴스

한국의 음반 시장은 현재 붕괴 국면이다. 그나마 규모가 유지되는 곳은 디지털 음원 시장뿐이다. 다수가 참여하는 디지털 음원 시장은 소수가 움직일 수 없다. 음반 시장은 붕괴지경이므로 소수의 응집된 힘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이돌의 신곡이 나오자마자 팬클럽이 맹렬히 음반을 사준다면 이번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시청자 선호도 조사도 관련 기관에 팬클럽이 가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투표율이 낮은 선거판에서 소수의 조직표가 당락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국민의 관심도가 떨어진 음악시장에서 팬클럽의 조직표가 차트를 쥐고 흔드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노래가 1위를 한 사건이 이런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이럴수록 일반 국민은 가요판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시장은 더 좁아지고, 좁은 시장에서 팬클럽의 영향력은 강해지고, 그에 따라 가요시장이 일반 국민과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일반’ 음악 팬 사라지고 팬클럽만 남는가

2008년도에 ‘한국의 가요계가 자랑하는 대형 행사’라는 <드림콘서트>가 열렸었다. 이때 몇몇 아이돌 팬클럽이 공모해서 공연 중간에 침묵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보이밴드 팬클럽들이 걸그룹인 소녀시대 팬클럽을 견제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그때 공연장이 실제로 조용해졌다. 한국 가요계가 팬클럽 천하임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만약 일반 국민들이 있었다면 팬클럽이 침묵하건 말건 공연은 알아서 흘러갔을 것이다. 팬클럽이 침묵하자 공연장 전체가 조용해졌다는 것은, 일반 국민이 이미 그 바닥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팬클럽만 남은 곳이 팬클럽 천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돌이 막 성장하기 시작한 과도기 때는 기획 상품인 아이돌과 실력 있는 뮤지션이 구분되었었지만, 팬클럽의 전일적 지배가 관철되고 아이돌이 실력과 음악성이라는 가치마저 획득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외의 음악을 지상파 주요 음악프로그램에서 접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옛날 뮤지션들은 7080쇼에 나와 과거를 회상하거나 예능 늦둥이로 살아가는 형편이다.

중요한 것이 과거의 뮤지션들이 아니다. 새로운 뮤지션들이 나타나기 힘든 상황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 ⓒKBS 제공

요즘 <뮤직뱅크>는 ‘SM뱅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등 SM 출신 아이돌들이 득세하기 때문이다. 최근 다른 쇼프로그램에서는 YG엔터테인먼트의 신인 아이돌 2NE1이 데뷔하자마자 톱스타급의 대접을 받은 것 때문에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2NE1의 첫 무대는 그 질과 양에서 서태지와 동급 수준으로 꾸며졌었다. 이렇게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뮤지션이 나타나고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막에서 냉수를 찾는 것과 같은 일이다. 샤이니의 신곡을 1위로 만든 것은 팬들이다. 즉, 어떤 상업적 힘이나 문화계 권력이 이런 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소비자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다는 뜻이다. 문화적 자해이다. 소비자의 이런 선택은 시장을 극단적으로 황폐하게 만들어 결국, 자신들이 향유할 문화적 다양성을 압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두 개만 남는다. 트로트와 아이돌이다. 트로트도 옛날처럼 서민의 애환을 담은 노래가 아닌,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행사용 음악으로 퇴락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문세, 들국화, 김광석, 이선희 같은 가수들을 다시 키워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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