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몸이 보내는 첫 경고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6.16 17: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마다 정상 체온 달라 정해진 고열 기준 없어…1주일 이상 가면 병원 찾아야

▲ 고막체온계는 반드시 고막 부위에 위치시켜 측정해야 한다. 흔히 외이도(귓구멍)의 열을 측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체온보다 낮게 측정된다. ⓒ시사저널 유장훈

최근 유행하는 신종플루와 수족구병의 대표적인 증세는 고열(高熱)이다. 이로 인해 요즘 열만 나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발열 증세를 보이는 병의 경우 대부분 심각한 질환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발열을 얕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암이나 자가면역질환의 발병과 관련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체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표피(피부)와 체내 온도이다. 흔히 말하는 체온은 체내 온도 즉, 심부체온(深部體溫)이다. 표피체온은 대기 온도, 습도, 바람, 의복에 따라 변하지만 심부체온은 일정하다.

체온은 겨드랑이, 구강, 고막, 직장에서 측정한다. 겨드랑이에서 측정한 체온은 일반적으로 오전에 37.2℃, 오후에 37.7℃ 사이가 정상이다. 우리 몸의 신진대사가 가장 활발할 때의 온도이다. 뇌의 시상하부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병에 걸려 열이 나더라도 치료하면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런 기능이 작동한 결과이다.

의학적으로 정해진 고열의 기준은 없다. 사람마다 정상 체온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병원에서는 자신의 체온보다 0.5℃ 이상 오르면 발열 증세가 있는 것으로 본다.

특정 약에 대한 과민 반응일 수도 있어

발열 원인은 감염질환, 소화기질환, 호흡기질환, 비뇨기질환, 피부질환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감염성 질환이 대부분이다. 대게 별다른 치료 없이 3~4일 정도 지나면 발열 증세는 사라진다.

그러나 발열이 장기간 지속되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1주일 이상 이어지면 단순한 감기가 아닐 수 있다. 특히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서 장기간 고열 증세가 나타나면 병이 심해졌거나 합병증이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다. 같은 병에 걸려도 노인이나 심장병 및 신장병 환자에게서는 발열 증세가 잘 나타나지 않아 더욱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바이러스보다 세균 감염에 의한 발열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폐렴이나 요로감염 등 심각한 질환이 발열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와 세균 감염의 발열 증세는 비슷해서 구별이 쉽지 않다. 다만, 세균에 감염되면 고열과 함께 심하게 떠는 오한(惡寒) 증세도 나타난다.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지 않았는데 열이 날 수도 있다. 이를 비감염성 질환에 의한 발열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원인으로 암과 자가면역질환, 내분비질환이 꼽힌다. 특히 림프종은 38℃ 이상 고열 증세가 1주일 이상 나타난다. 특정 약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오는 약열(藥熱)도 있다.

발열의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이를 불명열(PUO)이라고 한다. 병원에서는 경과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려 하고 있다. 발열 증세를 나타내는 원인은 모르지만 다행히 예후는 좋은 편이라고 한다.

박완범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열이 난다고 해서 무조건 병원을 찾을 필요는 없다. 열이 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화병이 나거나 갱년기일 때 속에서 열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느끼지만 체온은 정상이다. 음주나 과로로 열이 나기도 하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다. 실제 성인에게서 고열 증세가 보여도 병원에서는 해열제를 처방하지 않는다.

임산부나 심장병, 호흡기 환자, 뇌졸중 환자에게는 합병증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해열제를 사용한다. 열이 날 때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마사지하면 체온을 낮출 수 있다. 1주일이 지나도 열이 내려가지 않으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7세 이하 아이에게는 해열제가 필요하다.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성인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2세 이하의 아이라면 반드시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해열제를 먹여야 한다. 구토로 인해 해열제를 먹이지 못할 경우에는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마사지해주면 좋다. 찬물에 목욕을 시키거나 찬 물수건으로 마사지를 해주는 행위는 금물이다. 모세혈관을 수축시켜 열은 내려가지 않고 아이만 고통스럽게 할 가능성이 있다. 아이의 고열을 방치하면 뇌손상을 입을 수 있다. 또, 고열이 3주 이상 계속되면 백혈병을 의심해야 한다.

노인은 본래 정상 체온이 젊은 사람보다 약간 낮은 편이다. 신진대사 능력이 떨어지므로 똑같은 병에 걸려도 체온에 현저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환자는 물론 의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일상생활에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미열이 생긴다. 미열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무엇보다 암을 의심해야 한다. 게다가 살이 빠져 체중이 감소하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김윤덕 서울시북부노인병원 가정의학과장은 “노인은 몸이 노쇠해지고 면역체계도 약해져 결핵, 요도감염, 각종 농양 등에 쉽게 걸린다. 그러므로 평소보다 열이 은근히 오르면 잘 관찰해야 한다. 미열이 생기면 병원을 찾아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심각한 상황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다”라고 설명했다. 

미열이 한 달 넘으면 암 발병 가능성

체온이 떨어져도 문제이다. 예컨대 패혈증에 걸리면 체온이 오르기도 하지만 내려가기도 한다. 전문의들은 체온이 36℃ 이하로 떨어지면 병원을 찾을 것을 권고한다.

체온이 35℃ 이하로 떨어지면 저체온증이다. 습하고 바람이 부는 추운 곳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때 발생한다. 여름에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둔 채 잠을 자도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다. 체온이 떨어지면 우리 몸에서는 방어 시스템이 작동한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피부와 근육이 떨린다. 떨림 현상이 장시간 계속되면 탈진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저체온증은 칼로리 소모를 부추겨 혈당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혈당이 떨어지면 허기와 졸림 증세가 나타나고, 체온이 30℃ 아래로 내려가면 심장이 멎으며 28℃까지 떨어지면 사망할 수 있다.

특히 체온 조절 기능이 약한 아이와 노인이 저체온증에 걸리기 쉽다. 뇌졸중, 파킨슨병, 척추장애, 갑상선 기능 저하증, 간부전, 신부전 환자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 몸의 열은 의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이다. 몸에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말라리아균으로 매독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말라리아균에 의해 발생한 고열이 매독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한 결과이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 체온 변화는 득보다 해가 된다고 보고 있다. 체온이 올라가거나 높아지면 건강의 이상을 알리는 경고로 여겨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