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먹고 ‘자동차 대국’으로 가나
  • 최주식 (월간 <오토카 코리아> 편집장) ()
  • 승인 2009.06.16 17: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세계 자동차업계 지형 변화 틈타 인수·합병 적극 나서…기술력까지 급성장

ⓒ그림 김우정

세계 자동차 산업의 지형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불어닥친 글로벌 경제 위기는 특히 자동차업계에 직격탄을 날렸고, 20세기를 풍미했던 미국 빅3(GM·포드·크라이슬러)는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자동차업계의 위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쌍용자동차, GM대우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중국 자동차업계의 분위기는 예외적으로 보인다. 

세계적 브랜드 인수 협상 중…부품업체도 ‘줄줄이’

올 들어 중국의 신차 판매 대수가 미국을 앞질렀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당초 예상되었던 2017년보다 훨씬 앞당겨진 수치이다. 일단 불붙은 중국 자동차산업의 성장 동력은 쉽게 꺼지지 않을 태세이다. 지난 4월에 열린 상하이 모터쇼는 이러한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다. 드넓은 전시장을 가득 메운 참가 업체 등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 상하이 모터쇼의 대성공은 이제 중국이 아시아의 핵심 시장으로 떠올랐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지켰던 도쿄 모터쇼는 오는 10월 제41회 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이미 미국과 유럽의 상당수 브랜드가 불참을 통보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중국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7천만대를 넘고, 2012~13년이면 1억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세계의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모두 9억대. 세계의 자동차 메이커가 모두 중국 시장에 목매다는 이유이다.

그동안 중국에서 생산되는 중국 자동차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중국은 GM대우 마티즈를 그대로 카피한 짝퉁 모델(체리자동차의 QQ)이 아무렇지도 않게 도로를 달리는 나라, 자동차의 개성이나 브랜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또는 알면서도 뻔뻔하게 구는 나라로 여겨졌다. 물론 이번 상하이 모터쇼에서도 지리자동차가 GE라는 롤스로이스 팬텀의 디자인을 카피한 차를 비롯해 여러 대의 디자인 카피 모델들이 전시되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짝퉁 모델들로 홍수를 이루던 모습은 잦아들었다. 무엇보다 중국 현지 개발 제품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 인상적인 변화이다.

중국차의 품질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심지어 짝퉁 롤스로이스마저 잘 조립되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이다. 상하이에는 GM의 범아시아 기술 자동차센터(PATAC)가 있다. 여기서 개발한 ‘비즈니스 컨셉트’는 GM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현지 설계·개발한 모델로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중국형 뷰익 모델로 GM 중국 자회사의 능력을 보여주게 된다. GM 아시아-태평양의 CEO 닉 라일리 사장은 “앞으로는 GM중국에서 직접 설계·개발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차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전략적 변화를 암시하는 말이다. 한편, 상하이자동차(SAIC)는 영국 MG 사를 인수한 후 첫 번째 신형 모델이 되는 MG6을 선보여 유럽 수출을 예고했다. 

중국차의 이러한 변화에는 미국 빅3의 몰락 등 세계 자동차 산업의 지형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선도적인 위치로 올라서겠다는 목표가 숨겨져 있다. 이를 위해 인수·합병(M&A) 시장에 던져진 선진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주워 삼키겠다는 전략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주요 타깃이 바로 빅3로 상징되는 미국 업체들이다. 

중국 자동차업체가 찢어지는 미국 빅3를 공략한 것은 이미 장비 제조업체 텅중(騰中)중공업이 GM의 산하 브랜드인 허머를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베이징자동차(BAIC)도 GM의 산하 ssda 브랜드 오펠을 사들이기 위해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그리고 포드의 협력 업체 창안자동차는 포드 산하 브랜드인 볼보를 인수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는 소문이다. 한편, 빅3의 하나인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 자동차그룹 피아트에 인수되었다. 크라이슬러의 지분 20%를 가지며 크라이슬러의 새 보스가 되는 피아트의 회장 세르지오 마르치오네는 지난해 세계의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모두 5개의 기업으로 형성되어야 하며, 각 기업은 매년 6백만대 생산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무엇보다 피아트는 크라이슬러를 통해 그동안 별로 대접받지 못했던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자동차업계가 새판을 짜게 되면서 부품업계의 판도도 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세계 자동차 부품시장을 장악하던 미국의 델파이와 비스티온 등은 최근 중국에 일부 사업을 매각하거나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체면을 구기고 있는 것. 반면, 독일의 보쉬와 일본의 덴소가 부품업계 1, 2위를 굳히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시장 부품업체들이 M&A를 통해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베이징 시정부가 베이징자동차(BAIC)와 톈바오그룹 등 컨소시엄을 구성해 설립한 베이징웨스트를 통해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델파이에서 제동(브레이크)·현가장치(서스펜션)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미국·프랑스 등에 있는 8개 공장과 5개 연구개발센터를 확보한 것. 그리고 중국 2위 자동차업체인 지리자동차는 쌍용자동차에 변속기를 공급해온 호주의 변속기 전문 제조업체 DSI를 인수했다. 그밖에 중국 자동차업체가 추가적으로 미국 업체를 인수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한국차와 기술 격차도 3년으로 좁혀…저가차 시장 장악은 시간 문제

M&A를 통해 덩치를 키우고 기술 수준을 높이고 있는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자동차 수출을 늘려가고 있다. 중국차의 이러한 움직임은 확실히 한국차에 부담을 안겨줄 것이 분명하다. 중국차는 현재 30개국에 저가형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는데 그 확장세는 날로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박사는 “우리나라 자동차와 중국 자동차 간 범용부품의 기술 격차는 현재 3년 정도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좁혀드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라고 말했다. 2012년께나 따라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2011년이면 따라잡힐 것이라는 얘기이다.

중국 자동차업계는 2011년부터 미국과 유럽 지역에도 수출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들 선진 시장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부품의 품질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미국의 부품회사 및 완성차회사를 인수하는 것이다. 완성차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그 차의 설계와 기술을 모두 가져올 수 있으므로 부품 산업을 조기에 강화시키겠다는 의지이다.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자동차시장의 분위기는 확실히 소형차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래서 현대, 기아를 비롯한 한국차에 유리한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소형차 부문에서 기회는 주어졌다. 하지만 2천cc 소형차 같은 고부가가치로 차별화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만 달러 전후의 저가차는 중국차가 장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초창기 수출 시장에서 그러했듯이 저가차의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차에 밀릴 수밖에 없다. 한국차로서는 무엇보다 비용을 절감하고 대량 생산을 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저비용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 고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