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목마른 바다 호랑이
  • 김연수(생태사진가) ()
  • 승인 2009.06.1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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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1백24°, 북위 37°. 서해 최북단의 외로운 섬 백령도. 북녘땅 월래도에서 11km, 장산곶에서 17km 떨어진 군사 전략의 요충지이다. 약 3천년 전, 신석기 말기부터 인간이 살아왔지만 다른 곳에 비해  때 묻지 않은 동물의 낙원이기도 하다. 그 동남쪽 바다는 NNL(북방한계선)이, 육지의 DMZ처럼 남북을 가르는 곳이다. 이곳은 특히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물범(천연기념물 331호) 2백여 마리가 집단 서식하고 있다.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용기포구 동북방 3km 지점, 고봉포 포구에서 뱃길로 20분, 북녘 월래도에서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물개바위’.

이곳은 썰물로 물이 빠지면서 제 모습을 드러낼 때면 이내 물범들의 휴식 공간으로 바뀐다. NNL상의 청정 해역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며 먹이를 잡던 물범들이 따사로운 햇살 아래 수면을 취하러 이곳에 몰려들기 때문이다.

백령의 물범은 ‘잔점무늬 물범’으로 어두운 회색의 몸에 검은색 잔 점들이 고르게 박혀 있다. 서해 북부 중국 연안의 발해만에서 집단 서식하던 물범들이 언제부터 백령도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옛 문헌을 보면 물범 가죽이 한반도 고대 국가의 특산물로, 물범은 주요한 사냥감이었다는 기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래서인지 물범은 사람을 싫어한다. 바위에서 한가하게 수면을 취하다가도 이따금 낚싯배가 다가오면 물속으로 숨어버린다. 바위 위에서의 동작은 뒤뚱뒤뚱 느리지만, 일단 물속에 다다르면 날렵하게 자맥질한다.

옹진군의 외딴 무인도에는 물범의 소수 무리가 간혹 눈에 띈다. 그러나 백령의 경우처럼  대규모 무리는 없다. 인간들이 물범을 물개로 착각해 오래전부터 해구신용으로 대량 포획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지긋한 주민들은 아직도 물범을 물개로 부르고 있으며, 그물을 동원해 대량 포획하던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해구신용으로 물범을 잡았다면 1마리의 수컷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범을 잡았을지 모른다. 물범의 대장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암수를 구별 못하는 문외한들이 닥치는 대로 사냥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 면에서 백령의 물범은 안전하다. 녀석들의 서식지가 민간인들의 통행이 엄격히 제한되는 NNL에 인접한 해상에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특산물로 흔했던 물범이 인간에 의해 멸종되지 않고 백령도에서나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냉전 시대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물범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기록도 없다. 이따금씩 매스컴에서 몇 장의 사진으로 소개되는 것이 고작이다. 이 물범은 충남 가로림만에서도 소수가 살고 있고, 동해안에서도 목격된다.

해마다 6월 꽃게철이 되면, 꽃게가 풍부한 어장인 NNL 주변을 둘러싸고 이곳 해상에서 남북의 긴장이 고조된다. 올해는 특히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에 대한 남한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 참여로 남북 간 일촉즉발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두 차례의 서해교전 같은 불상사가 재발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물개바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물범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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