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는 찬성, 방법은 제각각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9.06.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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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제출된 법안 모두 8개…‘허가제로 전환’ 등 쟁점만 4가지…정부는 “반대”

▲ 민주노동당 천영세 대표와 대형 마트 규제와 중소상인 살리기 대책위원회 대표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 마트 규제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근처 목동아파트 단지에는 매일 대형 유통업체들 간에 치열한 ‘마트 전쟁’이 벌어진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홈플러스·이마트·농협 하나로마트가, 차로 10분 거리에는 코스트코·2001 아울렛·롯데마트, 또 다른 이마트와 홈플러스가 경쟁적으로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이런 마트 전쟁은 전국 아파트촌 어디서나 흔한 일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대형 마트들의 대결이 극에 달해 영업 시간 경쟁까지 한다. 그래서  도시의 밤은 24시간 열려 있는 마트의 불빛 때문에 낮처럼 밝다.

이렇듯 대형 마트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동네 슈퍼와 재래시장이 무너져가고 있다.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4~08년 사이에 대형 마트의 매출은 무려 9조2천억원이나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재래시장의 매출은 9조3천억원이 줄어들었다. 재래시장의 매출액이 고스란히 대형 마트로 옮겨간 셈이다. 또, 대형 마트가 24시간으로 영업을 확대하면서 심야에 맥주 한 캔 사러 나온 동네 슈퍼 고객들까지 싹쓸이해 갔다. 이쯤 되자 대형 마트에 대한 규제는 단순히 ‘재래시장이나 중소상인 살리기’ 차원을 넘어, ‘실물경제의 침체’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오래전부터 지역구 국회의원들 사이에는 정당을 불문하고 대형 마트 규제법 없이 중소상인 살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대형 마트를 직접 규제하지 않은 채 ‘재래시장 지원 특별법’ 같은 우회적인 방법만으로는 유통업체와 중소상인 살리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소비자들 “마트는 많을수록 좋아”

하지만 대형 마트를 규제하는 데는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고객의 처지에서는 주차 공간이 넓고, 냉난방이 잘 되어 있으며, 상품이 다양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마트가 집 앞에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대형 마트들이 24시간 연중무휴 영업을 하는 것도 동네 슈퍼 주인 입장에서는 전전긍긍할 일이지만 고객에게는 편리하다. 게다가 대형 마트들의 영업의 자유를 규제할 법적 근거도 마땅치 않다.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대형 마트 규제 법안’을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리라 예상되는 이유이다.

사실 대형 마트 규제 입법의 필요성은 17대 국회부터 18대 국회까지 꾸준히 논의되었지만,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었다. 기다리다 지친 부산, 대구, 포항, 대전 등 전국 지자체들은 “급한 대로 우리 지역의 불이라도 끄겠다”라며 대형 마트의 무분별한 영업을 규제하는 조례를 제정해왔다. 하지만 이런 지자체들은 한결같이 “하루빨리 국회에서 대형 마트를 규제하는 상위법을 만들어야 한다. 조례로는 한계가 많다”라고 지적한다.

대구광역시가 그 예이다. 2007년 7월30일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해 준주거지역 내 대형 마트 건축을 제한했다.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마트들은 나날이 번창하며 수익을 모조리 서울로 가져가는데, 정작 뿌리를 대구에 둔 중소 규모 유통업자들, 재래시장과 동네 슈퍼가 고사하면서 지역 경제에 타격이 왔기 때문이다. 조례 덕분에 대구는 광역시 내에서 인구 비율에 비해 가장 적은 18개 대형 마트 수를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영업 시간제한, 의무 휴일 수 제정, 품목 제한 등에 대한 상위법이 없어 이미 설립된 대형 마트의 무차별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대구광역시 경제정책과 담당자는 “이미 여러 번 정부 중앙 부처에 조속한 대형 마트 규제 입법을 요청했고, 당사자인 대형 유통업체들과 영업 시간 제한을 논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입법은 멀어 보이고, 대형 마트는 본사 영업 방침과 위배된다며 지자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결국, 지자체가 선택할 방법은 행정 지도뿐인데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주시의 입장도 비슷하다. 2009년 2월에 전국 최초로 ‘대형 마트 지역기여 권고 조례’를 제정해서 대형 마트가 수익금을 몽땅 서울의 본사로 보내는 대신, 지역 경제에 일부 투자하도록 조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형 마트의 독점을 효과적으로 막는 대형 마트 크기 제한, 영업 시간과 의무 휴업 일수 지정, 품목 제한 등은 상위법이 없어 손대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 경제진흥과 담당자는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5만명 인구에 대형 마트 한 개가 적당하다는데) 63만 전주 인구에 대형 마트가 7개나 되니 많은 편이다. 또, 농축산물 유통업체와 상인들은 대형 마트가 생긴 후 재래시장이 3분의 1밖에 남지 않았는데 시청이 무얼 하느냐고 불만이다. 하지만 대형 마트를 규제하는 상위법 없이는 행정 조치 등이 불가능해서 지자체 역량으로 대형 마트의 독점을 막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자체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6월 임시국회에서 실효성 있는 대형 마트 규제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회에 제출된 대형 마트 규제 법안은 ‘유통 산업 발전법’의 개정안이 6개, 특별법안 형태가 2개로 총 8개이지만 각 법안마다 제시하는 규제 방법에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각 개정안과 특별 법안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는 쟁점은 네 가지이다. 대형 마트 설립시 현재의 등록제에서 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지는 허가제로 전환하자는 것, 대형 마트의 입점 여부를 해당 지자체의 주민과 시민 단체가 참여해 결정하도록 하는 심의 기구 도입 여부, 대형 마트의 독점을 막기 위해 영업 시간을 제한하고 의무 휴업 일수를 정할 것, 대형 마트가 다루는 품목의 종류를 제한할 것 등이 그 내용이다.

▲ 대형 마트 간 경쟁이 극에 달하자 손님이 거의 없는 새벽까지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있으나 마나 한 법 나올까 봐 우려된다”

게다가 대형 마트 규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사실상 반대’인 것도 입법의 장애물이다.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이미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상정된 8개의 법안을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지식경제부 유통물류과 담당자는“현재 6월 임시 국회에 제출할 정부 대안을 준비 중이지만 확정된 내용이 없다. 하지만 현재 의원들이 내놓은 대형 마트 규제안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든, 특별 법안이든 국내적으로는 헌법상 ‘영업의 자유’와 ‘평등권’에, 국제적으로는 WTO 협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기존 입장에 큰 변화가 없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 부처인 외교통상부 다자통상협력과 담당자 역시 “현재 상정된 대형 마트 규제 법안 중 일부가 국제적으로 WTO 협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영업 시간이나 영업 일수 제한 등은 검토해볼 수도 있지만, ‘지역 균형발전’ 등과 같이 모호한 이유로 대형 마트 설립을 허가제로 바꾸면 국제 분쟁이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자체와 중소상인들의 요청과 일부 국회의원들의 적극적인 입법 노력에도 불구하고 6월 임시국회에서 대형 마트 규제와 관련한 입법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원론적인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각 당과 의원마다 입장이 다르고,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도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의원들이 제시하는 법안마다 편차가 너무 커서 있으나 마나 한 대형 마트 규제 법안이 나올까 봐 우려된다. 이미 중소상인들이 너무 많은 타격을 받았다. 새로 들어오는 대형 마트는 물론이고, 기존 대형 마트들을 규제하는 영업 시간, 영업 일수, 품목 제한 등 세밀한 것도 적절히 규정해서 만연한 피해를 시정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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