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케묵은 ‘법’이 너무 많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6.1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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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통치 구조는 4년 중임제가 유력…영토·국민발안제·표현의 자유 조항도 손봐야

개헌 이야기가 나오자 정치권이나 국민의 관심은 모두 통치 구조에 쏠리고 있다. 개헌을 말하는 쪽은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지난 1987년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장기 집권을 방지하는 데 무게를 두었다. 그 결과 탄생한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해서는 20여 년이 지난 오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현재의 5년 단임제는 대통령이 국회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 때문에 국회와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대통령이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갈등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레임덕 현상도 빨리 온다. 임기 초반에 사업을 추진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임기가 중반을 넘어선 이후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장기적인 국정 수행은 엄두도 못 낸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정책의 연속성은 보장할 수 없다.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인 ‘정치적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구조이다. 일단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정치적 책임을 묻는 방법이 ‘탄핵’ 외에는 전무하다. 선거로 심판하고 싶지만 정작 책임을 물어야 할 현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그 불똥은 억울하게도 차기 대권 후보가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5년 단임제의 대안으로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다양한 권력 구조를 놓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논의되는 권력 구조의 특징은 현재의 5년 단임제보다 대통령의 권력을 줄여 균형과 견제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데 있다. 논의되는 안 가운데 한 발짝 앞서가고 있는 것은 ‘대통령 4년 중임제’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치인과 국민 양쪽 모두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다.

대통령과 내각으로 분리한 ‘이원집정부제’도 떠올라

ⓒ시사저널 유장훈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4년 중임제는, 정치적 책임을 묻고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대신에 현재보다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중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의 실적을 평가할 수 있고, 재선을 통해 4년을 더 보장받을 경우 정책의 지속성도 가져갈 수 있다. 미래한국헌법연구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4년 중임제는 미국식 부통령제를 도입하면서 원래는 내각제에서 두고 있는 총리직을 없애거나,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삭제해 입법권을 의회 고유의 권한으로 돌리는 등의 선택지를 담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도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원집정부제란 행정부를 대통령과 내각으로 분리해 각각 실질적인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정부 형태를 말한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의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이 윤대규 경남대 교수에게 의뢰해 진행한 ‘한국 헌법의 개헌에 관한 연구-정부 형태를 중심으로’라는 용역 보고서에서는 최종적인 대안으로 이원집정부제, 즉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고 있다. 보고서는 “5년 단임제에서 지적되는 문제는 4년 중임제에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라고 지적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외교와 국방, 통일 등 외치에 한정하고 내정은 총리에게 맡기는 형태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60년 제2공화국에서 잠깐 시도된 바 있는 의원내각제도 후보군 중 하나이다. 의회 다수당의 대표가 행정부의 수반이 되는 의원내각제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독점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서상 국민들을 설득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서 국회의원들 중심으로 권력이 재편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냐”라고 말했다.

한국헌법학회장인 신평 교수는 “우리의 헌법은 현행의 5년 대통령 단임제도 문제이지만, 그 못지않게 개정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상당히 많다”라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는 ‘영토’ 설정

우선 20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하게 변한 부분은 남북 문제이다. 1987년 현행 헌법에서 ‘통일 조항’이 만들어진 이후 영토 조항과 통일 조항 사이의 상충 문제는 헌법 분야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헌법 3조에서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체라고 하면서 4조에서는 통일하겠다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이야기이다. 통일은 북한의 존재를 인정해야 가능한데 3조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충돌이 발생한다. 반면, 국제 사회는 이미 유엔에 가입한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보고 있고 국민적인 인식 역시 국제 사회와 다르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영토 문제를 개헌에서 가장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로 보고 있다. 이념 충돌의 개연성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토 조항의 경우는 국가보안법의 헌법적 근거이기도 하다. 진보 진영의 경우는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영토 조항을 손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노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에 진보 진영이 반대했던 이유는 당시의 제안이 권력 구조에만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는 “영토 조항의 수정 개헌은 노 전 대통령의 개헌 때부터 제기했던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개헌을 기점으로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확대될 것인지도 관심사이다. 우리 헌법에서는 국민투표제만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의 부의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고 국민소환제 대신에 주민소환제만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게다가 직접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 요소인 국민발안제의 도입 여부는 개헌 때 논의될 여지가 많다. 국민발안제의 경우 설혹 도입이 결정된다고 하더라고 국민 발안의 범위를 헌법과 법률의 개정에도 둘 것인지, 국민 발안으로 제안된 법안이 국회의 의결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것인지 등 절차의 문제가 새로운 논쟁거리로 등장할 수 있다. 의회 정치가 중심을 이루는 현재의 정치 문화에서 단지 발안권만을 부여했다고 국민의 실질적인 정치 참여가 늘어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가 경제 전반에 대해 규제와 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헌법 제119조 2항은 오래전부터 논쟁거리였다. 지난해 11월11일 경기개발연구원(원장 좌승희)은 ‘한국 헌법,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정책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우리 헌법은 제119조 2항에서 ‘균형 성장’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민주화’ 등을 이유로 국가가 경제에 규제할 수 있도록 넓은 문을 열어놓고 있다”라고 말하며 이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재벌기업과 전경련 등의 보수 경제 단체들은 119조 2항의 삭제를 요구해왔다. 좌승희 원장 역시 “개헌 논쟁에 대비해서 헌법학자, 경제계 인사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다”라고 밝혔다. 119조 2항은 경제 민주화 조항으로 일명 ‘김종인 조항’으로 불린다. 이 조항은 1987년 9차 개헌 때 김종인 전 의원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설득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정부가 기업을 제재할 수 있는 상황이 왔을 때 헌법재판소가 기업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22조에 토지 공개념 집어넣자”

이참에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토지 공개념 제도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헌법 제122조는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현재 “122조 하나로 충분하다”라는 주장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언급될 때마다 위헌 시비가 일어나는데 122조에 조항을 둬서 더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라는 주장이 대립 중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 평화, 소수자 권리에 관한 부분은 개헌이 된다면 전향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평등권을 규정할 때 현재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으로 명시되어 있는 차별 금지 사유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 부부의 증가 등과 맞물려 시대에 맞게 조정될 개연성이 있다. 여야 국회의원 1백86명이 속해 있는 미래한국헌법연구회의 2008년 정책 보고서에서는 “장애·인종·언어를 차별 금지 사유로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인종에 대한 차별 금지 사유는 속인주의의 변화와 맞닿아 있어 주목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사생활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인 자유권은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게 한층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보화 시대와 한참 동떨어져 있던 1987년 체제의 기본권 조항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회의장 직속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위원장 김종인)는 현행 헌법이 정보화 등 시대 변화를 담고 있지 못하므로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사생활 및 알 권리 보호 등을 포함하는 ‘정보기본권’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현의 자유 역시 중요하다. 특히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와 소통이라는 정보 사회의 핵심 원리를 담아낼 수 있는 헌법 조항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해 7월 미래한국헌법연구회의 주최로 열린 개헌 토론회에서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국민의 알 권리 등 정보의 자유와 개인정보 통제권에 대한 규정을 신설해 ‘정보화 사회의 룰’을 만들어나갈 필요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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