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어지럽히는 ‘막말 전쟁’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6.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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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사이 저차원 공격 난무…감정 싸움에 치우친 채 논리 대결은 실종

▲ 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공동대표(왼쪽 사진)는 인터넷 매체 ‘빅뉴스’를 통해 진보 진영을 공격하고 있다. 전유경 ‘와이텐뉴스’ 아나운서(오른쪽)는 ‘듣보잡’ 발언으로 변대표에 일침을 가하면서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직 국가정보원 간부 출신인 송 아무개씨. 그는 하루에 3~5통씩 각계각층에 e메일을 보낸다. 주된 내용은 북한과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 내용이다. 송씨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1년 넘게 메일을 보내고 있다. 지난 6월11일 하루 동안 ‘유시민이라는 자’ ‘YTN에 올라온 빨갱이 선동’ 등 무려 일곱 통의 메일을 보냈다. 송씨의 ‘빨간색 증후군’에는 어린 시절의 아픈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송씨가 아홉 살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좌익과 우익은 서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곳곳에서 집단 학살이 벌어졌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그의 아버지도 희생되고 말았다. 그런데 송씨는 아버지가 좌익 인사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그 뒤 송씨는 ‘아버지를 죽인 좌익’에 대해 분노와 증오를 품어왔다. 그가 국정원에 입직한 것도 ‘좌익들을 때려잡기 위해서’이다. 만약 그의 아버지가 우익의 손에 희생당했다면 그는 ‘극좌’가 되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우리 시대의 좌익과 우익은 분단의 비극과 아픔의 상징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좌우의 대립은 여전하다. 서로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대결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영락없는 제2의 ‘한국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양측의 싸움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북한 핵실험, 시국선언, 6·10 항쟁 22주년 등을 전후해서 절정에 달했다.

양쪽의 시각 차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좌우 이념에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철천지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도 이보다 더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 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공동대표,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이들은 인터넷 매체나 개인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이들의 무기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막말과 독설이었다. 시민단체, 언론 매체도 양쪽으로 나뉘어 난타전을 벌였다. 여기에 네티즌까지 가세하면서 인터넷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중도 성향의 한 대학 교수는 “정면으로 마주보고 달리는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와 같다”라며 혀를 찼다.

변희재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공동대표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의 대결은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했다. 두 사람의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싸움은 인터넷 방송 <와이텐뉴스>의 전유경 아나운서가 가세하면서 감정 대립으로 치달았다. 급기야 고소·고발이 이어지면서 법적 싸움으로 비화되었다. 변대표와 진교수가 대결에 나선 것은 지난 1월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교수가 진보신당 게시판에 ‘가엾은 조선일보’라는 제목으로 “이제는 듣보잡 데려다가 칼럼란 채우는 신세가 되었다”라며 조선일보와 변대표를 비난했다.

변대표는 지난 5월25일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르겠다고 발표하자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빅뉴스에 ‘노대통령의 장례, 국민 세금 들이지마’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세금 1원도 쓸 수 없다”라며 국민장을 반대했다. 그러자  <와이텐뉴스> 전유경 아나운서가 “웬 듣보잡이 관심 받고 싶어 이때다 하며 튀어나온 것일까요”라며 일침을 놓았다. 변대표는 하루아침에 네티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전아나운서는 인터넷 검색 순위가 급상승하며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변희재·진중권 격돌, 법정으로까지 비화

진교수와 변대표는 한동안 휴전 상태였다가 한국종합예술학교 강의료 문제로 다시 맞붙었다. 지난 5월20일 한국종합예술학교 황지우 총장이 사퇴한 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학교 객원교수로 있었던 진교수에게 2학기 강의를 하지 않았다면서 부당 수령한 1천7백36만원의 강의료를 회수하라고 요구했다. 진교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강의료 부당 수령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바로 변대표라고 지목하면서 두 사람의 싸움이 격화되었다.

진교수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변대표를 공격하자 변대표는 ‘권리 침해 신고’로 맞섰고, 진교수는 블로그를 구글이 운영하는 블로그스팟으로 옮겨간 후 변대표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변대표는 ‘듣보잡’이라는 불법적 표현 남용에 대해서 진중권 교수와 전유경 아나운서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검찰은 진교수 고소 사건을 첨단범죄수사 2부에 배당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도 자신의 홈페이지 ‘김동길의 Freedom Watch’의 ‘이명박 대통령에게’라는 편지글을 통해 연일 시국을 비판하고 있다. 김교수의 공격 대상은 야당과 진보 세력이다. 그는 지난해 5월1일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6월12일 현재 4백8개의 글을 올렸다. ‘배후 세력을 잡지 못하면’(5월20일), ‘핵실험에 겁을 먹어서야’(5월27일), ‘정권 교체는 아직도 멀었습니다’(5월30일), ‘곤두박질하는 한국 민주주의’(6월12일), ‘남파된 간첩은 다 죽었습니까’(6월11일) 등이다.

극우 성향의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는 지난 5월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인내에 한계를 느낀다’라는 글에서 “노무현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 거기에 더해 노무현 자신도, 부인도, 식구들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조소받는 거짓말을 했다. 패가망신의 도피처로 자살을 택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라며 “운명을 다한 노사모들이 시체를 가지고 유세를 부리며 단말마적 행패를 부리는 것도 못 봐주겠고, 무대 뒤로 사라졌던 역대 빨갱이들이 줄줄이 나와서 마치 영웅이나 된 것처럼 까불어대는 모습도, 감옥에 있던 노무현 졸개들이 줄줄이 기어나와 얼굴을 반짝 들고 설쳐대는 모습도 참으로 꼴불견들”이라며 추모 열기를 맹비난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하는 글을 올리는 등 진보 진영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사이버 공간에서도 똑같이 반영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도 같은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양 극단으로 치닫는다. 중간자적 입장은 무시되고 기회주의자로 내몬다. 자신의 성향을 떠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이권을 얻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상대방을 비방할 때도 도를 넘어서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넷은 쌍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고 전달할 것이 아니라 남의 생각도 존중해야 한다. 악플만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막말과 독설도 지나치면 범죄에 가깝다. 보수와 진보 진영은 감정적인 대립을 지향하고 논리적인 대결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간단한 말로도 남을 감동시키거나 폐부를 찌를 수 있는 ‘촌철살인’이 아쉬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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