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라는 것은 없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7.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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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붕괴되는 위기의 사회 조명해 ‘고향 같은 사회’ 제안

각종 매체로 전해지는 다문화가정의 생활 모습과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보여주는 모습에서 한국도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로 가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의 재창조>라는 책은 ‘그건 당신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내부 결속도 안 되는 동네에서 외지인과 동료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인 듯하다.


영국 런던의 유대인 대학 총장을 역임하는 등 유대교 지도자로 활동해온 저자는 “오늘날 다문화주의는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것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왔다”라고 말했다. 관용을 지향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다문화주의가 적용된 국가들에서 그 결과는 예전보다 더 배타적이고 편협하며 신경질적인 사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영국·스페인·프랑스·미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들려주며 다문화주의가 허상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기술의 혁명과 실시간 글로벌 통신기술은 국가 정체성의 상실과 사회의 파편화라는 구조적 현상을 불러왔다. 도덕성에 대한 신뢰 상실, 가족의 붕괴 현상, 부모의 역할에 대한 신념의 상실도 같은 맥락에 있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글로벌 경제와 자유 시장으로 인해 옆집에 사는 이웃보다 먼 나라에 있는 사업 파트너를 더 가깝게 느끼는 글로벌 엘리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변화들은 사람들이 주변의 이웃들과 다음 세대에게서 느끼는 운명 공동체로서의 연대의식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족 공동체의 성격이 옅어진다고 해서 다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자체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다문화 사회에서 이주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주제로 열린 인권회의장의 이주민들. ⓒ연합뉴스
사회가 분열될 때, 정치는 합법성을 잃는다. 자신이 소속되어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 사회의 법률과 정부 권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 개인들이 사회를 꾸역꾸역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정치가 합법성을 되찾고 파편화된 사회를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들이 협력하고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확고한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저자가 지향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모델은 ‘고향 같은 사회’이다.


이웃·다음 세대와 연대 의식 강화 조건


저자는 사회를 세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 시골 별장 사회, 호텔 사회, 고향 사회이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모델인 시골 별장과 호텔 사회를 지양하고 고향 같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골 별장 같은 사회에서는 집주인이 아무리 관대하다 할지라도 외지인들은 어디까지나 그 집의 손님일 뿐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다. 그 별장은 그들의 집이 아니다. 그곳은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영역에 속해 있다. 즉, 자신이 가꾸어야 할 사회가 아닌 것이다. 호텔 같은 사회는 비용을 지불하고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사회이다.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 투숙객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호텔과 투숙객은 순수한 계약 관계로 맺어져 있다. 손님은 호텔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나버린다. 이런 사회 또한 정착하고 가꾸어갈 수 없는 사회이다.


그러나 고향 같은 사회는 어떤가. 이주민들의 거주지는 그들이 떠나온 곳의 특성이 아니라 현재 살고 있는 도시의 특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터전을 건설하고 주인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창조한다. 이 모델은 앞서의 두 모델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그 결실은 사뭇 다르다. 이주민들은 이곳에서 그들의 거처, 즉 고향을 찾았다고 느낀다. 그들은 길손의 자격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자부심을 갖는다. 또한, 호텔에서와는 달리 마을 사람들과 참된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협력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자신만의 삶, 특정 집단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향’을 제시하며 다수와 소수 양자의 정체성 모두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는 정적인 세계가 아니라 역동적인 세계이다. 그것은 단순히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다. 사회는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서로 다르면 다를수록 함께 만들어갈 사회의 가능성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차이를 분리가 아닌 기여의 관점에서 보는 사회는 소속감을 창조하며, 이는 ‘동화’되는 것이 아닌 ‘통합’을 이끌어낸다.


국내 대학들도 학교 명칭 앞에 자연스럽게 붙였던 ‘민족’이라는 말을 내린 지 오래다.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가 독재와 폭압을 막아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시민적 민족주의’를 제안하며 공동의 정체성을 강화한다면 공동체 붕괴라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색과 종교가 달라도 모두가 공공선(公共善)에 기여하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향’은 참 쉬울 듯하지만, 아직은 ‘머나먼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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