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 없는 선전이 한국 영화 기 살린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7.0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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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급 공무원> 4백만 이어 <박쥐> <마더>도 2백여 만 동원 여름 시장 방어할 블록버스터의 성공 여부가 분수령 될 듯

▲ 멀티플렉스 용산 CGV에서 영화 관람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 ⓒ시사저널 이종현

한국 영화가 부활의 나래를 펴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봉해 올해까지 흥행세를 이어온 <과속 스캔들>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흥행작을 배출하고 있다. 한국 영화의 강세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에도 한국 영화 두 편이 상위에 올랐다. 6월11일 개봉한 <거북이 달린다>가 58만명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고, 18일 개봉한 <여고괴담5-동반자살>은 24만명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거북이 달린다>는 개봉 첫 주에 비해 관객이 늘어나는 추세로 장기 흥행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반기 흥행작을 살펴보면 한 영화가 흥행 전반을 이끌기보다 규모나 장르가 다양한 작품들이 고르게 선전했다. 한국 영화의 선전이 지속성을 지닐 것이라고 기대되는 이유이다. 한국 영화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영화계도 활력을 찾고 있다. 한동안 침체에 빠져 있던 제작 현장의 분위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개발 단계에 있는 영화들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9년 상반기는 한국 영화가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백만 관객을 동원한 <과속 스캔들>의 뒤를 이어 <7급 공무원>이 4백만 관객을 동원했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가볍고 완성도 있는 코미디 영화들이 선전했다. 한국의 대표 감독 박찬욱의 <박쥐>와 봉준호의 <마더>도 각각 2백20만, 2백6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언론 시사 후에 “대중성이 약한 것이 아니냐”라는 평가를 받았던 <박쥐>의 흥행 성공은 감독 브랜드의 가치를 입증해준 것이다. <워낭소리>의 흥행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독립영화가 3백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앞으로도 다시 나오기 힘든 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작전> <인사동 스캔들> 등 독특한 소재의 영화들도 100만 관객을 넘어섰고, <똥파리> <낮술> 등의 독립영화도 흥행에 성공했다.

독립영화 성공도 이례적인 일

2009년의 성공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자료에 따르면 6월25일 기준으로 한국 영화는 3천1백9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점유율 46.04%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2천5백9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고, 점유율도 37.27%에 불과했다. 그것도 지난해 상반기를 강타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추격자> 두 편의 선전에 따른 것이다. 두 작품이 막을 내린 5월의 한국 영화 점유율은 7.77%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올해는 37.55%를 기록한 3월을 제외하고는 매달 40%대 중반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영화 흥행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의 흥행은 영화 제작 현장에도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7급 공무원>의 홍보를 담당한 퍼스트룩의 강유경 대리는 “침체기가 길어 당장 제작 편수가 늘어나거나 하는 급작스러운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 홍보 쪽도 영화 흥행의 영향을 바로 받는 분야는 아니라서 큰 변화는 못 느낀다. 그래도 개발 중인 작품에는 활력이 생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첫 영화로 2백만 관객을 동원하고 두 번째 작품의 캐스팅 작업에 들어간 한 영화감독은 “제작 편수가 예년의 반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보니 한국 영화의 호조가 표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지금 진행하는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상반기의 흥행만으로 한국 영화의 부활을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여름 시장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성수기인 여름 시장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파고를 온전히 넘어서야 비로소 한국 영화의 부활을 얘기할 수 있다. 당장 6월24일에 개봉한 <트랜스포머2 : 패자의 역습>의 흥행세가 태풍급이다. <트랜스포머2>는 개봉 첫날 46만8천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31만명을 기록한 전편은 물론 1천만 관객을 동원한 <괴물>의 44만명도 넘어선 기록이다. 첫날의 흥행이 롱런을 보증하지는 못하지만 대단한 기세이다. 7월15일에는 고정팬층이 두터운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개봉한다.

이들과 대결해 여름 시장을 방어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대표주자는 <해운대> <차우> <국가대표> 등이다. 이들이 할리우드의 물량 공세를 이겨내고 흥행에 성공하면 한국 영화의 흥행가도가 장기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의 제작비 규모를 할리우드 영화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제작비 1백50억원의 <해운대>와 70억원 정도인 <차우> <국가대표>는 규모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지난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블록버스터 라인업에 비해서도 뒤져 보인다. 하지만 기대를 거두기는 이르다. 나름으로 비장의 무기를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7월23일 개봉하는 <해운대>의 무기는 50억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쓰나미의 재현이다. “<해운대>의 주인공은 쓰나미이다”라고 말하는 JK필름의 이지승 제작PD의 설명처럼 사실적인 쓰나미의 위용이 흥행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할리우드 재난영화와는 달리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인간적인 영화이다”라고 밝힌 윤제균 감독 특유의 감동 코드가 시너지를 발휘한다면 흥행을 기대할 수 있다. 한 주 앞서 7월16일 개봉하는 <차우>는 멧돼지의 습격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앞세우고 있다. <차우> 역시 30억원을 투입해 재현해낸 멧돼지가 흥행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7월 말 또는 8월 초에 개봉할 <국가대표>는 CG보다는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제작사인 KM컬쳐의 조정화 과장은 “코믹과 감동 코드가 있어 타깃층이 넓다. <미녀는 괴로워>의 김용화 감독과 하정우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어 스포츠영화 특유의 감동을 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올여름 개봉 예정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 영화들. 왼쪽부터 의 영화 스틸 컷, 의 부산 촬영 현장.



부활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블록버스터는 양날의 칼이다. 잘되면 한국 영화 산업의 붐을 조성하지만, 잘못될 경우 영화 산업 전반에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 영화 부활을 기대하면서도 언뜻 무게감이 떨어져 보이는 올여름 한국형 블록버스터 라인업에 불안감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블록버스터가 넘어지는 것은 한국 영화계의 재앙이다. 총 제작비 100억원이 넘게 투입된 영화가 잘못되면 파급 효과가 크고 영화계를 위축시킨다. 제작비를 너무 많이 투입하면 돈을 벌기도 어렵다. 시장에 맞추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최근 영화계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는 관람료 인상이다. 멀티플렉스 체인인 메가박스가 관람료를 1천원 올리면서 CGV와 롯데시네마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관객은 관람료 인상을 꺼리고 있지만 제작 현장은 반색하고 있다. 제작 여건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춘연 대표는 “그동안 관람료 인상이 너무 더디게 진행되었다. 지금이라도 인상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극장과 제작사가 수익을 나누는 비율도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외화는 6 대 4로 나누는데 한국 영화만 5 대 5로 나누는 것은 불합리하다”라고 말했다. 한국 영화의 흥행이 활발한 제작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창작자가 성과를 가져가고 이를 영화 제작에 재투자하는 구조가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시사저널 임준선
이춘연 씨네2000 대표는 최근 한국 영화 제작자 중 가장 바쁘다. 그는 1주일 새에 두 편의 작품을 극장에 내걸었다. 6월11일 개봉한 <거북이 달린다>와 18일 개봉한 <여고괴담5-동반자살>은 나란히 흥행에서도 성공적인 출발을 보였다.

- 올해 한국 영화들의 성적이 좋은 편이다.

<과속 스캔들>과 <7급 공무원>이 아주 잘 되었고, <박쥐> <마더> 같이 국내외에서 칭찬받은 문제작들의 성적도 좋다. 그렇다고 제작 환경이 확 달라지거나 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근근히 연명하며 어렵게 제작하고 있다. 제작에 들어가 있는 작품도 10억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간 것들이 대부분이다.

- 흥행작의 배출이 현장 분위기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인가?

제작자 입장에서 한 번도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다. 호황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개발비를 미리 받을 수 없다는 정도가 어려움일까. 영화계에서 자본이 빠져나간 것은 영화계가 자초한 부분도 있다. 너무 방만하게 운영했고, 매력 있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잘 될 만한 영화에 골고루 투자했어야 하는데 그런 영화는 자기들끼리 하고 리스크가 있는 영화는 외부의 투자를 받다 보니 투자하는 회사들이 돈을 못 벌었다.

- 영화계의 체질 개선 움직임은 없나?

그동안 너무 높았던 제작비를 절감하고 있는 추세이다. 30%까지는 줄여야 한다. 가장 비중이 큰 인건비부터 줄이고 있다. 배우들도 잘 따라오고 있다. 저예산 영화에는 무료 출연도 한다.

- 마케팅비도 무시할 수 없는데.

마케팅비는 50%까지 줄여야 한다. <여고괴담>의 순제작비가 15억원인데 마케팅비로 15억원을 썼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어려울수록 몸으로 때워야 한다.

- 얼어붙은 투자를 풀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은 흥행 영화들이 늘어나야겠지만 그렇다고 과거처럼 눈먼 돈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이제는 영화판 자체를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제작하는 사람들이 매력 있는 소재와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렇게 되면 투자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 블록버스터 제작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제일 잘하고 관심 있는 영화를 하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내 영화의 방향이다. 블록버스터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 나는 영화에 CG를 넣는 것도 싫어한다. 블록버스터만 시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블록버스터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내 시장이 빤한데 해외 시장 개척 없이 영화의 덩치만 키우면 관객이 들어도 본전 찾기가 어렵다. 해외 시장 개척도 장사보다는 교류 개념이 되어야 한다. 한국 영화들이 너무 비싸서 수입업자들이 족족 망해버리니 신뢰가 쌓이지 않는 것이다.

-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지켜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네가 잘돼야 내가 잘된다는 동업자 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선적으로 극장과 배급 및 제작은 서로 분리되어야 한다. 대기업이 극장, 투자, 배급, 제작을 다 해버리면 제작자들은 눈치를 보게 되고 종속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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