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산과 전통 있으면 명품 나온다”
  • 김세원 편집위원 ()
  • 승인 2009.07.0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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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브랜드 매니지먼트의 대가 장-노엘 카페레 교수 인터뷰

▲ 카페레 교수는? 프랑스 HEC 파리 MBA, 미국 노스웨스런대 박사. 국제 학술지에 100편 이상의 브랜드 매니지먼트 관련 논문 등재. 저서 등. ⓒ시사저널 임영무  

오는 8월 아시아 최초의 명품업계 종사자 전문 교육기관인 ‘서울 명품 비즈니스 학원(SLBI·Seoul Luxury Business Institute)’이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다. SLBI는 유럽 랭킹 1위의 비즈니스 스쿨 HEC 파리의 교수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최근 SLBI 초청으로 방한한 ‘럭셔리 브랜드 매니지먼트’의 대가 장-노엘 카페레 프랑스 HEC 파리 교수를 6월24일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1시간이 넘는 단독 인터뷰와 한·불상공회의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카페레 교수의 특강을 통해 명품 브랜드 경영의 특별한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베이지색 재킷 아래, 여밈 부분에 엽전과 한자 로고를 프린팅한 짙은 갈색 셔츠를 받쳐입은 카페레 교수는 “내가 오늘 겐조의 셔츠를 입은 이유는 아시아 명품의 미래를 보여주는 제품이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풍부한 문화 유산과 오랜 역사,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음에도 이렇다 할 한국 국적의 럭셔리 브랜드가 없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LVMH(루이뷔통 모에-헤네시) 같은 럭셔리 브랜드 그룹이 없기 때문이다.

LVMH 같은 그룹이 신생 명품 브랜드에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사실 아주 중요한 질문인데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았다.(웃음) 신생 브랜드가 그룹에 속해 있으면 수직적으로는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양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신생 명품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내놓으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할 뿐 아니라 투자된 자본을 회수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불가리는 독립적인 브랜드이면서도 성공한 드문 사례지만 대다수 신생 명품 브랜드는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단독으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 한편, 수평적으로는 그룹에 소속된 시계·가죽제품·패션·화장품·향수 등 제품군이 다른 브랜드 간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명품 브랜드가 그룹에 속해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부정적인 측면은 없나?

물론 있다. 그룹은 개별 브랜드의 사정을 고려하기보다는 그룹 전체의 이익과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가끔 개별 브랜드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룹의 최고 경영자는 바보가 아니다. LVMH의 경우 패션하우스와 시계·보석 브랜드를 분리했다.

명품 브랜드는 어떤 점에서 일반 브랜드와 차별화되는가?

많은 사람이 럭셔리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 또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혼동한다. 럭셔리 브랜드의 고유성은 브랜드 활동이 역사나 문화적 유산과 관련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명품은 태생 자체가 유럽의 귀족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만일 당신이 내일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를 출시하고자 한다면 그 브랜드의 역사를 스스로 발명해야 한다. 미국의 랄프 로렌이나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독립한 톰 포드도 브랜드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패션 브랜드라면 역사나 전통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몽블랑은 모든 사람이 열망하는 ‘신성한’ 펜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했다. 이는 글씨를 쓴다는 기능의 범주를 뛰어넘어 특정한 취향을 반영하고 있으며, 고객들은 자신만을 위한 1 대 1 서비스를 통해 만족과 기쁨을 얻는다. 파텍 필립 같은 최고급 명품 시계 브랜드는 매년 몇 십초씩 늦어지지만 고객들은 개의치 않는다. 시간의 정확성이라는 기능을 중시한다면 세이코 시계를 사는 편이 훨씬 낫다. 우수한 품질의 바탕 위에 특정 취향과 쾌락주의(hedonism)가 결합된 감성적인 제품이라는 점에서 명품은 품질과 기능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프리미엄 제품과도 구분된다.

금융 위기 이후 명품 브랜드 가운데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인터넷은 명품 브랜드가 구축한 자신만의 이미지와 판타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훌륭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역할과 온라인 명품 판매는 별개의 문제이다. 명품 브랜드가 아마존이나 이베이처럼 전세계 어디서든 아무나 접속해서 자신들의 제품을 사는 것을 허용하고 즉시 배달한다면 이는 명품 브랜드의 핵심 가치인 배타성(exclusivity)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에게는 켈리백이나 페라리처럼 주문을 하고 2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접근의 제한성이 매우 중요하다. 온라인 판매를 한다면 단기적으로 매출이 상승할 수는 있으나 럭셔리로서의 지위는 상실하게 된다. 일반 제품의 점포(shop)와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명품 브랜드 매장은 고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에 점포가 아니라 하우스(house)라고 불린다. 그렇다고 명품 브랜드와 인터넷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카르티에처럼 고객들이 온라인으로 접속할 경우, 고객의 취향과 특성을 파악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일반 매장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한정판 제품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명품 브랜드 간에 서열화가 가능한가?

명품 브랜드를 수직적으로 분류한다면 그 기준은 접근성의 정도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명품은 배타적이다. 명품은 많이 팔리는 것보다 누가 사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접근성을 열어놓되 선별된 특정 계층에게 접근성을 허용하는 것이 명품 브랜드의 요건이다. 그렇다고 고객의 접근성을 아예 봉쇄하면 비즈니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명품 브랜드들은 고가 정책으로 접근 불가와 개방성 간의 균형을 유지한다.

에르메스 같은 명품 브랜드는 창의적인 스타일보다는 장인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명품 중의 명품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명품 브랜드를 수평적으로 분류한다면 제품 자체에 집중하는 브랜드와 스타일에 집중하는 브랜드로 나눌 수 있다. 에르메스와 카르티에는 오랫동안 기술력과 품질을 중시하는 전략을 채택해왔는데, 에르메스의 경우 2003년 장 폴 고티에를 영입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구치의 톰 포드, 디오르의 존 갈리아노, 루이뷔통의 마크 제이콥스, 지방시의 알렉산더 매퀸 등 프랑스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들이 영미계인 이유는 무엇인가?

유럽 문화예술 중흥에 큰 역할을 한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를 생각해보라. 메디치가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이들 명품 브랜드도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출발했지만 세계적인 명품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굳이 국적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국의 국가 이미지는 명품 탄생에 도움이 되는지 평가해달라.

국가 이미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만들어가는 현재형이다. 따라서 한국의 영화감독, 예술가, 기업들이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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