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 유동성 벼락에 날개 꺾이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7.0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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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까지 새 투자자 확보 못하면 채권단에 대우건설 넘겨야…“계열사 매각만으로는 불끄기에 한계” 지적도

ⓒ시사저널 임준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운명을 가를 ‘디데이’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금호그룹은 지난 6월1일 채권단과의 재무구조 개선 약정(MOU)을 맺었다. 오는 7월 말까지 새로운 재무적 투자자(FI)를 모집해 4조원 규모의 대우건설 풋백옵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협정 내용의 골자이다. 이 기간을 넘기면 대우건설은 주인이 금호그룹에서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사모펀드(PEF)로 바뀌게 된다. 강철구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금호그룹은 지난 2006년과 2008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재무 부담이 커졌다. 채권단과 체결한 MOU 이행 여부가 금호그룹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대우건설은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대한통운 대주주이다. 현재 대한통운 지분 23.95%를 보유하고 있다. 대우건설이 넘어가게 되면 대한통운의 앞날도 불투명해지게 된다. 때문에 금호그룹측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대우건설만은 놓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새로운 투자자와의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7월까지 FI를 모집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금호그룹은 계열사에 대한 매각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나 아이디티와 금호오토리스 등을 매각해 2천억원 정도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비상장사인 금호생명과 홍콩의 금호건설&엔지니어링 유한공사, 서울고속버스터미널(금호 지분 38.74%)도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 이들 계열사까지 처분하면 대우건설 풋백옵션 문제와 함께 불거진 그룹의 유동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그룹측은 기대하고 있다.

대우건설 주인 바뀌면 대한통운 앞날도 불투명

금호그룹이 지난 6월1일 뒤늦게 채권단과 MOU를 체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 그룹 중에서 금호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8개 그룹은 전날인 5월31일에 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금호는 대우건설의 거취 문제를 놓고 채권단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채권단은 6월 말까지 재무적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면 대우건설을 넘기라고 압박했다. 금호는 9월 말까지 시간을 달라고 맞섰다. 결국, 양측은 마감 시한을 하루 넘긴 6월1일에 최종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금호그룹의 의도대로 FI와의 협상을 위한 시간을 어느 정도는 번 셈이다. 그러나 시장의 판단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손해를 보면서 풋백옵션을 떠안을 기관이 과연 얼마나 있겠느냐’라는 것이다. 금호그룹이 새로운 투자자를 확보했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들에게는 지금보다 좋은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 현재의 풋백옵션 금리가 8% 수준이다. 새로운 투자자에게는 최소한 이보다 높은 금리를 주어야 한다. 결국, 기존 풋백옵션의 연장선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대우건설 노조도 지난 6월16일 금호아시아나 풋백옵션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윤진국 대우건설 노조 교육법규부장은 “새로운 FI를 끌어들이는 것은 풋백옵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산소 호흡기를 통해 시간만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더욱 악화된 풋백옵션으로 투자자를 유치한다면 대우건설뿐 아니라 그룹 전체에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채권단 내부에도 이같은 시각이 적지 않다. 금호는 현재 구조조정 대상 그룹 중에서 유일하게 이 문제에 대비한 태스크포스 팀이 결성되어 있다. 오는 7월 말 나타날 수 있는 변수를 의식한 탓이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호그룹이 새로운 FI를 모집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조건 등이 기준에 미달할 경우 예정대로 대우건설 인수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금호그룹이 기한만 맞추기 위해 과도한 풋백옵션 프리미엄을 내걸 수도 있다. 이럴 경우에 대비한 방안도 마련된 상태라는 것이 산은측의 귀띔이다.

계열사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 계획도 불투명하다. 금호그룹이 올해 말까지 확보해야 할 자금은 대우건설 풋백옵션을 포함해 최소 6조원 정도이다. 당장 올해 말 돌아오는 2조원 정도의 채권 자금이 필요하다. 여기에 금융 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열사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추가로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금호그룹의 유동성 확보 계획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계열사인 금호생명이 대표적인 예이다. 금호그룹은 현재 금호생명 매각을 통해 1조원 정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장담한다.

그룹 대출금만 7천억원… 금호생명 매각하면 오히려 위기

그러나 금호그룹이 금호생명에 7천억원 정도의 대출을 받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금호생명의 매각 대금은 금호측의 장담과는 달리 5천억원대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금호생명을 매각한다 해도 2천억원 정도를 되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금호그룹측은 “금호생명을 매각한다고 해서 무조건 대출금을 갚을 필요는 없다. 새로운 인수자와 협의를 통해 계약을 연장할 수도 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호그룹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금호생명이 매각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7천억원에 달하는 그룹 대출금 때문이었다. 매각 협상 과정에서 인수자측이 그룹에 대출한 7천억원을 처리할 것을 요구하면서 매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른 인수자 역시 비슷한 조건을 내걸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우건설은 최근 금호생명에 묶인 그룹의 대출금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대우건설의 ‘퇴직신탁 및 보험 운영 현황’ 문건에 따르면 대우건설의 퇴직신탁 및 보험의 납입 총액은 모두 1천3백30억원에 이른다. 이 중 주거래 은행인 우리은행(4백30억원)과 액수가 적은 미래에셋생명(6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1천1백2억원(잔액 포함)은 지난 2006년 금호그룹에 인수되면서 금호생명으로 이관되었다. 2007년 12월 교보생명과 대한생명에 있던 2백10억원과 2백60억원을, 다음 해 6월에는 각각 77억원과 5백55억원을 금호생명에 이관했다. 이로 인해 대우건설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대우건설의 한 관계자는 “금호생명이 대출할 수 있는 한도를 그룹에서 모두 소진했다. 막대한 규모의 퇴직보험이 적립되어 있음에도 계열사라는 이유로 PF 대출조차 받을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때문에 대우건설은 현재 퇴직 보험금 적립 루트를 다양화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월 금호생명에 적립되어 있던 4백70억원을 대한생명으로 이관했다. 올 3월과 5월에도 대한생명과 교보생명에 각각 90억원을 이관했다. 6월에는 농협에 50억원을 이관했다고 한다.

나머지 계열사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금호그룹은 최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38.74%를 내놓았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경우 지분 매각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강남 지역에서 대형 백화점이나 복합 쇼핑몰을 세울 만한 부지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최소 4천억원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나머지 계열사와 사회간접자본(일산대교), 유휴 자본을 매각해도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금호그룹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대우건설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여건은 쉽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더라도 금호에 추후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예정이다.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일시적으로 내놓았다가 재매입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배제할 수 없다”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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