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기용? 대통령께서 잘 판단해 결정하겠죠”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7.01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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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설 나도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 인터뷰

ⓒ시사저널 임영무


산을 좋아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은 유별나다. 그의 산 예찬론은 끝이 없다. “정치 일정에 쫓기다 보면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다. 내가 매일 새벽 산에 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혼자 묵묵히 산을 오르면서 전날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고, 오늘 할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다. 물론 운동도 되고. 또 이렇게 지역구의 주민들과 대화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나.”

6월20일 오전 6시쯤 기자는 이 전 최고위원의 자택을 찾았다. 따로 약속을 정하고 만나기는 어려웠다. 워낙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는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때마침 비가 왔다. 그럼에도 그는 작은 배낭을 메고 우산을 하나 들고 집을 나서는 중이었다. 무작정 따라붙었다.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은 기자를 보고 그는 딱하다는 듯이 “그렇게 산에 오르려구요?”라고 물었다. 그 말의 의미를 기자는 산을 오르면서 느낄 수 있었다. 결코 만만한 동네 뒷산 수준이 아니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산을 오르면서 수시로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은평구 구산동 자택 뒤에 있는 거북산을 매일같이 오르면서 그는 요즘 많은 생각을 가다듬는 듯했다.

그는 과거 중요한 고비 때마다 산을 찾았다. 민주화운동 때에는 지리산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해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충격도 지리산에서 홀로 달랬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는 곧장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지난 3월 귀국했다.

▲ 이 전 최고위원이 북한산 등산 중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그는 강한 이미지로 비친다. 그래서 국정 기조가 ‘화합’이냐, ‘돌파’냐에 따라 그의 중용이 좌우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정권 초기 이상득 의원은 ‘화합론’을 들고 나오며 이 전 최고위원을 밀어냈다. 결과는 실패였다. 5월 마지막 승부수로 내밀었던 ‘친박(친박근혜)계 원내대표’ 카드마저 박근혜 전 대표의 거부로 무산되면서 완전히 동력을 상실했다. 이제 이 전 최고위원 쪽에서 ‘돌파론’을 들고 나올 순서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안상수 의원이 새롭게 원내대표로 선출된 배경에 이재오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얘기가 무성했다. 

그의 거취를 둘러싼 문제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10월 재·보선 출마설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것이 유력하다. 대신 전당대회를 조기에 개최해서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곧 단행될 개각 후보군에도 ‘이재오’가 빠지지 않는다. 총리설도 나온다.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계의 한 의원은 “현 정부가 더 강한 동력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한 총리가 필요하다. 노무현 정권 때 이해찬 총리와 같은 그런 역할이다.
현 상황에서 이 전 최고위원만큼 그에 적합한 인물이 또 어디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최고위원은 “대통령께서 잘 판단해서 결정하시겠지”라고 답했다. 언뜻 보면 원론적인 답 같지만,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다.

6월24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사무실로 한 번 더 찾아갔다. 그는 한결 더 신중해져 있었다. 며칠 일정으로 지방에 내려가는 참이라고 했다. 예상대로 그는 최근의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좀더 구체적으로 물으려고 하면 어김없이 말문을 닫아버렸다. 그 행간에서 의미를 찾아야 했다. 기자가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을 가급적 여기에 그대로 옮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도 지역구를 도십니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나가야죠. 폭우가 쏟아진다면 모를까. 이게 생활이 되어야지, 일이 되어버리면 못합니다. 이제는 내 생활이 됐어요. 여름에 비 온다고 집에 있으면,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어요.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십니까?

오전 6시께에 집에서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돕니다. 월·화·수는 자전거를 이용하고, 목요일 이후는 이렇게 걸어서 산(거북산)에도 오르고, 내려와서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시장 한 바퀴 돌고, 동네 목욕탕 가서 목욕하고. 그리고 사무실 나갑니다. 오후에는 학교에 가고요. 강의 준비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강의는 언제까지 하실 예정인가요?

일단 1학기 강의는 마무리가 됐습니다. 2학기 강의 계획은 아직 안 나왔어요.

그래도 지금이 모처럼 만에 얻은 휴식인 셈이죠?

그렇죠. 젊어서는 민주화운동 하느라고 그랬고, 그 후 정치에 입문해서 지금까지 정말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왔죠. 지금이 그야말로 진짜 좀 쉬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인 셈입니다. 재충전의 기회이기도 하고.

미국에서 혼자 지내기 어렵지 않았나요. 이렇게 매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시다가….

거기서도 꾸준히 운동은 했어요. 근처에 큰 중학교가 있어서 거기서 혼자 운동장 몇 바퀴씩 돌고…. 물론 혼자 있으니 외롭고 대화 상대도 없고 그랬죠. 하지만 많은 공부가 됐어요.

해외에 나가 계신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죠?

처음이죠. 안에서는 몰랐는데, 밖에 있으니까 한국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문제점도 보이고. 한국이 참 빨리 경제 성장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그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반면에 우리보다 뒤처진 국가들이 무섭게 우리를 추월하려고 들고 있죠. 그런 모든 것이, 한국이 지금 국제 사회에서 어떤 처지에 있고, 지금 당장 절실한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 밖에서는 다 보이는 거예요.

최근에 한 대학 강연에서 ‘북한은 안고 가야 한다’는 발언을 하셨죠?

그랬죠. 지금은 일단 북한을 내버려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벼랑 끝까지’라는 말을 하는데, 어쨌든 북한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한 번 해보라고 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거지요. 설마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으리라고 보는 거니깐. 그 다음에 대화에 끌어들이는 겁니다. 어쨌거나 북한은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숙명이다, 남북이 당분간 공존을 해야 하고, 어쨌든 간에 우리는 북한을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좀더 인내하고 기다리는 거죠. 북한도 반드시 바뀌리라고 봐요.

‘동북아평화공동체’ 구상이란 것은 뭔가요?

우리의 나아갈 길은 북쪽밖에 없습니다. 만주 대륙과 중국을 통해 아프리카의 모로코, 이집트로 연결되고 시베리아 벌판, 러시아를 통해 유럽과 연결되는 거죠. 그 길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고, 미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을 끌어안아야 하고, 중국 러시아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하겠죠. 지금은 다행히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보다 경제력이 좀 뒤처지니까 우리가 개발에 나서겠다고 할 여지가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 만약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를 추월하면, 그때는 그나마 그런 기회조차 잃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지금 나서야 합니다.

작가 황석영씨의 구상과도 비슷하네요. 두 분이 친하시죠?

그렇죠. 친하죠. (황씨가) 다른 목적 없이 순수하게 그런 차원에서 자기의 뜻을 펼치고 싶어 해서 주장한 건데, 우리 사회가 자꾸 이념만의 잣대로 발목을 잡아서 주저앉히는 게 안타깝죠. 이제 그런 족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계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안에서 너무 다투니까, 안타깝죠.

황작가와 이명박 대통령을 혹시 의원님이 연결하신 것은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황작가가 순수하게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은 열정이 이대통령의 뜻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봅니다.

과거 민주화운동 할 때 북한에 대해서는 많은 공부를 하셨죠?

그랬지. 북한에 대해서는 좀 알죠.  

그래서 그런가요. 일각에서 대북 특사설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글쎄. 밖에서는 그런 말들이 나온다는데, 나는 직접 들어보지 못했으니….

이제는 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책임 정치 구현이라는 측면도 있고.

보다시피 나는 현실 정치하고 아직 떨어져 있어요. 그런 얘기를 전해 들을 형편에 있지 않아요. 내가 참 말하기도 조심스러워요. 그냥 한마디만 하면 그게 마치 무슨 큰, 뭐가 있는 것인 양 (언론에) 크게 나오고. 또 누가 뭘 하면 그 배후에 누가 있네 하고 나오니…. 그래서 말하기가 참 조심스러워요.

최근 입각설과 관련한 얘기도….

나 말고도 일할 사람들이 많은데 뭘….

과거 정권에는 책임 있는 참모들이 많았는데, 현 정부에는 그게 약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정권의 이해찬 총리라든가….

그렇지. 이해찬 총리가 책임감 있게 그런 역할을 했죠.

그래서 이제 그 역할을 이 전 최고위원 같은 분이 좀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은데요?

글쎄. 대통령께서 잘 판단해서 결정하시겠지.

이미지가 좀 강성이시죠?

내가 지금껏 쉬지 않고 달려만 왔으니….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에는 군사독재 정권과 싸웠고, 감옥도 다녀왔죠. 지난 야당 시절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정권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를 견제하고 맞서 싸워야 했고. 또 대선 때는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그래 그런 거죠. 하지만 야당 원내대표 시절에도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어요.

지금 한나라당도 사정이 참 복잡합니다. 가끔 당 소식은 들으시죠?

가끔 통화하는 정도죠. 당이 중심을 잡아서 힘 있게 잘 끌고 나가야겠죠. 또 그렇게 돼가는 것 같던데…. 밖에서 기자들이 보기에는 한나라당이 어떤가요?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갈등의 골이 예상외로 굉장히 깊은 듯한데요.

친이든 친박이든 다 각각의 내부 사정이 있어요. 그런 속을 다 폭넓게 봐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봐서는 안 되죠.

당·청 간에 소통이 안 된다는 불만도 많은데요.

그분(이대통령)이 대화가 안 되는 분이 아닌데…. 누구보다 격의 없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잘 하시는 편인데. 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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