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당신 몸속을 치료한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7.0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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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속도 빠르고 정교하나 비용 비싼 것이 흠…우리나라 수술 수준은 세계적

▲ 수술실 모습이 변하고 있다. 로봇을 이용한 수술에서 의사는 환자와 멀리 떨어져 있다. 기존 개복수술 장면(아래)과 비교된다.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7월1일 오전, 전립선암 환자 김명식씨(73·가명)는 서울 신촌에 있는 연세세브란스병원 수술대에 올랐다. 의료진이 김씨를 마취시킨 후 복부에 5~8mm 남짓한 구멍 네 개를 뚫는 것으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구멍으로 쇠꼬챙이처럼 생긴 네 개의 로봇 팔이 들어갔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네 개의 로봇 팔은 상하 좌우로 분주히 움직였다. 겉으로 보아서는 로봇 팔이 환자의 뱃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수술실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모니터를 통해 로봇 팔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봇 팔 끝에 달린 수술칼, 집게, 가위가 움직이더니 암덩어리를 잘라내어 소형 비닐백에 담았다. 로봇 팔은 비닐백을 밀봉해서 환자 몸 밖으로 내보냈다. 출혈이 생긴 부위는 로봇 팔에 달린 전기 소작기(燒灼器)로 지져서 지혈했다. 수술은 로봇 팔이 절개된 몸속 조직을 꿰매는 것으로 2시간 만에 마무리되었다.

수술 로봇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전 콘솔(surgeon’s console), 서지컬 카트(surgical cart), 컴퓨터이다. 서전 콘솔은 의사가 로봇을 조종하는 곳이다. 소형 자동차 크기의 서전 콘솔은 수술대에서 2m가량 떨어져 있다. 이곳 모니터를 통해 의사는 환자의 몸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동시에 손과 발로 조종간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로봇 팔을 조종한다.

수술대에는 네 개의 로봇 팔이 달린 서지컬 카트가 있다. 컴퓨터가 서전 콘솔과 서지컬 카트를 연결해 신호를 주고받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로봇을 이용해 의사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어려운 수술을 마칠 수 있다. 마치 전자 오락게임을 즐기는 듯하다.

흔히 다빈치(da Vinci)로 잘 알려진 이 로봇을 이용한 수술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5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로봇 수술을 시행한 연세세브란스병원은 4년 만인 올 6월까지 약 2천4백건의 로봇 수술을 진행했다. 전문의들은 로봇 수술을 휴대전화에 비교한다. 유선전화와 공중전화가 있지만 휴대전화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수술 방법이 있지만 앞으로 로봇 수술이 보편적인 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한다.

전립선암 수술에 가장 많이 사용돼

▲ 의사가 눈, 손, 발을 이용해 로봇 팔을 조종하고 있다. 이 기계가 서전 콘솔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로봇 수술이 늘어나는 만큼 환자의 궁금증은 커진다. 수술칼로 복부를 절개하는 개복 수술(開腹手術)과 비교해 로봇 수술이 치료에 보탬이 될 것인지가 관심사이다. 로봇 수술을 하는 전문의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기존의 다른 수술에 비해 치료 효과가 떨어지지 않으며 수술 후유증도 적다. 가장 큰 이유는 수술 로봇이 정교하기 때문이다. 세밀한 손놀림이 필요한 전립선암 수술에 로봇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이유이다.

기존 방법으로 수술을 받은 전립선암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부작용은 발기부전과 요실금이다. 전립선과 붙어 있는 신경이나 괄약근이 수술 과정에서 손상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다. 어떻게든 암덩어리를 제거해서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기존 수술의 목표였다. 로봇 수술로 이런 부작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전립선암을 제거하면서도 신경과 괄약근을 건드리지 않을 만큼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다. 의사는 서전 콘솔에서 10배 이상 확대한 영상을 보면서 수술한다. 호두알 크기의 전립선이 영상에서는 수박처럼 크게 보인다. 게다가 3차원 입체영상이어서 실제 개복 수술을 할 때처럼 환부의 넓이는 물론 깊이까지 확인할 수 있다.

환자의 몸에 닿는 로봇 팔도 정교하게 움직인다. 로봇 팔에 달린 수술칼이나 가위 같은 수술 기구는 4mm 정도로 작다. 사람 손이 잘 닿지 않는 몸속 깊숙한 ‘사각지대’까지 자유롭게 드나들며 수술할 수 있다. 최근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로봇 팔이 성경책의 얇은 종이를 한 장씩 넘겨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일은 로봇 팔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 ①환자 몸속을 3차원 입체영상으로 볼 수 있는 스크린 장치.②의사가 이 장치에서 눈을 붙이면 로봇 팔을 움직일 수 있지만 눈을 떼면 로봇 팔은 정지된다.③로봇 팔을 움직이는 조종간.④의사가 손가락을 조종간에 끼워야 로봇 팔이 움직인다. ⓒ시사저널 임준선

나군호 연세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지난 4년 동안의 로봇 수술 결과를 분석해보았다. 1~2기의 전립선암을 로봇으로 수술할 경우 재발률 없는 완치율이 96%로 나왔다. 개복 수술이 85% 정도이다. 5년 생존율도 개복 수술보다 높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또, 기존에는 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로봇 수술 후에는 추가적인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로봇을 이용한 정교한 수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라며 로봇 수술의 치료 효과를 설명했다.

수술 후 회복 기간이 짧은 것도 치료 효과를 높이는 한 부분이다. 기존 개복 수술 때보다 3~4일 짧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미가 있다. 회복 기간이 짧아진 이유는 최소침습술(MIS) 덕이다. 기존처럼 복부를 절개하지 않고 1cm 정도의 구멍만 뚫어 수술하는 것이다. 수술 흉터도 거의 남지 않아 외관상 보기에도 좋다.

지난 한 해에만 세계적으로 4만5천건 시술

지난 1월 강남세브란스병원이 로봇 수술을 받은 환자 1백8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술 만족도가 76%로 나왔다. 이 중 50%는 수술 후 회복이 빠른 것에, 20%는 수술 흉터가 작다는 점에 만족했다. 지난해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최유미씨(50·가명)는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수술 자국이 없어서 로봇 수술에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수술 로봇은 전립선 외에도 손이 잘 닿지 않는 대장, 숨을 쉬고 목소리를 내는 기관이 손상될 소지가 많은 갑상선, 전이가 많은 임파선 수술에 주로 사용된다. 로봇 수술의 90%는 이런 부위에 생긴 암 치료에 활용된다. 최근에는 심장질환과 두경부암 등으로 그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미국 FDA는 의사와 환자가 같은 장소에 있는 조건 하에 로봇을 이용한 수술을 승인했다. 이 때문에 공학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의사가 제주도에 있는 환자를 로봇을 이용해 수술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안정성 문제가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이다. 수술 로봇의 안정성 문제는 지난 1999년 이 로봇이 처음 개발되었을 때부터 제기되어 왔다. 예컨대, 의사가 실수로 조종간을 많이 움직이면 로봇 팔이 다른 장기나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느냐는 우려이다.

▲ 여러 개의 로봇 팔이 환자의 몸속에서 수술을 진행한다. 이 기계를 서지컬 카트라고 부른다.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한 해 동안 세계적으로 약 4만5천건의 로봇 수술이 행해졌지만 뚜렷한 불상사가 없었던 이유는 갖가지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손놀림이 필요 이상으로 크면 로봇 팔은 자동으로 멈춘다. 의사가 조종간에서 손을 떼거나 스크린에서 눈을 떼도 로봇 팔은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수술 기록은 비행기의 블랙박스처럼 기록되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다.

그렇지만, 로봇은 어디까지나 기계이다. 오작동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국내외 병원에서 로봇 팔의 작동이 멈춘 사례가 있다.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앞으로 심각한 오작동이 생길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오작동에 의한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아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료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장기를 손으로 만지는 느낌 주는 로봇도 나올 것”

또, 환자는 수술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로봇 수술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비싸다. 로봇 수술비는 개복 수술보다 2~3배 이상 비싼 7백만~1천5백만원 수준이다. 수술비가 비싼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무엇보다 수술 로봇의 가격이 25억원으로 고가이다. 게다가 로봇 팔은 10회 사용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어 3백만~4백만원 하는 로봇 팔을 교체해야 하는 등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20대의 수술 로봇 ‘다빈치’가 있고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지만 수술비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회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로봇 팔을 더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회사의 상술이다. 다빈치를 만든 회사(인튜이티브 서지컬사)에 특허권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 특허가 하나 둘 풀리면서 경쟁 로봇이 나오고, 보험도 적용되면 수술비도 저렴해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로봇 수술 수준은 세계적이다. 일본과 중국은 로봇 수술에서 우리보다 한발 뒤져 있다. 의료 선진국인 일본의 의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로봇 수술을 견학하는 사례도 많다. 로봇 수술 선진국인 미국이 전립선암 등 특정질환에 편중된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갑상선암, 대장암, 부인암, 식도암 등 다양한 질환에 대한 기술이 풍부하다.

▲ ①로봇 팔에 다양한 수술기구를 바꿔가면서 수술할 수 있다.② 로봇 팔 끝에 달린 수술기구의 크기는 4mm 정도이다.③로봇 팔이 수술하는 모습을 의료진이 수술실에 있는 여러 대의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1980년대 후반, 배에 구멍을 뚫어 내시경을 집어넣고 수술하는 ‘복강경 수술’이 선보였다. 배나 가슴을 절개하지 않는 수술이라는 것만으로도 의학계에서는 획기적인 치료법으로 받아들여졌다. 20년이 지난 현재는 로봇 수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첨단 의료 로봇으로 치료를 받는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김영수 대한의료로봇학회장(한양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은 “미래에는 진단하면서 동시에 수술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또, 몸속에 넣을 수 있는 마이크로 로봇도 기대할 수 있다. 장기를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 전달되는 로봇도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로봇 수술 수준이 높고 IT 기술력이 최고인 만큼 앞으로는 국산 수술 로봇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며 미래의 수술 로봇 시대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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